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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과 소통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참다운 의료를

기사승인 2016.12.11  12: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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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으며 죽을 수 있는 병원>을 읽고

주민들과 소통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참다운 의료를

<웃으며 죽을 수 있는 병원>을 읽고

김진아

2014년 10월 15일. 중랑구 소재의 녹색병원이란 곳에 내가 입사한 날이다. 솔직히 그전에는 이 동네에 살고 있어도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잘 보이지도 않았고) 하지만 이제 그 보이지 않는 병원을 매일같이 출근하고 있다. 만 3년간 이 병원에 출퇴근을 하면서 느낀 점은 병원이 주택가 안쪽에 위치하고 있듯이 직원들도 주민들과 함께한다는 점이다. 일단 책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병원도 1층 로비에 주민과 교류할 수 있는 사랑방이 있다. 한달에 한번 직원들이 모은 소액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필요한 곳에 전달하기도 하고 지역 내에 손이 필요한 곳을 연결하고 소개해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는 공간이다.

사실 처음 입사를 하고서는 이런 병원의 사회적 활동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생기고 한 번 두 번 다녀오고 나서는 얘기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정말 가기가 싫었다. 일하기도 버거운 시간들인데 그 시간들을 쪼개서 병원 주최의 봉사활동까지 해야 하다니... 책에서 나오는 일본의 병원처럼 그게 자진해서 가는 말 그대로의 봉사 활동이었으면 모르겠지만 우리 병원은 1년에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채우고자 억지로 참여한 거였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하고 내가 굳이 해야 하나 하는 반감이 생겼었다. 그런데 그런 활동을 하면서 타 부서원들과도 교류가 되고 평소에 혼자서는 하지 못하던 봉사활동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 스스로 뿌듯했고 보람되었다. 와 나도 이 지역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구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왠지 더 있을 것 같았고 앞으로의 내가 더 쓰임새 있어질 것 같았다. 아무튼 내가 느끼는 우리 병원은 이러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병원이 일본에도 있다고 하니 신기했다. 특히나 여기는 직원들이 자진해서 “행차”라는 환자가 원하는 외출을 준비하고 짬짬이 시간을 내어 동네 라운딩을 돌고 하는 모습에서 진짜 참 의료인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병원 운영에 있어서는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스럽기도 했다. 주민들이 조합을 만들어 운영비에 보태고 있다지만 상급병실료도 제대로 받지 않는 병원운영 시스템과 직원들의 인건비, 관리비 등등을 고려해 볼 때 절대 흑자로 운영될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이런 병원이 있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고마운 병원이 아닌가. 그리고 환자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간간히 나오는 일어가 낯설어 책이 잘 읽히지 않았다. 하지만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집중하고 순간순간 감동하고 있었다. 환자 한분 한분의 사연을 읽을 때 마다 눈물로 시야가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집중하고 읽으려고 휴지를 갖다놓고 읽었다. 사연들 중에서 특히나 할머니 환자분이 나오는 “행차”의 소개는 너무나 와 닿았다. 소리 지르고 때를 쓰는 모습이 흡사 우리 친할머니와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습이라면 우리 할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한 집에 지냈었다는 점. 그 점 빼고는 너무나 우리 할머니 같았다. 특히나 할머니가 치매 증상인 것 같아서 진단을 받기 전 까지는 낯선 할머니의 모습에 식구들이 다 등을 돌린 뒤였다. 한 집에 살아도 한집에 사는 것이 아닌. 모두들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 증세가 심각해져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 비로소 이게 병이구나 싶었다. 당뇨가 있어 저혈당 쇼크에 몇 번을 고생하고 병 간호를 해드렸었는데 그때의 내가 생각나 간호부장님의 마음이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순간순간 나도 사람인지라 아무리 친할머니라도 포기 하고 싶고 미운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 간호부장님은 나를 꾸짖기라도 하듯 친 가족도 아닌 지역주민 할머니에게 정성을 쏟고 있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의료인으로서 나도 저런 마음가짐이었어야 하는데 내가 과연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행차”다운 행차를 다녀온 적이 있었나 싶었다. 내 자신이 너무 밉고 부끄러웠다. 작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치매, 고혈압, 당뇨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가 할머니를 보살펴 주셔서 꽤나 상태가 괜찮으셨었다. 항상 어딜 가면 따라 가고 싶어 하셨는데 그때 손잡고 같이 좀 다닐 걸 너무 후회가 돼서 한동안 너무 힘들었었다. 자기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내가 정말 의료인인가 싶고 실망스러워 장례식 내내 영정사진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었다. 우리 할머니가 진짜 마지막까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장례식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궁금증이 생겼다.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물어봐 드릴 것을. 이렇게 건강이 좋지 못한 분들도 마지막 외출을 다녀오시는데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거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셨던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책에서 비슷한 사연을 보니 1년전 그때의 생각이 나서 한동안 책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다른 사연들을 조심조심 읽어보았는데 사연들 하나하나 모두 너무나 감동적이었고 그 일본 병원의 직원들이 너무나 멋있었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그 동네는 참 밝고 따뜻할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혹시나 일본에 다녀올 일이 생기면 이 병원은 꼭 한번 들려보고 싶다. 사진이 있어서 실제로 보게 된다면 직원들을 만나게 된다면 꼭 내가 예전부터 알던 곳, 알던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녹색병원과 닮은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조금 다른 일본의 “죠호쿠병원”. 혹시나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의료 계통에 몸담고 있으면 이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이지 않고 자진해서 봉사활동(=행차)를 지원할 수 있는 용기가 샘솟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같은 분들이 삶의 마지막에서 뒤 돌아 보았을 때 삶이란 것은 소중한 것,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 드리고 싶다. 지금은 우리 병원의 재정이 불안정해 진행할 수 없겠지만 사정이 안정되고 괜찮아 진다면 우리 병원 1층의 사랑방에서 병동 라운딩을 해주시고 환자들의 요구 사항을 파악해 마지막 외출을 진행 하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성향의 병원이 더욱 발전하여 이런 곳이 한국 의료에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아직까지는 의료인의 입장에서 좀 무리일 수 있겠다 싶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을 해준다면 지방에서는 이런 곳이 오히려 운영이 잘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서울이 아니라 지방이어야 할 것 같다. 서울은 워낙 대형병원들이 많아서 죠호쿠 병원과 같은 병원은 자리를 고수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이가 들고 자식들을 키우고 먹고사는 것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면 나도 이런 곳에서 주민들과 소통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참다운 의료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건강미디어 mediahealth20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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