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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친화적 의료 환경을 위한 공동의 고민

기사승인 2019.01.28  21: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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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 현장에서 느끼는 의료진의 고민 지점


살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장창현

* 이 글은 '2019년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에서 2018년 7월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시작하게 된 정신과 의사 장창현이라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제가 일하고 있는 살림의원은 성별, 성정체성, 가족의 형태 등 그 어떤 차이도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여성주의 의료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료기관입니다. 이 글에서 저는 살림의원이 현재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 환경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미국정신과의사협회(American Psychiatry Association)에서 출판한 단행본 <트랜스젠더 정신건강(Transgender Mental Health)>에서 조언하는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 환경은 어떤 것인지 정리하였습니다.

살림의원을 일단 들어서면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10원칙이 눈에 띕니다. 이 중에서 8원칙은 ‘약자 우선과 다양성 존중’ 입니다. 불평등과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모두 함께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옆으로 돌아서면 ‘성중립 화장실’이 보입니다. 남자, 인터섹스, 트랜스젠더, 아이 동반, 기저기 교체, 장애인 등 여러 기호가 화장실 문에 새겨져 있습니다.

대기실 한 귀퉁이에 책장이 있습니다. 꽂혀있는 도서 중에는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이라는 책이 눈에 띕니다.

진료를 받기 위해 접수 데스크에 다가갑니다. 처음으로 진료를 받으러 오신 경우에는 데스크에 계신 담당 직원 분께서 ‘초진 문진표’를 주십니다. 이 초진 문진표는 의원에 방문하시게 된 이유를 파악하고, 과거 병력과 가족 병력, 건강 행태 등을 진료 전에 미리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독특한 것은 초진 문진표의 종류가 소아, 성인, TG(트랜스젠더)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초진 문진표의 경우에는 성전환 수술을 받았는지 혹은 계획하고 있는지 여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는지 여부 등의 질문이 쓰여져 있습니다. 의사와의 면담 시에 대화로 얘기하기에는 무거운 주제들을 미리 문진표에 기록하여 심리적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정의학과 진료에서는 성소수자 분들 중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의 필요가 있는 분들에게 호르몬 치료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호르몬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 환경의 필요 조건 중 하나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호르몬 치료는 의학 교과서에도 분명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 교과서적인 진료입니다. 하지만 사회의 편견, 의료진의 편견 등으로 인하여 아직 제도권 의료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무면허 시술, 약품의 암시장을 통한 유통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르몬 치료도 의료의 관점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모든 치료는 효과와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들어야 하지요.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증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호르몬 검사도 필수입니다.

세계트랜스젠더보건의료전문가협회(World Professional Association for Transgender Health, WPATH)에서 발간한 트랜스섹슈얼, 트랜스젠더, 성별비순응자를 위한 건강관리 실무 표준에는 호르몬 치료를 위해서는 적절한 정신건강 평가가 필요하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호르몬 치료 전에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호르몬 치료 후 기존의 정신질환의 악화 내지는 불안정화가 부작용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다학제적으로 치료를 할 수 있다면 호르몬 치료를 위해 내원하는 성소수자 당사자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과 진료 현장에서도 몇 가지 고민을 통한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당사자가 정신과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이중적 스티그마에 노출이 될 수 있습니다. 둘 중의 하나의 부담만 조금 낮추어도 진료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에 정신과 진료 자체로 인한 스티그마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한 시도로 진료실 문에 담당 의사 이름만 명기하고 진료과는 표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료실 책장에 트랜스젠더 정신건강 교과서 책을 꽂아두고 있기도 한데 진료실 들어오시는 분 들이 알아봐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2018년에 미국정신과의사협회(American Psychiatry Association)에서는 <트랜스젠더 정신건강(Transgender Mental Health)>이라는 단행본 교과서를 발간합니다. 내용 중에서 성소수자 친화적 클리닉 만들기(Establishing a TGNC-Friendly Clinic)이라는 단원이 있습니다. 이 단원의 내용을 살펴보고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발췌했습니다1).

트랜스젠더와 성별 비순응자들은 성소수자 건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의사와 자신들을 존중해 줄 의료진, 그리고 안전한 환경을 가진 진료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건강을 돌볼 역량 있는 임상 의사에 대한 필요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단 무엇보다 성소수자들이 환영 받지 못하는 공간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다양한 약물, 수술, 정신건강 치료 옵션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들은 찾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은 의사, 병원 직원을 포함합니다. 그들이 찾아오는 모든 과정을 상상해보면 좋겠습니다. 의원에 전화를 하여 예약하기, 의원으로 걸어 들어오기, 의사를 만나 상담하기 등. 다음은 성소수자 친화적 의원을 꾸리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입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입소문도 있을 수 있지만, 온라인 광고 등을 통해 성소수자 진료에 역량이 있음을 알릴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접수 데스크의 직원은 진료 시에 첫 대면자입니다. 따뜻하고 공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소수자 환자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를 대면할 때 필요한 문화적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홍보물이나 프린트물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 수용적인 문구를 담은 표지물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예: All Genders Welcome – 모든 성별 환영) 프라이드 플래그 스티커를 문이나 대기실에 붙여 놓기도 그들을 안심시킬 수 있습니다.

클리닉의 배치나 화장실의 표지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성중립적 표지를 갖춘 개인별 화장실이 가장 좋습니다. 퀴어 커뮤니티에서 발간하는 잡지를 비치해놓는 것도 방법입니다. Out, The Advocate 와 같은 잡지를 추천합니다. 문진기록지의 성별 란에는 다음과 같이 모든 성을 체크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 남성, 여성, 트랜스젠더, 성별비순응, 인터섹스, 기타. 이름 란에도 주민등록상의 이름과 불리길 바라는 이름을 병기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기록하는 차트에 성별이 시스(cis)인지 트랜스(trans)인지 표기를 하면 좋습니다. 트랜스젠더임을 표기하기보다 성주체성(gender identity)를 기록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의뢰 자원을 잘 확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심리치료사, 정신과 의사, 일차의료 의사, 내분비내과 의사, 산부인과 의사, 성전환 수술 전문 의사, 지지 단체, 법적 자문을 구할 변호사, 쉼터 등.

글을 마치며 -위에서 언급한 교과서적 조언들도 많은 참고가 됩니다. 하지만 많은 의사들은 말합니다. ‘환자 분들이야 말로 최고의 스승’이라고. 성소수자 당사자 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 분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이야 말로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환경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참고문헌

1. Eric Yarbrough. Transgender Mental Health.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Publishing, 2018.

 

 

건강미디어 mediahealth20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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