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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협동조합 25년차 의사의 눈물

기사승인 2019.07.07  19: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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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사회적경제 유공 국민훈장 수상 안성의료복지사협 이인동 원장

"내가 가정의학과 전공의 2년차 때인 1987년 4월 처음으로 안성군 고삼면 가유리 상가 부락에 박계열 선생과 같이 갔다. 따뜻한 봄볕이 가득하던 토요일 오후 용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가, 안성 읍내에서 다시 군내버스로 갈아타고 들어갔다. 한 손에 차트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엔 혈압계와 청진기를 들고 가정 방문을 하며, 혈압도 재 드리고 건강 문제가 무엇인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그렇게 안성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책 가장 인간적인 의료 중에서)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박중기)은 1987년 뜻이 있는 의대생과 마을 청년들의 의기투합으로 만들어진 주말진료소에서 시작됐다. 

그후 주말진료는 1990년대 초반 안성진료회, 1992년 11월 안성한의원 개원, 1993년 8월 안성공동의원 설립 추진위원회 결성, 1994년 1월 의료기관명을 농민의원으로 결정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결국 안성의료협동조합은 1994년 4월 21일, 250여 명의 조합원과 1억 2천만 원의 출자금으로 창립총회를 하게 된다. 

1994년 창립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안성의료복지사협 농민의원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중에 이인동 원장(사진)이 있다. 

▲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농민의원 이인동 원장.

이 원장은  7월 5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 개막식에서 진행된 유공자 포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시상자로 나섰던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훈장을 받으신 이인동 원장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협동조합을 창립하여 사회적경제의 모범이 됐다"며 유공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는 시상식이 있었던 대전컨벤션센터 2층 그랜드볼룸에서 이인동 원장 인터뷰를 진행했다. 30분 남짓 진행된 이야기에서 이 원장은 수차례 협동조합의 원칙인 '자발성과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좀 어리둥절하다. 25년 전 시작할 때만 해도 의료협동조합은 너무 생소한 것이었다. '젊은 의사가 한 명 내려와 지역주민들과 좋은 일 한다더라' 정도가 이해의 수준이었다. 아무 정보나 경험이 없었는데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 줬다. 오늘 수상은 그런 분들이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한다."

의외의 순간이었다. 첫 질문인 수상 소감이 끝날 즈음 이 원장의 얼굴이 붉어지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 원장은 "오늘 건조하게 진행하려고 했는데..."라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만감이 섞이는 표정이었다. 25년 세월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사라지면서 순간 감정이 흔들렸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니 새롭게 조명이 되고 우리가 해온 사회적인 활동들이 인정을 받는 것 같다. 힘들었지만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같이 해준 분들게 너무 고맙다."

이날 사회적경제 유공자 시상에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총 5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양적 성장과 함께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그때에 비하면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시작하는 곳도 그렇고 기존 협동조합도 힘들다. 안성도 25년 됐지만 항상 개척하는 느낌이다. 꿈은 있었지만 그것을 현실화하는 데 제일 힘든 것은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 있었다. 상을 받긴 했지만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안성도 6천 가구 조합원과 100여 명의 직원으로 성장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지역주민이 건강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참여하며 실천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한결 같은 목표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 25년 세월을 어떻게 걸어왔을까 싶었다. "안성이 그동안 줄기차게 견지해 왔던 것은 임원이나 직원들이 나서서 의식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았던 데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하는 것, 그것이 의료협동조합의 핵심 가치다. 이끌고 지도하는 사람도 주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안성은 우리나라 의료협동조합의 맏형격이다. 최근 경기의료복지사협, 성북의료복지사협이 보건복지부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올해 2~3곳의 의료복지사협이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도움말을 구했다. "실무를 맡은 사람이 사심과 독선을 버려고 조합원 목소리를 경청하는 게 지속성의 열쇠다. 협동조합은 좀더 나은 물적 토대가 아니라 조합원의 주체적인 참여가 중요한 곳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하고 충분히 공개하고 애정을 갖고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시스템도 중요하다. 제가 협동조합을 하는 이유는 제 스스로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있건 없건 시스템을 조직해서 운영될 수 있게 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협동조합은 비효율적이다, 의사결정이 늦다는 이야기가 있다. 협동조합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조직이니 만큼 효율과 속도를 추구해야 할 경우도 있다. "핵심은 민주주의다. 주민 역량 키우지 않으려면 협동조합 할 필요 없다. 의료협동조합의 사명과 가치를 실현하고 참여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무엇이라도 들어야 한다. 아무리 이상한 발언이라도 거짓이나 남을 음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경청해야 한다. 소수를 배제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랜동안 협동조합에 몸 담아 왔던 이 원장은 3가지 의료협동조합의 주제를 이야기했다. 일차의료를 잘 하는 것,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활동, 그리고 지역사회 취약계층 지원이다. "협동조합 스스로 서기 위한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 협동조합이 자리를 잡으면 돌봄이나 취약계층에 대한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취약계층을 시혜의 대상으로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원칙인 자발성이 그들에게도 중요하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협동조합이 건강과 돌봄의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커뮤니티케어도 마찬가지다. 중앙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지역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 없다. 중앙 정부의 기본 정책이 지자체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움직이게 해야 제도가 정착할 수 있다. 한두 군데 좋은 사례를 만들고 이것이 전파돼야 할 것이다."

25년차 의사가 말하는 의료협동조합의 매력은 뭘까. "급여가 조금 적은 거 말고는 다 좋다. 안 좋으면 25년 동안 했겠는가. 억지로는 못한다. 급여도 얼토당토 않게 주는 것도 아니다.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 안성의료복지사협에는 6~7명의 의사가 있다. 재밌게 생활하면서 자신만의 일을 할 수도 있다. 제일 좋은 건 환자와 의사의 신뢰관계에 있다. 소신껏 진료해도 믿고 따라준다." 

▲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 현장에서 수상자들과 의료복지사협 관계자들이 모였다.

김기태 newcitykim@gmail.com

<저작권자 © 건강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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