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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치료다>를 읽고

기사승인 2018.08.22  17: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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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치료다>를 읽고

이윤형

바람직한 정신 보건 체계를 논하고 있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얼마 전 보았던 조현병 환자가 경찰관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는 기사와 그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이러한 기사를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물론, 불과 2개월 전까지 정신과 환자들의 탈수용화의 필요성을 짧게나마 배운 나까지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공포, 두려움이 생기고 정신병원을 없앤다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은 우리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단적으로 내가 어렸을 적 동네에 있었던 (조증으로 의심되는)한 아저씨가 생각이 났다. 그 아저씨는 항상 핸드폰을 손에 들고 허황된 사업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 다녔는데 당시 내 또래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그 아저씨가 출몰하면 수근대며 피해 다녔다. 실제로 그 아저씨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을 구체화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없애는 것에 대하여 가족들과 몇몇 친구들에게 의견을 구한 결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가장 첫 번째는 정신 병원을 없앴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이었다. 정신 질환자들이 사회로 나오게 되었을 때 주거, 일자리 등의 문제로 사회에 부적응하여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환각과 망상에 시달리는 정신 질환자들이 자신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간혹 나오는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부추기는 기사들이 이러한 사회적 낙인과 두려움을 형성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정신병원과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치료해야 할 정신 질환자들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무엇이 인권 침해이고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우선 순위와 관심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장애나 암 같은 질병에 비해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다른 기질적인 장애에 비해 정신 질환을 더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한 조현병 환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다른 질병을 앓는 환자들처럼 ‘환자 대우’를 해주기보다는 강제 입원의 대상으로만 본다고 한다. 20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역시 정신병원을 없애는 것에 대한 위와 같은 거부감과 반발이 현대 사회 이상으로 존재했을 것인데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의학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정신병원의 완전 철폐라는 선구적인 업적을 이루어냈는지 궁금해졌다. 나 역시도 완전 철폐에 대한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답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책을 읽었다.

정신병원 완전 철폐의 시작은 이탈리아 변방 트리에스테 지역에 부임한 한 진보적인 정신의학자의 문제 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감금은 기본이고 폭행과 인슐린 쇼크 등의 반인권적인 행동들이 자행되는 정신병원을 그는 개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정신병원의 반인권적이고 억압적인 진료 시스템을 개선시켜 나갔는데 결국 정신병원을 완전히 폐쇄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따라서 그는 팀을 구성해 트리에스테 주의 정신 병원 규모를 점차 줄이고 개방된 지역사회 개념으로 재구성한다. 자유가 보장되는 병원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정신 질환자들과 주민들과의 교류를 증대시키고 지역 거주 시설을 지원하고 협동조합을 육성하여 그들이 지역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가장 핵심적으로 정신병원을 정신보건센터가 중심이 된 지역사회 서비스 체계가 대체하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이 전국적으로 퍼져서 1978년에 정신병원의 점진적 폐쇄 내용이 담긴 바살리아 법이 통과된다. 그 이후 정신보건센터가 점차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항상 전문 인력이 상주하며 환자에 대한 일상적인 진료에서 응급 상황 대처, 상담, 단기 입원, 사회 복구를 위한 재활 서비스까지 담당하게 된다. 또한 정신보건국에서 여러 사회 기관단체들과 협력을 통해 주거, 고용 문제들을 해결하였고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편견도 점차 해소시켜나가서 결국 1998년 전국의 정신병원이 폐쇄되게 된다. 이런 업적이 모범이 되어 정신보건 센터 모델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이탈리아의 사례를 읽고 나니 앞서 가졌던 3가지 의문점에도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정신병원 폐쇄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급성기의 환자를 단기적으로 입원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으며 주거 지원 시스템과 직업 교육, 협동조합 육성 등의 일자리 지원을 통해 환자들을 지역사회에 안착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두 번째로 정신병원 수용은 환자들의 치료에 좋은 방법이 아니며 더 나아가서 심각한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바살리아가 정의한 ‘시설화’라는 개념에 따르면 수용소에서 환자들은 자아를 상실하고 질병과 반복 입원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한다. 어떤 계획이나 미래도 없고 개인적 동기도 없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항상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한 조현병 환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병원에 갔다 오면 증상이 완화돼 사회 구성원으로 지낼 수 있어야 하는데 폐쇄 병동은 오히려 그걸 방해한다고 한다. 세 번째로 위와 같은 환경들에 의해 정신 질환자들은 ‘환자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수용 대상으로 전락하여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고통 받고 있기 때문에 그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아가야 할 방향도 명확하고 그 필요성도 명백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따라가기에 많은 한계가 보였다. 무엇보다도 재정적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영 비용은 정신보건센터 모델이 더 적다고는 하나 현재 민간 정신병원 위주에서 지역별 정신보건센터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는 것은 큰 초기 투자비용이 들 것이다. 그에 반해 현재 지역사회 정신보건 사업 지원에는 인색한 현실이라고 한다. 한정된 재화밖에 투자할 수 없는 보건의료 체계에서 현실적으로 정신 질환이 우선적으로 고려되기 어려운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이렇게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현재 부수적인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는 정신보건센터를 주민 5~6만 명 단위 지역 중심으로 만들어서 지역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는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회적 인식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조현병 환자의 인터뷰를 참고하면 한국의 언론과 국민들은 정신 질환에 걸린 원인과 범죄를 저지르는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조현병’이 범죄의 원인이며 무조건 미친 사람이라 낙인찍고 격리시킨다고 한다. 사람들은 치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단순히 격리되어 치료를 받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사는 불과 보름 전에 나온 기사이다. 이런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탈리아 모델은 정말 먼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세 번째로는 제도적 문제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탈 수용화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시행 단계에 있지만 탈 수용화가 명확히 천명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정책도 비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수용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려면 병상 수에 비해 의사 수가 많아야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전문 인력(의사, 간호사)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나라가 현재 선진 정신보건체계를 도입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향해야 할 목표임은 확실하다.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개혁 운동은 당시 여성, 장애인 등의 사회운동과 그 흐름을 같이 했다고 한다. 모든 사회운동이 그렇듯 정신 보건 개혁 운동도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한계가 많아 보이지만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하나씩 바꾸어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보건 개혁을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정신 질환자들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과 제도적 뒷받침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는 정신 질환자들을 사회적 약자로 보기는커녕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감만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 없이 제도 수정을 통한 전국적인 정신보건 개혁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신 질환자들이 처한 상황과 정신 병원의 실태에 대해 알리고 지역 사회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신보건센터 모델이 중심이 되는 시범 지역을 선정하여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모범 지역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역시 트리에스테 지역의 개혁을 통해 전국적인 관심과 지지를 얻었고 이는 곧 정신보건 혁명의 핵심 원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현재 부수적인 역할만을 담당하던 정신보건 센터가 지역의 중심이 되어 성공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례를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만들고 홍보를 한다면 점차 인식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고 제도적 변화를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개혁들은 물론 의사들이 선구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겠지만 여러 사회의 기관, 단체들과 환자 본인 그리고 가족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정신과 의사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지으신 의사처럼 다른 영역의 의사들도 개혁에 일조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는 내내 얼마 전 정신의학을 배운 의학도로서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이 책을 통해 정신 질환자들에 대해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고 사회적 약자의 범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비단 정신 질환자들 뿐만이 아니라 사회에는 아직도 관심과 공감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의료계에 종사할 사람으로서, 시민으로서 그들을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관심과 지지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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