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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한 의사? 용한 환자!

기사승인 2017.06.05  20: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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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한 의사? 용한 환자!

손 창 호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명의 또는 용한 의사란 도대체 무엇인가? 다른 병원에서는 낫지 못하는 환자를 낫게 해 주는 의사가 용한 의사인가? 그럼 과연 많은 용한 의사 중에 누가 자신이 다른 의사에 비해 치료율이 더 낫다고 얘기할 수 있는 가? 어디에 그런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가? 그나마 수술을 하는 몇 몇 질병의 경우에는 자신의 치료성적을 논문을 통해서 발표라도 하지만 우울증이나 트라우마 같은 질환의 경우 내가 아는 범위에서 개인의 진료방법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를 가진 의사는 없다. 아님 외래에 밀려오는 환자의 숫자나 벌어들이는 월수입을 가지고 명의를 가릴 것인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지만 실력이나 지식은 좀처럼 돈이나 명성과 비례하지 않는다.
  용한 의사, 명의를 찾는 것은 모든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 누군들 자신의 병을 깨끗하게 낫게 해 줄 하늘이 점지해준 의사를 만나고 싶지 않겠는 가? 그러나 아주 불행히도 우울증이나 트라우마 후유증과 같은 대부분의 만성질환에서 용한 의사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만일 당신이나 당신 가족이 만성우울증이라면 말 그대로 그 우울증은 잘 낫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그렇게 병명을 지은 것이다. 만일 용한 의사를 만나서 한 두 달 만에 나았다면 만성우울증이란 병명이 오진일 가능성이 훨씬 클 것이다. 용한 의사는없다. 다만 용한 환자가 있을 뿐이다. 

  용한 환자란 자신의 우울증이나 트라우마 후유증을 가장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용한 환자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실에 직면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당신이 앓고 있는 병은 완치가 안 될 수도 있고 평생을 갈 수도 있고 어쩌면 얼마 못 살 가능성이 큰 병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던 피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용기는 용한 환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당신의 담당의사에게 당신의 질병에 대해 축소하지도 부풀리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해 달라고 요구해라. 만일 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제 당신은 용한 환자가 될 만큼 용감해 진 것이다. 의사를 믿지 않는 환자 못지않게 힘든 경우가 무조건 매달리는 환자이다. “선생님이 절 완치시켜 주리라 믿습니다.” 라는 환자의 신앙고백 만큼 난감한 경우도 없다. 이런 태도는 의사에게 질병의 정확한 정보를 절대 말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질병이나 상태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불행히도 우울증이나 트라우마 후유증은 대부분 완치가 쉽지 않다. 우울증이나 트라우마 후유증이란 강은 너무나 넓어서 당신이 그 강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또 스스로 그 물살을 헤쳐 나갈 수영을 배우고 필요시에 적절히 구명조끼도 사용해야 만 건널 수 있다. 당신 스스로가 잘 알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 경우에만 치료될 수 있다. 물론 다른 도움이 필요하다. 의사, 간호사, 심리학자, 사회사업가, 각종 예술요법 치료사나 작업요법치료사 등등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신에게 도움을 줄 뿐이다. 그것도 당신이 원하는 만큼, 그리고 당신이 아는 만큼만. 따라서 먼저 필요한 것은 이들의 도움 못지않게 이들의 도움을 얼마나 현명하게 이용하는 가이다. 호미로 막을 것이 있고 가래로 막을 것이 있듯이 다양한 치료기법과 접근법도 그 각각의 쓰임새가 다르고 각각의 장점과 그 만큼 뚜렷한 한계가 있다. 이런 치료기법의 장단점을 환자 및 그 가족 자신이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끈기이다. 만성질환이라고 하는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끈기이다. 우울증이나 트라우마 후유증은 만성질환이다. 오래가는 경우가 매우 많다. 1년 만에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때로 당신의 수명만큼 오래갈 수 있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많이 알더라도 정확히 알지 못하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질병에 대한 낭설은 -특히 그 병이 위중하거나 만성적일 경우에는- 그 양상과 가짓수가 헤아릴 수 없다. 우울증은 어느 병원에 가면 완치된다던가 무얼 먹으면 쾌차한다고 하는 등등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에 대해 초연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한 당신이 접하는 모든 정보는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확인은 당신 담당의사하고 같이 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의사의 얘기만으로 확실한 신뢰가 안 가면 담당의사에게 의사가 얘기하는 근거를 말해 달라고 요구해라. 즉 의사가 얘기하는 내용을 증명하는 연구가 된 것이 있었느냐 하는 것 말이다.
  소문 못지 않게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것은 신문과 방송의 기사이다. 우리나라 언론이 신뢰를 잃어버린 것은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80년 대 까지만 하더라도 군사독재라고 하는 상황논리가 어느 정도 언론의 잘못된 정보제공을 합리화 할 수 있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언론에 대한 불신은 소위 민주화 이후가 더욱 심화된 것 같다. 다른 점은 몰라도 의학정보의 전달이라는 점에서는 그렇다. 일부 기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의사중 하나가 교과서적인 얘기를 하는 유형일 것이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무슨 병에 어떤 치료가 좋다거나 누가 잘 본다는 식의 기사가 나가면 최소 1-2주간은 그 병원의 외래는 미어터지는 경우를 종종 보고 나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현상은 그 병원이나 의사에게는 당연히 아주 바람직한 언론의 효과이다. 이런 효과를 미끼로 일부 기자들은 직접 대 놓고 취재원인 의사에게 “센세이셔날” 한 얘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이것이 매부좋고 누이좋은 것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뭔가 남들과 다르게 튀어야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 새로운 치료법이라면 당연히 이전 치료법보다 훨씬 뛰어나야만 뉴스로서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새로운 치료법이 날마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보니 언론은 스스로 놀라운 효능을 가진 새로운 가상의 치료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겨우 동물실험만한 약제의 결과가 방송에 나오고, 전혀 연구로서 기본도 갖추지 못한 임상결과 만을 침소봉대하여 획기적 치료법이라고 광고하는 언론은 매일 같이 접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것은 언론인과 의료인의 공동작품인 경우도 많이 있긴 하지만. 문제는 이런 식의 정보를 맹신하게 될 경우 정말 교과서적으로 입증된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치료방법을 등한시 한 채 입증되지 않은 새로운 치료법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실제 내용에서 아무 차이가 나지 않는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을 옮기고 새로운 검사를 받아서 결과적으로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고 치료의 연속성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은 더욱 더 믿을 가치가 떨어진다. 특히 인터넷의 경우에 그 부분만을 보면 옳은 정보가 종종 있다. 그러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매우 많이 있다.
  환자나 가족인 당신이 그렇다고 우울증이나 트라우마 후유증에 대한 모든 지식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필요하지도 않다. 그래서 이런 치료전반에 대한 것을 의논해 줄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당신을 위한 좋은 의사의 몇 가지 조건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족(蛇足)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번은 얘기해야 할 것이 자격증이다. 즉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여야 한다. 만일 갑작스런 가족과의 사별이나, 해외여행에 의한 시차적응의 같은 일시적인 불안 또는 불면증이라면 어떤 과의 전문의라도 무방하겠지만 만성우울증이라면 당연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는 뇌에 대한 질병과 관련된 진료과는 정신건강의학과과, 신경과 그리고 신경외과가 있다. 이중 당신이 가야할 곳은 정신건강의학이다. 우울증을 비롯한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은 그 호소하는 양상이 대단히 애매하다. 불안하다던가 우울하다던가 기분이 안 좋다던가 하는 증상들이 많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매일같이 느끼고 있는 것 들이다. 통증이나 설사 기침과 같은 다른 질환의 대부분 증상들은 평상시에 우리가 느끼지 않지만 정신과 질환의 많은 증상들은 누구나 느끼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증상들을 통해서 이것이 병적인 것인지 또는 정상적인 반응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 스스로의 정신과 수련경험이나 또 교육자로 전공의 지도경험을 통해 볼 때도 정신과적 증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잘 기술하는 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예를 들자면 4년의 정신과 전공의 수련 기간중 최소한 2년차 중반은 되어야 환자가 정신증인지 신경증인지 하는 정도를 제대로 구분하고 2년차 말이나 3년차는 되어야 신뢰할 만한 진단을 제대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정신과 진단기준만을 안다고 하여 피검사를 통해 빈혈진단 하듯이 우울증을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빈혈진단 역시 피검사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치료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치료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약물치료, 전기충격치료, 인지치료, 정신치료 그리고 요즘은 명상이나 안구운동을 통한 탈감작 및 재처리기법 등등 그 방법은 다양하며 그 방법들은 여러 유형의 환자에게 맞게 처방되고 실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치료방법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사람은 아무래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여야만 한다.
  둘째는 당신과 잘 통하는 의사여야 한다. 당신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는 의사가 좋다. 만약 당신이 “내가 가진 우울증이 유전되는 것은 아니에요?” 라고 질문하였을 때 당신에게 그런 것까지 신경쓸 필요없다고 한다던지, 그냥 괜찮을 것이라고 섣불리 당신을 안심시키려는 의사는 피하는 것이 좋다. 물론 당신 질문을 그냥 무시해버리는 의사는 당연히 제외된다. 만일 당신에게 우울증의 유전가능성을 인정하고, 그 위험한 정도까지 설명해 주는 의사를 권하고 싶다. 의사가 정확한 퍼센트를 기억 못하겠다며 당신 앞에서 책을 찾아보기라고 한다면 더 이상의 의사는 없다고 보면 된다.
  세 번째는 접근성이 좋은 의사를 선택하라. 진료를 받으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중간에 전화통화 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면 당신에게 좋은 의사일 수가 없다. 당신이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거나 자살충동이 심해질 때 즉각 전화를 할 수 있는 의사여야 한다. 꼭 그 의사가 아니라도 같은 병원의 다른 의사나 간호사, 심리학자 또는 사회사업가 등등 누구이든 당신이 급할 때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집에서 너무 먼 곳도 좋지 않다.
  네 번째로 당신에게 진료에 대한 모든 정보를 기꺼이 공개하는 의사가 좋다. 적어도 당신이 스스로 용한 환자가 되려면, 당신은 당신이 복용하는 약의 내역, 복용방법, 부작용 그리고 현 치료방법의 합당한 근거를 알고 있어야 한다. 사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처방약의 내역을 포함한 여러 진료정보를 환자에게 전면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무슨 영업상의 기밀등과 같은 그런 이유라기보다 진료내용에 대한 전면공개가 치료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환자가 진료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게 되는 것이 부작용보다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당연히 당신에게는 자신이 먹는 약에 대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이 글은 인권의학연구소 뉴스레터 2017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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