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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는 포털사이트"

기사승인 2018.02.14  12: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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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원하는 의료기관_7] '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

[우리가 원하는 의료기관] 가칭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이하 사의련)가 '공익성 높은 의료'를 실현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활동을 소개한다. 다양한 활동과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료기관들의 모습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건강권을 향상하고 더 나아가 한국사회 의료의 공공성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7회로 정가정의원을 찾아가 일차의료와 주치의, 그리고 의료전달체계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주치의제는 특정 장기, 질병, 연령을 진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의료계의 포털사이트입니다." 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이 설명하는 주치의는 지금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보다 간단명료했다. 누구든 몸이 아프면 자신의 주치의를 찾아간다, 그리고 증상을 설명한다, 주치의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적절한 진료와 처방을 한다, 만약 중병이 예상되거나 특수 장비가 필요한 검사를 해야 한다면 진료의뢰서를 작성해주고 2, 3차병원에서 진료받기를 권한다.

정 원장은 일차의료와 주치의에 관심이 많은 의사다. 얼마전 대한가정의학회가 주는 제3회 일차의료 학술상을 받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고혈압, 당뇨병 진료를 잘 하는 곳에 뽑히기도 했다. 고혈압, 당뇨병은 대표적인 만성질환으로 주치의가 반드시 필요한 질병으로 분류된다. 2월 9일,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정가정의원을 찾았을 때 오후 6시30분 진료 마감시간이 가까워 오자 환자들이 쉴새없이 정 원장의 방을 드나들었다.

▲ 창신시장 초입에 위치한 정가정의원. 2층에는 진료실과 검사실, 3층에는 물리치료실 등이 자리잡고 있다.

- 요즘 어떤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나?

"동네에서 흔히 발생하는 고혈압, 당뇨병, 피부병, 위장병, 근골격계질환, 알레르기, 예방접종, 건강검진 등을 진료한다. 한 의사가 이렇게 많은 질병을 진료한다고 하면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대로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은 의사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 주치의가 진료하는 질병들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가 기본으로 오고 특정 과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질병이 골고루 있다. 관절염. 위장병, 감기, 피부병, 알레르기 등 다양한 환자들이 내원한다."

- 한국은 주치의를 비롯해 일차의료가 발달되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주치의가 자리잡은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나라에 가보면 이비인후과의원, 비뇨기과의원 같은 간판을 볼 수 없다. 주치의제가 잘 돼 있는 쿠바는 미국보다 100분의 1도 안 되는 의료비를 쓰면서 평균수명 등 의료지표들은 비슷할 정도다. 그만큼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문의를 많이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전문과목 개원의는 많은 반면 일차의료를 담당할 의사는 적다."

- 전문의가 일차의료를 담당하면 안 되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의사면허를 딴 90% 이상이 전문의를 취득한다.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신경외과 등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원들이다. 하지만 이비인후과가 감기를 치료하는 곳은 아니다. 이비인후과는 외과계열로 수술을 하는 곳이다. 수술은 인력, 장비, 다른 과 의사들의 도움 등 종합적인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의원급이 아닌 2, 3차 병원에서 진료해야만 교육받은 것을 제대로 펼치며 전문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 국가의 전문의 양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로 들린다.

"전문의는 외래환자를 주로 진료하고 24시간 입원환자를 돌보는 등의 업무는 인턴, 레지던트라 불리는 전공의(수련의)가 맡는다. 병원 입장에서 보면 돈이 덜 드는 전공의를 많이 두고 운영하는 게 이익이다. 병원 운영을 위해 전공의를 많이 뽑게 되면 나중에 전문의가 많아진다. 그런데 이들 전문의가 일할 병원을 찾지 못하게 되면 개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럽의 나라들에선 30~50%가 일차의료 의사들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은 이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정의학과를 전공하는 레지던트 비율은 10%가 안 된다."

- 개원을 하고 전공을 택하는 문제는 개인의 자유 아닌가.

"의료기관 간에 역할 분리가 되지 않으면 무한경쟁의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당장은 개원을 할 수 있지만 환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무리한 장비투자 등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경쟁이 심화되고 피해는 개원의뿐만 아니라 환자들에게도 가게 된다. 90% 의사들을 전문의로 양산하는 수련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폭증하는 의료비, 고령사회 같이 10년 후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하는 일에 일차의료 의사들의 역할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 이런 이유로 일차의료가 필요한가.

"일차의료 활성화로 대변되는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 안 되면 자꾸 경쟁을 하게 된다. 환자는 과잉의료, 때론 과소의료에 놓이게 된다. 적절한 의료자원의 배분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일차의료를 담당할 주치의에 대한 의구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고 여러 나라에서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듯이 사람들이 겪는 질병의 80% 이상은 충분히 수련받은 일차의료 의사가 관리할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선 더할나위 없이 좋은 제도가 '주치의제'라고 정 원장은 설명한다. 환자를 편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가 아프다고 해보자. 환자는 자신의 주치의를 찾아가 증상을 설명한다. 일차의료 수련을 잘 받은 주치의는 단순 복통이나 장염으로 인한 것인지, 대장질환 등이 의심되는 것인지 판단한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80~90%가 전자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환자는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물론 의료과잉은 일어나지 않으며 쓸데없는 의료비지출도 발생하지 않는다.

▲ 정가정의원은 2001년 7월 개원했다. 병원 내부에는 17년 세월의 흔적이 쌓여 있었다.

- 얼마전, 일차의료발전특별법안이 발의됐다.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

"찬성한다. 하지만 의료 분야가 다양한 직역이 있는 만큼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일차의료 전담조직 구성, 일차의료 담당 인력이나 기관에 대한 지원을 제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 제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문재인 케어는 어떤가.

"선택진료비 폐지로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린다고 한다.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그렇다. 일차의료기관에서 진료의뢰서를 갖고 가야 3차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진료의뢰서 자체가 형식적이지 않은가. 환자가 가고 싶다면 막을 방법은 없다. 진료의뢰서가 있는 것으로 의료전달체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문재인 케어는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재난에 가까운 의료비로 고통받는 가구를 줄이고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면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일차의료가 부실한 우리나라는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린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차의료 강화와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차의료기관에는 주치의가 있고 2, 3차 병원에는 전문의가 있는 것이다. 주치의제도가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주치의를 거치지 않고 2, 3차 병원에 갈 수 없다. 의료전달체계를 지금보다 더 강력하고 촘촘하게 짜야 한다. 개원의사의 사정도 중요하지만 의료쇼핑이나 과잉의료소비 등을 막을 수 있는 거시적인 안목이 모두에게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의 정책적인 배려도 빠른 시간안에 주치의제도가 정착되는 데 생각해봐야 한다. 주치의를 선택하면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극단적인 방법도 있다. 물론 일차의료를 담당할 의사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 제도도 중요하지만 무조건 큰 병원, 전문병원을 선호하는 국민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소비자의 선택권은 존중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주치의제도를 경험하지 못하고 당장 이익보는 것만 생각한 탓도 있다. 예를 들어 물건을 마음대로 사는 게 최선은 아니잖은가. 사고자 하는 물건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해 모든 정보를 알고 완전히 이해한다고 할 때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의료는 전문성이 강한 분야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하다. 당장은 내 맘대로 병원을 찾아다니는 게 좋아 보이지만 구매하지 않아도 될 물건을 사듯 과잉소비, 불필요한 소비가 문제가 된다."

- 국내에 바람직한 주치의 사례가 있을까.

"장애인주치의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장애라고 하면 흔히 시각, 지체 등 주된 장애만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장애인도 변비에 걸리고 고혈압으로 고생하며 피부병도 있다. 주장애로 신경외과의사만 찾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의사협회 등이 주치의 자체를 금기시하기 때문에 이렇게 사회에서 꼭 필요한 부분부터 시작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 노인주치의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60% 이상 노인은 3가지 이상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 당연히 의료비 지출이 많아진다. 전문의 시스템에서는 과잉치료가 예상된다. 먹어야 할 약도 많아지고 다니는 병원도 많아져 힘들게 된다. 주치의가 필요한 것이다. 최근 성북구에서 발표한 '건강주치의제'이란 이름의 노인주치의제도 반가웠다. 치과주치의제는 독립적으로 가야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분야다."

성북구 건강주치의 제도는 동네의 노인들이 이 제도에 참여하는 동네의원 한 곳을 택하면, 이 병원 의사가 보건소 전담간호사, 동주민센터 사회복지사와 한 팀을 이뤄 대상자의 신체·건강·정신·경제적 여건을 평가해 보건·의료·복지를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 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 주치의제와 일차의료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단호하고 명쾌했다.

창신시장 초입에 위치한 정가정의원은 2001년 7월 개원했다. 한자리에서만 17년째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살피고 있다. 갓난 아기는 고등학생이, 초등학생은 어엿한 숙녀가, 청장년은 나이 지긋한 초로의 모습으로 오늘도 병원을 찾는다. 지천명을 넘기며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정 원장은  "오래 만난 단골은 서로 믿죠. 오해할 여지도 없고 제가 화를 내더라도 '나 잘 되라고 한 것'이라며 웃어넘기는 환자들이 있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기태 newcitykim@gmail.com

<저작권자 © 건강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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