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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공성을 지키려는 몇몇 직원만 있어도 간다

기사승인 2017.10.07  15: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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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의련 잼버리 참가기 5

전날 후쿠시마 현장을 다녀오고 느낀 것이 많았다. 그간 원전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내세웠던 비싼 전기료 논리가 과연 저 상황에서도 통하는 것인지. 차라리 우리가 전기를 덜 쓰면서 안전하게 사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 난지 6년, 하지만 정부는 다시 원전 찬성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6년의 시간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아파하고, 힘들어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원전을 논한다. 상식적으론 이해 못 할 이야기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가 새벽 5시에 눈이 자동으로 떠졌다. 이곳 호텔은 온천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다. 눈이 떠진 김에 온천욕을 해보고자 꼭대기 층에 있는 온천탕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온천을 느끼는 순간이다. 밤잠을 설친 피로가 씻은 듯이 풀리는 느낌이다.

 

오늘은 여유가 좀 있는 날이다. 어제처럼 새벽같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목욕을 하고, 아침식사까지 마쳤다. 호텔에서 먹는 식사이지만, 700명 중에 우리 3명만 외국인이므로 다수를 위해 일본 전통식(뷔페지만)으로 준비된 듯 했다. 그래선지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들도 여럿 있었다. 특히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문화에 적응되지 않아 굉장히 어색한 포즈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황자혜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줘도 따라갈 수 없다. 어쩌겠나, 나는 천상 한국에만 살던 한국인인걸.

 

식사를 마치고 다시 조별로 모였다. 후쿠시마로 4행시를 짓는 미션을 수행해야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후쿠시마 힘내라” 같은 메시지는 담지 말자는 어떤 이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듯 했다. 지금도 충분히 힘내고 있는데, 힘내라는 표현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옳은 말이다. 그래서 저마다 몇 마디 씩 의견을 내는데, 나야 뭐 잘 알지 못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밖에. 그렇게 조별 토론을 마치고 단체사진 까지 여러 장 찍었다.

 

개회식을 했던 대강당으로 향했다. 전날 써놓은 소감문을 다시 전해야한다. 개회식에서처럼 황자혜 선생님께서 통역을 해주셨고, 첫날의 경직된 분위기와는 달리, 조금은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후쿠시마 실행위원장에게 차례로 선물 증정을 하고 연단에서 마지막을 고하는 사진촬영까지 마쳤다.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도쿄로.

 

도쿄 호텔에서 짐을 풀고 우린 민의련 중앙 사무국으로 향했다. 말로만 듣던 민의련 사무실이다. 만약 다른 곳에서 잼버리가 열렸다면 와보지 못했을 곳이다. 회장님은 자리에 안계셨지만 민의련 사무국을 총괄하는 사무국장님과 사무차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가 준비해 간 수저세트(금수저)를 선물로 드렸고, 얼떨결에 우리도 많은 선물을 받았다. 특히 돌아가서 직원들과 함께 나눠먹으라고 주신 쿠키는, 내용물 보다 마음에 더 감동받았다. 그 외 민의련을 상징하는 굿즈들도 주셔서 유용하게 쓸 것 같았다.

간단한 소개와 인사, 사진촬영을 마치고 사무국장님께서 민의련 사무국 곳곳을 견학시켜 주셨다. 사무국엔 생각보다 많은 직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각 지역에서 파견 와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있었고, 민의련 전속 기자, 대외 행사 담당자, 각 의료기관의 재정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어려울 때 지원을 도모하는 지원부서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아베 정부의 평화헌법 개정이라든지, 의료영리화 추구에 반대하는 캠페인도 실시하고 있었는데, 그 담당직원이 최근 정세 때문에 굉장히 바빠졌다고 한다.

▲ 사무국을 소개해주시는 키시모토 사무국장님

한 층 더 올라가보니 간이 출판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도 민의련 소속이긴 한데, 민의련(시민단체)에서 출판 사업을 할 수 없는 관계로 따로 주식회사 형식의 회사를 차려 책을 출간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출간된 책들은 대부분 공공의료 관련 책들인데, 예를 들어 월간지 형식으로 발행되는 ‘언제나 건강’ 이란 책은 인지도가 꽤 높다고 했다. 또한 이 회사 주식은 민의련 회장 명의로 50% 이상의 지분을 항상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이 주식을 다수 갖고 대주주 행세를 한다면, 출판물의 정치적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민의련의 역사만큼이나 조직이 탄탄해보였다. 그래서 민의련을 배워야한다고 원장님과 부원장님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 한국형 민의련을 만들고자 발기인 대회를 가졌는데, 민의련처럼 탄탄한 조직으로 발돋움할 수 있길 바래본다.

 

사무국장님, 사무차장님과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닭 요리 전문점으로 우리를 안내해주셨다. 10가지가 넘는 요리들이 마치 순서를 기다리듯 코스로 나왔고, 한국에선 맛보지 못한 닭의 다양한 부위를 음미하며 기린생맥주를 열심히 마셨다. 그리고 조금 더 진중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 맛있는 저녁식사

공공의료와 관련해서 질문을 드렸다. 의료도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씀드리며 일본의 상황은 어떠한지 여쭤보았다. 키시모토 사무국장님은 “의료만큼은 꼭 공공성을 지켜야한다는 신념을 의사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고 하시며 “그럼에도 예전보단 좀 느슨해졌는지 영리병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공공성이 조금씩 무너지는 상황을 보게 됐다” 고 하셨다. 그러면서 “공공성을 지키려는 몇몇 직원들만 있어도, 우리는 끝까지 해볼 생각”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여주셨다.

 

이 말씀에 너무 감동받은 나머지 맥주잔을 연신 들이켰다. 사실 잼버리 기간에는 20대 중반의 젊은 친구들과 얘기하며 깨달음을 얻을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사무국장님 사무차장님과 얘기하며 큰 가르침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한국형 민의련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니, 크게 환영하시며 연대의 말씀들을 해주셨다.

 

저녁 식사 자리를 마치고 우린 다시 숙소로 향했다. 왠지 모를 든든함에 숙소로 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좋은 식사, 멋진 연대, 타지에서 느끼는 든든함은 이로 말할 수 없는 감동 그 자체였다.  

이준수 기자 loverjun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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