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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낙인의 대상이 되는가

기사승인 2019.05.21  2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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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중(인권의학연구소 이사)

낙인의 역사는 길다. 중세 시대 남성 권력에 금이 갈 무렵 ‘마녀’라는 낙인으로 많은 여성이 화형당했다. 나치즘 아래 우생학의 이름으로 유대인뿐만 아니라 정신장애인, 신체장애인 등이 수용소로 보내졌다.

낙인찍힌다는 것은 이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배제된다는 의미이다. 배제된다는 것은 제거되거나 추방되거나 격리되거나 이게 어려우면 최소한 조용히 숨죽이고 살기를 요구받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다양한 사람들이 낙인의 대상이 되어 우리 이웃이 되기를 거부당하고 있다.

 

낯설다

낙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서는 몇 가지 공통적 특징이 발견된다. 우선 낯선 존재들이다. 낯설다는 것은 우리와 다르며 그 존재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걸 의미한다. 난민들은 새롭게 우리 사회에 등장한 사람들이며 동성애자, 정신장애인들은 오랫동안 이웃으로 같이 살아왔음에도 자신들을 숨기고 지내 여전히 낯선 존재들이다. 전염병 환자들 모두 익숙한 이웃들은 아니다.

대규모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나타나자 사람들이 이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서울 중심가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되자 이들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정신장애인의 존재는 언론에 보도되는 범죄를 통해서 드러나곤 한다.

 

위험해 보인다

단지 낯설다는 이유로 기피하거나 멀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낯설면서 동시에 위험하거나 위험해 보이는 요소가 있다. 그 위협은 경제적인 위협, 신체적인 위협, 신념에 대한 위협 모두를 포함한다. 그러한 위협이 실제 존재하거나 그럴 것이라는 추정 또는 실제보다 부풀려진 과장일 수도 있다.

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의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전쟁을 피해 도망쳐온 평범한 사람들이거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탄압받고 피신해온 민주 투사들이다. 종교적 이유 또는 성적 지향의 차이로 자기 나라에서 탄압의 대상이 되어 찾아오기도 한다.

성 소수자의 경우 특별히 더 폭력적이거나 사회에 위협이 된다는 근거는 없다. 성 소수자에 대해 가장 거부감을 보이는 보수 기독교계의 경우 종교적 신념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으로 낙인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

정신장애인 강력 범죄가 보도되면서 위험성이 부각되지만 실제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비장애인에 비해 훨씬 낮다. 강력 범죄만 따로 보더라도 아주 낮은 게 통계적 사실이다.

전염병 환자들이 실질적인 위험 요소를 갖고 있지만 이를 낙인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보건의료의 문제로 정당한 프로세스를 갖춰서 해결해 나가만 될 듯하다. 실제 위험성보다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거나 무지로 인해 낙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센인, HIV 감염인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낙인의 대상이었다. 한센인들은 소록도로, 한센인 촌으로 격리당해야 했고 HIV 감염인은 지금도 심리적 장벽 속에 갇혀 살고 있다. 전염력이 소실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가 되어도 한번 고착된 낙인 효과는 없어지지 않는다

 

약자이다

우리보다 약한 사람에게 낙인이 작동한다. 낯설면서 위험한 존재가 아주 강하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낙인은 배제를 목표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배제는 현실에서 그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강한 사람은 현실적으로 배제하기 어려워 낙인을 가하고 싶어도 낙인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재벌’이라는 낙인이 가능할까? 엄청난 반발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현실 사회에서 이들을 직접 배제할 수가 없다. 사회적 배제가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소수자이다

낙인의 대상이 소수자인 데는 이유가 있다. 대상이 많아지면 물리적으로 배제할 수가 없어 같은 공간에 공존할 수밖에 없다. 낙인 대신 차별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는 있을 것이다.

‘흑인’, ‘여성’은 상대적으로 약자이지만 낙인의 대상은 아니다. 워낙 인구수가 많아 낙인을 통해 배제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들을 배제하고 사회가 존립할 수도 없다. 낙인과 배제는 불가능하지만차별, 혐오는 남는다.

 

낯설고 새로운 존재 그래서 위험하다고 느끼는 존재들이 주로 낙인의 대상이 된다. 오래전부터 이웃으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모두 약자이고 소수자이다. 

백재중 jjbaik99@gmail.com

<저작권자 © 건강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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