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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보건과 젠더 - 1 들어가며

기사승인 2019.02.04  00: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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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의료, 젠더를 말하다] 7

김새롬

예방의학 전문의, 시민건강연구소


1. 들어가며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한 2009년 이후 약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는 양적·질적으로 크게 발전했고, 국제보건은 한국의 보건의료인들에게 그리 생소하지만은 않은 진로 또는 전공이 되었다. 해외 의료봉사, 긴급 구호, 국제 유행병, 해외 여행객과 국내 거주 외국인의 건강, 북한의 결핵과 말라리아 관리 사업까지 지리적 경계로 한국의 경계를 넘어 세계인의 건강을 다루는 영역은 넓고 다양하며, 관련 예산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국내 여러 보건의료인 및 보건의료 계열 학생들이 국제보건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의 직업 또는 공부할 학제로 국제보건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지난 10여 년 사이 다양한 국제보건 동아리와 민간 단체가 구성되었고, 2013년에는 국제보건의료학회가 발족했다. 이런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들을 반추해보면 보건의료인과 학생들이 국제 보건에 흥미를 느끼는 데에는 국내에서 보건의료인으로 살아가게 될 삶이 그리 흥미진진할 것 같지만은 않다는 이유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의료 서비스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힌 이해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고, 의료 기관에서는 환자도 일하는 사람도 불만족을 호소하는 한편, 2030년이 되면 여성과 남성 모두 전 세계에서 가장 긴 기대 여명을 누릴 것으로 전망되는 한국에서 지향과 현실이 모순을 이루지 않는 의료인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국제보건이 무엇이고, 이것을 진로 혹은 전공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과 그를 위한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국내’보건과 ‘국제’보건은 어떻게 다를까?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남겨져 있는 상태에서 ‘여기가 아니라 저기’를 꿈꾸거나 지구를 활동 무대로 삼는 국제 공무원과 국제 활동가의 삶에 환상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국제보건 영역에 대해 가장 흔히 던져지는 질문은 아마도 한국 내에도 여러 이유로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어째서 국경 넘어 누군가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말하고 공부해야 하냐는 질문일 것이다. 이 질문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국제보건의 가치를 드러낸다. 국민국가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서는 실천으로 국제보건은, 이전에는 비교적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고 정립해야할 필요성을 던져준다. 국경을 넘어 건강을 말할 때에 더 긴급하고 절실한 건강 필요를 판단하는 기준과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의 어떤 건강을 권리로 인식하는가? 모두에게 건강할 권리가 있다면 이에 대한 자원 배분은 어떤 기준으로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가? 그런 지구적 자원 배분에 대한 결정은 정당하고 공정한가? 이런 다양한 의문들은 사뭇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에서 국제 보건 실천은 실제로 끊임없이 인간과 사회, 국가, 세계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충돌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주제인 젠더와 페미니즘은 국제 보건과 어떻게 교차하는가? 먼저 세계적 수준에서 간절한 건강 필요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대체로 여성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UNDP는 1995년 인간개발 보고서에서 빈곤은 여성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며 세계적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의 심각성을 보였고, 같은 해 북경 세계여성대회에서는 모든 정책과 개발 영역에서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를 행동 강령으로 선언했다. 건강 영역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는 북경 세계여성대회 전부터 있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인 아마티아 센은 1990년 쓴 글에서 자연적인 남녀 출생 성비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 아시아에서만 1억여 명의 여성이 실종missing되었다고 추정했다. 센은 일부 지역에서 비자연스러운 성비 불균형이 여아 선택 낙태와 여아 살해, 여아에 대한 가정 내 자원 배분의 불평등으로 인한 영양 부족과 제한된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실종되지 않은 여성들이라고 해서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여성 성비가 부자연스럽게 낮은 인도,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 여성들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성인이 되어서도 남성보다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데 이는 모성 사망과 지참금 살인, 생애 주기 내내 지속되는 가정 내에서 불평등한 자원 배분과 관련이 있다.(1)(2)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인구 집단의 삶과 건강을 개선하고자 하는 국제보건은 자연스럽게 살아남은 여성들의 충족되지 않는 건강 필요로 향한다.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건강과 삶의 절대적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모성사망률을 감소시키고, 질병과 사망을 줄이며, 아동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고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기획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국제보건 사업은 소녀와 여성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중요한 전략이자 목표로 삼는다. 소녀와 여성의 임파워먼트는 그 자체로 마땅히 추구해야 할 목표인 동시에 국제보건 사업의 성공과 지속가능성의 열쇠다.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가정 내에서 소득과 자원을 통제하며, 중요한 의사 결정에 개입할 권력을 가지는 것은 모성과 아동의 건강, 영양, 가족계획, 위생 사업 등 다양한 건강 결과를 향상시킨다.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보다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고,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하고, 공동체와 집단의 활동에 참여하고, 유급 노동에 참여하는 것 역시 여성의 건강, 더 나아가 아동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3) 

이 글은 국제보건이 젠더 그리고 페미니즘과 어떻게 교차하고 얽혀있는지 간략하게 조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국제보건과 페미니즘은 양자 모두 고정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지식이자 실천으로, 각각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존재한다. 국제보건, 그리고 페미니즘의 유동하는 정의와 실체를 종합하여 논의하는 것은 저자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국제보건과 페미니즘 모두를 입장 혹은 세계관으로서 여기는 관점에서 이를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저자는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주권 국가의 국민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속되어 있는 지구라는 단일한 공동체에 대한 소속을 정체성으로 삼는 관점에서 모두의 건강할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국제보건의 목적이자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어떨까. 정희진은 페미니즘에 대한 개념 정의를 묻는 독자에게 앞으로도 페미니즘에 대한 고정된 규정은 없을 것이라면서 페미니즘이 ‘경계border에 대한 사유’라고 말했다.(4) 

앞으로도 진행되고 변화할 인식이겠지만, 나는 페미니즘을 모든 인지가 젠더화되어 있고, 따라서 모든 지식과 실천 또한 젠더화되어 있다는 세계관으로 이해한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은 젠더 체계가 국제보건에서 활용되는 의학과 보건학적 지식 그 자체부터 보건의료인의 직종-젠더 교차, 국제기구의 젠더 구성과 인식, 더 나아가 국제 원조 여부를 결정하는 국제 정치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인식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건상 이 글에서는 현실에서 실체를 가진 학문 분과이자 사업 영역으로서 국제 보건 그리고 관련된 젠더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각주

(1) Sen, A. (1992). Missing women. British Medical Journal, 304(6827), 587–8. https://doi.org/10.1136/bmj.304.6827.587

(2) Sen, A. (2003). Missing women—revisited: reduction in female mortality has been counterbalanced by sex selective abortions. BMJ: British Medical Journal, 327(7427), 1297.

(3)Taukobong, H. F., Kincaid, M. M., Levy, J. K., Bloom, S. S., Platt, J. L., Henry, S. K., & Darmstadt, G. L. (2016). Does addressing gender inequalities and empowering women and girls improve health and development programme outcomes?. Health policy and planning, 31(10), 1492-1514.

(4)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13.

건강미디어 mediahealth20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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