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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규모의 의학

기사승인 2019.09.20  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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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돌프 비르효, 자유주의, 공중보건학

 

“die Medizin ist eine sociale Wissenschaft, und die Politik ist weiter nichts, als Medicin im Grossen”

의학은 하나의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거대한 규모의 의학과 다르지 않다.

 

루돌프 비르효Rudolf Ludwig Karl Virchow (1821.10.13.-1902.9.5.), ‘독일 의학의 황제’, ‘사회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전 세계 진보적 의학, 사회의학·위생학, 공중보건학의 아이콘, 아니, 그 이상의 인물이다.

1848년 발진티푸스가 반복적으로 창궐하던 상부 실레시아에 대한 역학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비르효는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이론상으로 볼 때 이 지방에서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전염병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매우 간단하다. 여성들까지도 그 대상에 포함시키는 교육, 자유와 복지가 그것이다(Virchow, 1948).”

“내가 상부 실레시아에서 돌아왔을 때 그 결론을 도출해 냈고, 새로운 프랑스 공화국을 볼 때, 우리 주州의 낡은 체계를 철거하는 것을 돕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리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 그것들은 다음의 세 단어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완전하고 무제한적인 민주주의 full and unlimited democracy,(Virchow,1948)”

상부 실레시아에서 돌아온 지 8일 만에 비르효는 3월 혁명에 참여하여, 타우벤스트라스Taubenstraße로부터 프리드리히스트라스Friedrichstraße까지를 차단하는 바리케이드 작업에 참여했다. 그의 손에는 총이 들려있었다. 그는 평생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의사들은 가난한 자들을 대변하는 옹호자이며 사회적인 문제들은 상당 부분 그들의 책임하에 있다”라는 신념을 평생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몸으로 실천했다. 이렇게 정열적인 ‘만년 청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욱이 비르효는 여러 사람 몫의 삶을 살았다. 비르효가 살았던 시대는 공간적으로는 여러 지역이 각축을 벌이다 독일제국으로 통일되는 격변기였고, 시기적으로는 이른바 의학, 과학의 혁명적 진보가 세상을 뒤집어 놓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81세까지 오래 살았다. 단지 오래 산 것뿐만 아니라 평생 하루 4시간만 자면서, 한 인간이 이룬 것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영역에서, 많은 일을 해냈다. 1902년 9월 5일 그가 죽었을 때 독일 신문은 다음과 같은 부고를 실었다.

“우리는 한 명이 아니라 병리학자, 인류학자, 위생학자, 진보주의자 이렇게 네 명의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

비르효는 정치가이면서 당대 최고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와 그 삶 자체 역시 연구의 대상이기도 하다. 더욱이 사회는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과학의 여러 분야는 저마다 그 좁은 시야tunnel vision로 인해 길을 잃고 헤맬 때, 우리는 다시 그의 이름을 호명할 수밖에 없다.

맥니리 교수의 이 책은 일화집도, 평전도 아니다. 더더욱 위인전도 아니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1992년 그의 하버드대학교 학부 졸업논문에서 시작된, 이를테면 학술적 작업물이다. 맥니리 교수는 이 책에서 비르효의 사상과 정치 활동을 잉태했던 시간과 공간적 맥락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모든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시기적으로 중요했던 세 가지 일화, 즉 상부 실레시아 지역의 역학조사(2장), 베를린 하수도 건설(3장), 그의 의회 활동(4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약하면, 이 책은 대중서라기보다 구체적인 주제에 초점을 맞춘 학술서이다. 그가 연구주제로 삼은 것은 비르효의 사상, 주요 정치 활동과 시공간적 맥락, 그리고 19세기 독일 자유주의의 ‘투항’의 배경과 원인이 무엇이었는가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른 많은 책에서처럼), 비르효가 가졌던 19세기 독일 자유주의가 기존의 봉건적 이념에 대비해 ‘상대적으로 또는 절대적으로 진보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소위 ‘좌파, 사회주의적 진보’라는 의미의 ‘진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회의학·위생학의 아버지 격인 비르효가 진보적 자유주의자였다고 해도, ‘사회의학·위생학’이 이후 계속 자유주의의 길만을 걸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르효의 ‘사회의학·위생학’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념으로 분화했다.

또한 이 책의 매력적인 해석, 즉 나치즘의 도래가 비르효로 대변되는 독일 자유주의가 정치영역의 주류가 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그의 설명은 분명 설득적이지만, 그것은 다시 당시 사회주의 세력이 충분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커나가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 비르효가 창당에 참여하고 활동했던 독일진보당의 핵심 지도자들 다수가 사회주의자였다. 또한 비르효는 ‘독재적 과학주의’를 배격하면서도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정책의 시행을 옹호했는데, 이러한 주장의 실패, 다시 말해 과학과 과학주의가 나치 정권에 포섭됨으로써 재앙을 만들어냈다는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사회’는 ‘자유주의의 실패’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또한 비르효로 대변되는 19세기 독일 자유주의의 딜레마, 즉 ‘사회에 대한 배타성과 국가에 대한 의존’ 문제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러한 논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르효의 사상과 생애가 19세기 자유주의자의 사례 중 하나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이러한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이 책은 비르효에 대한 영웅적 서사를 넘어, 한계를 가졌으나 여전히 위대했던 비르효의 진정한 삶에 우리를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비르효는 비스마르크의 권위적 철권 정치 세력을 제압하지 못했고, 생의학적, 임상적 모델로 치닫는 의학에서 주류자리를 차지하는 데도 실패했다.

맥니리 교수의 주장처럼, 비르효의 성공과 실패는 단지 한 개인의 역사와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19세기 독일 자유주의의 실패는 나치즘과 세계대전이라는 전 인류적 고통으로 이어졌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렇기에 이 책의 가치는 저자가 비르효의 사상과 생애사를 통해 던지는 “19세기 독일 자유주의는 ‘투항’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에서 비롯된다.

이 책의 저자인 맥니리의 논지를 사회의학 영역에 확대 적용해보면, 진보적 자유주의자였던 비르효의 사회의학은 국가주의자 비스마르크에게 패배했고, 이것은 나치 정권의 인종주의적 의학, 위생학의 길을 열어 주었으며, 한편으로는 독일 밖,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의 좌파적 의학, 위생학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후에도 다양한 변이들을 만들어 오고 있다.

-역자 후기 중에서

 

지은이 : 이안 F. 맥니리

옮긴이 : 신영전, 서지은

출판사 : 건강미디어협동조합

반양장/148x225mm/ 208쪽/ 값 15,000원

ISBN : 979-11-87387-13-8 03510

초판 발행일 : 2019년 9월 23일

 

건강미디어 mediahealth2015@gmail.com

<저작권자 © 건강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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