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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방글라데시 의사가 진료해야

기사승인 2019.01.28  19: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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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다문화에 말을 걸다!' 캠프에서

박중철(녹색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는 어리고 경험도 많지 않은데다, 말도 잘 통하지 않아서 진료를 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의 진료를 방해하고 이곳 방글라데시 주민들에게도 나쁜 진료를 하게 될 것 같아서 진료를 그만하려 합니다."

내가 내 옆에서 함께 무료 진료를 하고 있던 현지 방글라데시 의사 선생님에게 정중히 이 말을 건냈을때 통역을 하던 현지민은 매우 당황스러워 하였다. 현지 의사선생님 표정도 당황스러워 하였지만 "노 땡쓰~ 노 땡쓰~" 라고 말해 주었다.

지난 8박 10일 동안 방글라데시의 4곳 도시를 순회하였다. 남양주시 외국인복지센터에서 주관한 '청소년, 다문화에 말을 걸다!' 일명 '청다말' 캠프에서 우리나라 고등학생 16명과 나와 방글라데시인 스태프 2명을 포함한 성인 참가자 19명, 총 35명이 참가하였다.

이번 캠프의 가장 큰 특징은 현지 활동은 철저히 방글라데시 현지 단체가 주도했다는 것이다. 전체 진행과 수도 다카에서의 활동은 한국에서 이주 노동을 하다 귀환한 방글라데시인들이 모여 조직된 KBFS(Korea Bangladesh Friendship Society)가 이끌었고, 통기바리라는 곳에서의 일정은 현지 젊은 지식인들이 지역 발전을 위해 자생 조직한 BPS(Bangladesh Pariot Society)가, 로호정 지역에서의 일정은 지역 빈곤 아동의 교육을 지원하고 있는 ALO(Advance Lauhojong Organization)가 주도하였다.

BPS와 ALO는 현지 자생 단체이지만 그 핵심 멤버는 역시 한국 이주 노동자 출신이다. 그리고 앞선 두 지역보다 훨씬 발전된 도하르 지역에서의 일정은 SAMS-92라는 단체가 주도했다. 이는 Students Association of Malikanda School-92의 약자로 도하스의 말리칸다 고등학고 92년 졸업생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나름 출세하여 대학교수, 지역 신문사 사장,  의사, 변호사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마치 우리나라의 로터리클럽과 같은 인상을 준다.

나는 이 캠프의 팀 닥터로 참여하면서 간단한 현지 의료 봉사도 병행하기로 하였는데, 처음부터 캠프 관계자에게 한국에서 흔히 해외 의료봉사때 남발하는 나쁜 약뿌리기식 진료는 하지 않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대신 통기바리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아닌 BPS 멤버들을 대상으로 건강상담을 하였고, 한국인에 이주 노동을 가 있는 이들의 가족 집을 찾아가 역시 진료 및 건강상담을 시행하였다. 로호정에서는 작은 섬으로 들어가 5세미만 어린아이들의 건강검진을 시행하여 혹시 모르고 있는 질환이나 장애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진료 외의 시간은 학생 봉사자들과 섞여 보조도우미 역할을 하였다.

이전 지역들보다 훨씬 발전된 도하르에서는 SAMS-92와 함께 활동을 하였는데 그들은 지역주민들의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었고, 현지 정부로부터 땅도 증여 받아서 사무실과 무료 진료소도 운영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는 모든 쓰레기를 그냥 바닥에 버리고 있는데 우리는 SAMS-92 멤버들과 함께 거리 쓰레기 줍기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나는 SAMS-92의 의사 멤버와 함께 무료 진료소에서 현지민들을 진료하기로 사전에 계획이 되어 있었다. 큰 길가 옆에 노점처럼 차려진 진료소는 양철판벽으로 공간이 나뉘어져 있었고, 대기실과 2개의 작은 진료실이 차려져 있었다. 길가쪽으로는 벽이 없이 열려 있어서 커텐처럼 천으로 가려진 상태였다. 나는 두 개의 진료실 중 하나에서 현지 의사와 함께 진료를 하게 되었다.

내 첫 환자는 히잡으로 얼굴과 목을 가리고 눈만 드러낸 여자 고등학생이었다. 그녀는 간혹 배가 아프다고 하였는데, 외국인 의사가 청진기를 데려고 하자 쑥쓰러워하며 몸을 돌렸고, 몇가지 질문에도 무척 부끄러워하며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여학생에게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사과와 함께 이 학생을 현지 의사 선생님이 진료를 하시도록 바꿔 달라고 통역에게 부탁했다. 두번째 환자는 편두통을 호소하는 역시 여자 고등학생이었다. 깨질듯하게 머리가 아프면 현지 약국에서 구입한  타이레놀과 비슷한 paracetamol을 먹지만 그리 효과가 좋지 않다고 하였다. 현지민들은 의약분업 전 우리나라처럼 작은 점포같은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는데 모두가 현지 상품명이어서 가져와 보여 주지 않는 이상 무슨 약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편두통의 관리와 약 복용의 유의 사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나서 나는 두번째 환자 진료를 마무리 하였다. 그리고 옆 책상에서 진료중인 현지 의사에게 이 곳에서의 내 진료는 여기 마무리하겠다고 정중한 '통보'를 하였다.

우리 캠프와 현지 SAMS-92은 현지 의사와 한국인 의사의 무료 진료소에서의 협진이라는 그럴싸한 그림을 연출하고자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방글라데시 의사가 있는 이상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방글라데시 의사가 진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내 결정에 모두는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모든 일정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 멤버들과 SMAS-92 멤버들이 모두 모인 평가회 시간이 열렸다. 그때 누군가 나를 지목하여 소감을 요청하였기에 나는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한 문장 한 문장 통역이 되었다.

"저는 올해로 의사가 된지 19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졸업을 하고 바로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서 3년간 일했습니다.
그곳에는 병원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8개월된 산모가 새벽 3시에 갑자기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아침 7시에 아이는 죽었습니다.
3년 동안 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곳에서 의사는 저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즉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나 외과 의사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한국의 큰 병원의 외과 레지던트 기회가 있었지만 저는 결국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년간 많은 해외 봉사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 진료와 가난한 사람들 진료를 하였습니다.
그 중 젊어서는 몸을 팔고 나이가 들어 병이든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병이 많았고 술과 담배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한달에 한번 진료하였는데 그녀가 담배를 끊으면서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닥터 박은 설명을 쉽게 잘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과 설명이 중요한 가정의학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 의사가 가장 잘 압니다.
방글라데시 사람은 방글라데시 의사가 가장 잘 압니다.
남자들이 어떤 위험한 일을 하고,
여자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학생들이 어떤 미래를 불안해 하는지
방글라데시 사람이 가장 잘 압니다.
그 모든 것은 건강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의료 봉사에서 제 첫 환자는 여자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제가 그 학생이라면 낯선 외국인 의사가 아닌 방글라데시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옆에 있던 닥터에게 "I'm sorry."를 말하고 진료를 중단하였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의 병은 방글라데시 의사가 가장 잘 압니다.
외국인 의사가 아닌 방글라데시 의사들이 모든 방글라데시의 아픈 사람들을 진료할 수 있도록 SAMS-92가 노력해주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평가회가 모두 끝나고 그 현지인 의사가 내게 나가와 악수를 요청하면서 자기 명함을 건냈다. 명함에는 이메일 주소 외엔 모두 방글라데시 말이어서 나는 그의 이름조차 다시 기억할 수가 없다. 아무튼 방글라데시의 의료 평등과 건강 평등은 그들의 몫이지 내 사명은 아니다. 우리 한국 스태프들도 그것을 잘 이해했길 바란다.

방글라데시는 기본적으로 4개 국어를 한다. 방글라데시 말과 영국 식민지였기에 영어를 하고, 심지어 이슬람이어서 힌두어와 코란을 읽기 위해 아랍어를 배운다. 우리 캠프의 자원봉사자로 현지에서 합류한 방글라데시 친구들은 심지어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한국어까지 배웠기에 5개 국어를 한다. 오히려 나는 이번 캠프에서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열등감과 위화감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교육의 혜택이 방글라데시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퍼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KBFS, BPS, ALO, SAMS-92 같은 현지 젊은 지식인들의 몫이자 과제이다. 그리고 그들이 대부분 방글라데시 청소년들의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방글라데시의 미래가 무척 밝을 것 같다는 인상을 내게 심어주었다.

깨어 있는 방글라데시 젊은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며 요즘 유행하는 한국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떠올랐다. 자기 출세와 과시를 위해 공부를 강요당하고 강요하는 한국 엘리트 집단의 이기주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 속 우리 현실은 어찌보면 방글라데시 앞에서 선진국이라 명함을 내밀기 초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글라데시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반성하게 된다. 또한 방글라데시가 나중에 고소득 국가로 발전했을 때 우리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건강미디어 mediahealth20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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