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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보건과 젠더 - 3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으로서 젠더

기사승인 2019.02.04  01: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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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의료, 젠더를 말하다] 9

김새롬

예방의학 전문의, 시민건강연구소

3. 국제보건에서 젠더
 
(1)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으로서 젠더
 
젠더는 중요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다. 생물학적 성이 유전적·생리적·구조적 차이를 발현시키고, 이것이 건강상의 필요와 취약함의 성차로 나타난다면 사회적 정체성으로 젠더 역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먼저 젠더는 의료 이용과 의료 이용 경험에 체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잘 사는 나라에서나 못 사는 나라에서나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남성에 비해 의료를 이용하는 데에 더 많은 제약을 겪고, 의료 이용을 하는 경우에도 남성 환자에 비해 호소한 증상에 대해 충분한 치료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이 통증을 호소했을 때 남성에 비해 기질적 원인이 아닌 심리적, 정신적 원인에 의한 통증을 의심받고, 이에 따라 여성에서 심각한 심혈관계 질환 진단이 지체되는 것은 대표적인 예다.(1)  이는 보건의료 지식과 실천에 오랫동안 축적된 젠더 편견을 보여주며, 이런 경향은 비단 심뇌혈관 질환에 그치지 않는다.(2) 

젠더는 의료 영역을 넘어 영역을 가로지르는cross-cutting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이다. 이는 젠더가 소득, 고용, 교육, 법적 보호, 정치적 참여 같이 다양한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들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며, 건강에 상호연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소득 수준과 고용율이 낮고,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며,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데 이는 모두 여성의 건강과 관련이 있다. 보다 근본적인 층위에서 젠더는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를 인지하고, 자신의 삶과 건강에 대한 통제를 행사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로 작동한다. 수행적인 의미에서 젠더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규정하고, 관계 맺으며, 일하는 방식을 구성하는 기초 구조 중 하나이기에, 건강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회적 결정 요인들은 사회의 기본 구성 요소로 젠더와의 상호작용한다.

전세계적 건강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모두의 행동을 촉구한 세계보건기구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 위원회의 하부 분과인 여성/젠더 지식 네트워크는 젠더 권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분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으로 젠더에 대한 이론적 틀을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그림). 

▲ 그림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으로 젠더의 역할에 대한 이론적 틀(자료: Sen, G., Östlin, P. (2009). Gender equity in health: the shifting frontiers of evidence and action. Routledge. pp.4의 그림을 번역)

다양한 건강의 구조적 결정 요인들은 젠더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이는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네 가지 경로를 따라 건강과 사회경제적 결과로 이어진다. 첫 번째 경로는 차별적 가치와 규범, 실천, 행태이다.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젠더 차별적인 가치 부여는 여성과 남성, 소년과 소녀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규범은 일상적 필요와 역할을 규정하며, 가정 내에서 누가 무엇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권위를 가지는지에 대한 결정도 젠더와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 젠더화된 구분은 종종 교육과 음식을 포함하는 기본적인 재화 접근에서 젠더 차별을 야기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과 인식 제고, 의식화가 필수적이지만 이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젠더 차별적인 가치와 규범을 변화시켜나기 위한 조직적,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일례로 HIV/AIDS와 성병이 심각한 건강 문제인 지역에서는 감염성 질환에 대한 치료뿐만 아니라 여성 폭력 근절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장, 젠더 민감한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한 보건의료인 훈련, 유해한 남성성 규범을 변화시키기 위한 개입이 필요하다. 여성이 재산이나 토지를 소유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법률을 개선하고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며, 결혼 최저 연령 설정하는 등 법제도적 개선이 동반되었을 때 성차별적 건강 행태나 젠더 차별적 가치 부여를 변화시킬 수 있다. 
  
젠더 불평등을 매개하는 두 번째 경로는 건강 위험에 대한 차별적 노출과 취약성이다. 이는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으로 구성된 젠더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임신과 출산을 담당하는 여성들은 동년배 남성들에 비해 더 많은 건강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과 반드시 관련이 있지 않은 사회적 젠더 위계로 인한 취약지점도 다양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폭력, 가부장적이고 남성의 필요를 중심으로 설계된 공공 개입, 젠더화된 노동 분업과 여성을 배제하는 법과 제도 등은 모두 여성들의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한 개입 지점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편견 없이 남성과 여성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건강필요를 젠더 감수성 있는 관점에서 파악하고, 기존에 무시되어왔던 필요들을 해결하며, 억압적인 젠더 규범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젠더변혁적gender-transformatory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세 번째 경로는 편향된 보건의료 체계이다. 보건의료 체계는 보건의료 인력이나 의료 서비스만이 아니라 인구 집단의 건강을 유지 증진하고자 하는 더 넓은 사회적 규범과 가치를 지향하고 실천하는 행위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건의료체계는 대체로 제공자와 이용자 측면 모두에서 젠더 평등을 달성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 젠더 편향은 의료전달 체계의 매 단계마다 작동하며, 이는 의학적 지식 생산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보건의료 기관을 포함해 건강 필요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절대 다수는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들의 기여와 전문성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며, 일선 간호사와 마을건강원community health worker, 가정의 돌봄 노동자들은 건강 돌봄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지만 절절한 권한과 통제력을 가지지 못한다.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남성 중심적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를 인식하고 여성들의 관점에서 필요를 파악하고 변화를 모색하며, 젠더 감수성 있는 방식으로 돌봄과 치료를 변화시켜나가야 한다. 
  
마지막 경로는 건강과 관련된 지식 생산 과정에서의 편향이다. 연구 인력의 젠더 불평등은 여성의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을 어렵게 만들고, 여성과 남성의 건강 필요를 부분적으로 다루게 만들며, 젠더와 다른 사회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건강과 관련된 많은 연구들은 여전히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자료를 수집하고, 젠더 격차의 여러 측면들을 고려하지 않는 연구 방법론을 활용하며, 신약 개발 등 임상 연구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 정책 자문위원회, 윤리위원회 등 주요 의사결정 참여에서 성비 불균형이나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역시 지속되고 있다. 
  
여성/젠더 지식 네트워크는 건강 영역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작동하는 젠더와 그로 인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일곱 가지 제안을 제시한다. 첫째, 각 국가의 정부는 젠더 불평등의 핵심적인 구조를 다루어야 한다. 여성의 인권과 건강할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여성들이 동등한 정치적·사회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물질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둘째, 젠더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여성의 건강을 해치는 규범과 실천에 대응하는 다수준 전략을 고안해야 한다. 아내를 때리는 것이 부당하며, 원하지 않는 성관계가 폭력이라는 것을 남성들이 받아들이고 기존의 남성성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안전과 온전성은 결코 담보되기 어렵다. 셋째, 젠더화된 취약성과 노출을 줄임으로써 남성과 여성의 건강 위험을 줄여야 한다. 젠더에 따라 서로 다른 건강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원을 투입하고 개입을 기획해야 한다. 넷째, 보건의료의 생산과 소비 양 측면에서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보건의료 체계의 여성에 대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평균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돈, 자원, 시간에서 더 취약한 위치에 있으며, 긴축으로 인한 공공서비스 축소나 본인 부담금 부과 같은 사회경제적 변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건강 영역, 특히 비공식 돌봄 영역에서 여성들의 기여를 인식하고 정책 결정에서 젠더에 대한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 다섯째, 건강 연구의 내용과 과정에 대한 젠더 불평등을 인식하고 현황을 파악하며, 개선을 위한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여섯째, 모든 수준의 조직에서 젠더 평등을 주류화하며, 여성의 권한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지 구조와 인센티브, 책무 기제를 고안해야 한다. 일곱째, 여성의 주체성과 목소리를 지지할 수 있는 여성 조직을 지원하고, 이들이 문제를 밝혀내고 혁신적인 해결법을 실험하며 다른 부문들에 변화를 요구할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한다. 

각주

(1) Canto, J. G., Rogers, W. J., Goldberg, R. J., Peterson, E. D., Wenger, N. K., Vaccarino, V., ... & NRMI Investigators. (2012). Association of age and sex with myocardial infarction symptom presentation and in-hospital mortality. Jama, 307(8), 813-822.

(2) Jamison, L. (2014). Grand Unified Theory of Female Pain. Virginia Quarterly Review, 90(2), 11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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