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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가 말하는 [생명의 증언]

기사승인 2017.09.25  08: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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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 3명이 모였다. GP는 general practitioner의 약자로 ‘일반의’라는 뜻이다. 의사면허증은 있지만 전문의는 아닌 의사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병원문화는 전문의 중심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사라면 당연히 ‘무슨 과’ 의사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슨 과’가 없는 의사도 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반의가 된 젊은 의사 3명이 모여 [생명의 증언]을 읽고 이야기를 했다.

 

시작하며

 

GP2 : 한 달 동안 모두 잘 지내셨나요?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생명의 증언』이라는 책입니다. 요시나카 다케시라는 일본의 심장내과 의사가 ‘만성 이황화탄소 중독증’ 환자들을 만나 평생에 걸쳐 이들과 함께 직업병 인정을 받기 위해 싸워온 과정을 담은 책이었죠. 사실 처음에 이황화탄소가 뭐더라 잠깐 생각했어요. 원래는 화산에서나 나오던 이황화탄소가 도시에서 나오게 되면서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새로운 병을 만들어낸 것이더라구요. 근대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건강을 증진시킨 면도 있지만 이렇게 없던 병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새로운 유해물질로 인한 질병은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먼저 발생하는 것 같고 그것이 직업상의 노출 때문이라는 것을 밝히는데도 이렇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GP1 : 저도 이황화탄소 중독에 대한 기존 지식이나 치료 경험이 전혀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이황화탄소가 인체에 어떤 현상을 일으키고, 진단을 위해 어떤 기준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뇌와 혈관, 눈과 호흡기 등 몸의 여러 기관의 전문적인 의학용어가 많아서 비의료인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GP3 : 저는 한 신기한 의사 선생님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었어요. 사실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는 심장내과랑 ‘만성 이황화탄소 중독증’은 거의 관련이 없잖아요. 게다가 보통 심장내과의사 선생님의 이미지는 근엄하고 냉철한 이미지가 강하고 따뜻한 마음씨와는 좀 거리가 있는데, 이 선생님은 직업병 환자와 가족들과 공감하고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어요. 그리고 민의련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민의련이란 이름하에 뜻있는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전문가의 역할에 대해서

 

GP2 : 책에 보면 당시 일본에서 만성 이황화탄소 중독증으로 직업병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①뇌혈관 장애와 ②이황화탄소성망막증 소견이 필수적이었는데, 지역의사회 회장도 하고 학문적으로도 연구를 많이 하시는 신경과 의사 선생님이 이 환자들의 머리 CT로 뇌혈류 순환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후배 안과 의사들은 무료로 형광 안저 검사를 해서 이황화탄소성 망막증을 입증해줘서 이것을 근거로 진단서를 제출하였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보통의 의사들은 이렇게 나서지 않을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GP3 : 정말 멋진 개개인의 전문가들이 잘 협업하여 이루어낸 결과라 생각합니다. 근데 이런건 선한 의지를 가진 개개인이 발벗고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스템으로 확립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후배 안과 의사들이 무료로 형광 안저 검사를 해줘서’ 인정 받기보단, 이황화탄소 노출 위험 지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국가에서 몇 년에 한 번은 검사를 제공한다는 식으로요.

 

GP1 : 하지만 책에 그렇지 않은 의사들도 나와요. 1947년에 어떤 레이온 공장에서 정신과 환자가 많이 발생하자 이황화탄소가 원인이라고 의심하는 의사들이 이황화탄소를 직접 환자에게 주사하는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그리고 기업과 산업의 단체가 유착하여 산재를 은폐하고 일부러 방독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로 일하게 해서 노출 정도를 측정하는 등의 실험을 했다는 내용도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재판장에서 피해자들의 뇌졸중은 유전적인 질병이고 망막의 모세혈관류가 없으므로 중독이 아니라고 주장한 유니치카 병원장이라는 사람도 있었죠.

 

수출되는 직업병

 

GP2 : 이런 직업병을 양산하는 레이온 기계가 1964년 한국에 들어옵니다. 친일파 거부 박흥식이라는 사람이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부터 도레 레이온과 접촉하여 한일 기본 협정이 이뤄지자 바로 이 오래된 기계를 36억엔이라는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고 해요. 한일협정은 ‘무상원조 3억달러, 유상원조 2억달러, 민간차관 3억달러’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이 돈부터 받아낸 것이잖아요. 그래서 일본은 위안부문제나 군함도에 끌려한 사람들 이야기 하면 그 때 다 보상했다고 주장해서 우리가 분노하는거죠. 그런데 문제는 직업병을 만드는 중고 레이온 기계를 사면서 36억 엔이 배상금에서 지불되어서 결국은 친일파 박흥식, 일본 도레 레이온이 모두 이익을 보고 한국의 노동자들은 직업병 기계로 일을 하게 됩니다.

 

GP1 : 네 일본에서 직업병 환자를 발생시킨 설비가 산재 판정 후 가동 중지되고, 한국으로 팔려갔고 한국에서도 그 기계를 사용하던 작업장에서 똑같은 직업병이 문제가 발생한거죠. 하지만 결코 쉽지 않게 힘들게 싸워서 결국 한국에서도 산재 인정을 받았는데, 지금 그 기계는 중국에 가 있다고 나오네요. 한번 직업병을 유발하는 설비라고 인정되면 폐기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는 걸까요? 직업병 발생을 막기 위해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GP3 : 책에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들이 산재 투쟁을 하면서 나중엔 다같이 컨퍼런스를 했다고 나오잖아요. 다른 지역의 레이온 공장에서 일했지만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이 악수를 하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조금 뭉클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컨퍼런스가 한·중·일 컨퍼런스로 발전하고 이 문제를 전세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책에서 EU가 납 사용을 금지해서 납을 사용하지 않는 납땜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이황화탄소를 사용하지 않는 레이온 공정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산업기술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지만 ‘사람을 해치지 않는 공정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가?’ 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습니다.

 

마무리

 

GP1 : 저는 GP로 출장 건강 검진(직장 건강 검진) 업무를 한 적이 있었어요. 서울 시내의 사무실, 지방에 있는 마트, 경기도와 강원도 부근의 작은 공장들을 방문했습니다. 제 머리 속의 공장은 삭막하지만 깨끗하고, 잘 관리된 컨베이어 벨트가 막힘없이 돌아가는 공간으로 노동자들이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곳이었어요. 하지만 출장 검진을 다녀보니, 가설 건물에 열악한 냉난방, 기계가 돌아가면서 발생하는 엄청난 소음과 분진, 환기도 잘 안되고, 오래되고 낡은 설비 등, 제가 상상하던 모습과 너무 다른 현장을 많이 보았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유해물질 규정, 작업 환경 같은 부분에서 최근의 그 경험들을 연결되면서, 그동안 우리나라가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일부 성과도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GP3 : 저는 얼마 전에 반올림 농성장을 방문했는데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말씀하시길, 삼성에서 황유미씨 앞으로 암 보험을 들어놨다고 하더라구요. 유전적 소인이 있지 않고서야 암 발병률이 극히 드문 20대 초반의 여성에게 암 보험을 들어놓았다는 것 자체가 삼성이 반도체 공정이 유해 물질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인 공유정옥 선생님은 미국에서 이미 1991년에 반도체 공정 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를 비교했을 때 자연유산율이 2.7배 높다는 사실이 논문으로 발표되었다며 삼성도 당연히 알고 있었으나 은폐하려 했다고 하셨어요. 반도체 공정에서 각각의 유해 물질의 노출치는 기준치의 5%-10%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이런 유해 물질이 워낙 많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누적 효과, 시너지 효과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 이황화탄소 문제와 거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픈 몸으로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거대한 기업과 싸워야 하고 의학적인 증명까지 해야 하는 피해자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이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화학 물질로 인한 직업병은 대부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메탄올 실명 문제도 그렇구요. 뿐만 아니라 다른 산재문제도 비슷한 궤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OECD중 산재사망률 1위로 알고 있는데, 결국 이윤을 위해서면 뭐든 허락되는 작금의 풍조 자체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찌 해야 할지, 아직은 좀 더 많이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GP2 : 책에 ‘병에 걸린 사람인데 환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병에 걸려도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는거죠. 저자는 만성 이황화탄소 중독증에는 4개의 틈새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예방을 안 한 것, 둘째 진단을 빨리 못하는 것, 셋째, 산재라는 판단을 빨리 못하는 것, 넷째 적절한 치료를 받는 시스템이 없었던 것. 우리나라도 이러한 틈새들이 존재합니다. 아주 큰 틈새들이 있죠. 예방-진단-산재 인정-치료, 이렇게 중요한 단계들에 커다란 틈이 존재하고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개인은 자신이 어떤 단계의 틈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고 둔감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의 몸에 대한 해석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할까요? 그런 식으로 내재화된 기준에 따라 자신의 경험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거죠. 사회의 안전망이란 그런 식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다음번에는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을 읽고 다시 만나겠습니다. 

 

다같이 : 짝짝짝

이보라 lushbo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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