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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담긴 세상

기사승인 2020.02.10  20: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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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그림책 30년사

여는 글

저자 조원경

그림책 백두산 만들기

사람들은 살면서 책을 몇 권이나 대할까. 내가 원해서 골라 본 책들은 이제껏 얼마나 될까. 끝까지 읽은 책은 얼마나 되나. 그 중 아주 좋았던 책 몇 권만 꼽을 수 있을까. 오래 책을 접해오긴 했지만 책 동네에 이바지한 것이 과연 있나. 지금 꾸리려는 이 책은 얼마나 필요한 책이겠는가, 적절한 이야기를 담았는가.

그림책협회 〈30년 한국그림책을 살피다〉 작업을 함께한 연구자가 설문지를 돌렸다.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에 당신은 그림책 관련 어떤 분야와 연결되었나, 어느 영역에 속했나, 우선 떠오르는 그림책들은 무엇인가. 머리에 오래 남은 이 질문에 계속 새로 답하는 심정으로 이 책 작업을 다듬고 보살핀다.

책 만들기를 처음 진행한 곳은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다. 1986년부터 민중사 출간 사회과학 책들과 《기사연리포트》 들로 편집을 배우고 익혔다. 그 전에 만든 단행본도 한 권 있다. 1982년 《역사 예수 교회》. 감리교청년연합회에서 발간한 성서연구 교재였다. 이 책 편집 제작을 배우겠다고 세진인쇄 강 사장님을 쭈뼛쭈뼛 따라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편집실에 들어가 최 부장님한테 활판 인쇄용 편집 지침들을 받아 적으며 공부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최초 편집 교실도 민중사였다.

1989년부터는 글밭기획과 녹두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었고 2000년부터 인터넷어린이서점 오픈키드에서 어린이 책과 《월간 열린어린이》를 만들었다. 20-30대를 같이 일하며 지낸 명석한 벗 박 군이 일찌감치 한탄하던 말이 생각난다. “어휴, 왜 그리 계속 책을 만들고 그래, 어디 쓸 데 있다고.” 계속 혼자 묻고 답한다. 쓸 데 있는 이야기인지, 쓸 데 있는 책일지.

‘그림책 사회사’라는 단어

그림책과 사회 변화를 함께 살펴보는 작업은 한 글벗의 요청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사회가 저 밑바닥부터 좀 바뀔 수 있으려나 희망을 갖게 된 2017년 봄에 정겨운 책 벗님에게서 전화가 한 통 왔다. 짧거나 긴 문자들로 소식 주고받기가 일상이니 목소리 통화는 꽤 새록스런 일이다.

“2016년에 발행된 한국 창작 그림책들 갖고 연감을 제작하려는데 유난히 사회성 짙은 그림책들이 눈에 띈다, 얘들을 좀 상세히 살펴봐 주기 바란다.”

창작 그림책들로 우리 사회 한해살이, 그 바쁘고 특별했던 2016년을 돌아보는 일이라니! 즐거운 작업이었다. 작업물은 〈2016년 우리 그림책으로 본 한국사회-그림책, 사람과 역사와 사회를 품다〉라는 글로 《한국 그림책 연감 2017》(재단법인 원주문화재단)에 실렸다.

이후 연도에도 그림책들을 같은 방식으로 살펴보라는 요청이 잡지와 강의실에서 이어졌다. 이 분야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인가보다 생각하던 참이었다. 2019년 1월엔 그림책협회 〈30년, 한국그림책을 살피다〉 연구 작업 동참을 요구받았다.

오픈키드에서 《월간 열린어린이》를 만들면서 매달 외부 필자 꼭지 열두 개씩을 채워야 했다. 이를 위해 원고를 청탁하면 많은 작가들이 흔쾌히 응하셨다. 나의 필자들이었던 그분들이 이제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면 나 또한 되도록 즐겁게 응한다.

그림책협회 작업은 시작 이후 조금씩 커지더니 결국 그림책과 사회 변화 30년을 함께 보는 구성으로 확장되었다. 한국 문화 예술이 어떻게 변화 발전했는지 살필 때 1987년은 중요한 변곡점이자 출발점이다. 그림책 역사 연구도 처음엔 1987년에서 시작했다가 나중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자 시점視點인 광주 민주화운동부터 기억하려는 뜻에서이다.

그림책은 이제 생활 예술로 받아들여진다. 어린이 관련은 물론 사회생활의 온갖 면을 담고 있는 그림책들과 사회사를 함께 살피는 작업 덕에 결국 내가 일해 온 시간을 돌아보았다. 사회과학 책을 만들다가 어린이 책 동네에 들어왔고 이번엔 그림책들을 알뜰하게 살피고 모았다. 모두 귀한 시간이었다.

사회 변동 내용을 깊이 다루지는 못했다. 내가 책 만든 30년 시간은 어찌 흘러왔나 돌아보며 확인한 정도이다. 이런 기회를 만난 것이 고마운 일이다. 그림책을 살피고 내 삶을 돌아보며 사회사를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그림책 사회사’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쓰게 되었다.

그림책 골라서 엮기

165권 그림책을 골랐다. 작업을 진행하며 보니 지금도 활발히 작업하는 작가들 그림책이 손에 잡히는 시기는 1990년을 넘어가면서부터였다. 아 그림책이구나, 싶은 1967년 출간 《심청전》부터 1990년 《유관순》까지는 골라진 그림책이 9권뿐이다.

1991년 올챙이 그림책부터 2010년 평화 그림책까지 20년 동안은 한 해 네 권씩 총 80권을 골랐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2012년 광우병 때는 한 해 다섯 권씩 골라 앉혔다. 2013년 구제역과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까지 3년 동안은 한 해 여섯 권씩을 골랐다.

여기까지는 한 해 있었던 일들을 주제별로 나누고 다시 묶으면서 어울리는 그림책을 살폈다. 이어지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 동안은 한 해 열두 권을 고르고 달마다 한 권씩 앉혔다. 이렇게 해서 모인 그림책이 총 165권이다.

그림책이 처음 출간된 연도를 따랐다. 오래 시판된 그림책들 중 출판사가 바뀐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처음 출판 연도를 따르고 시판 중인 출간 사를 표기했다.

1990년대 초반에 출간된 그림책들 중에는 이전에 묶음 판매(전집)로 나왔다가 낱권 판매로 바뀐 책들이 꽤 있다. 올챙이 그림책(웅진출판 1991, 보리 2001, 휴먼어린이 2011)과 국민서관의 탐구시리즈(1992-93) 등이 그렇다. 단행본으로 구입 가능했던 책들은 여기 실었다.

여기 실린 그림책들의 현재 출간 사들에 책 표지 사용을 허락 받았다. 표지 아래와 본문 속 저자 표기는 실제 표지에 적힌 그대로 따랐다. 골라진 그림책 작가들이 편중됐을 수 있다. 그림책들의 주제도 아마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을 것이다. 필자 뜻대로 해석하고 배치한 결과이다.

작업을 진행하며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초기 창작 그림책들은 옛이야기와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다. 2000년대 들어 그림책 분야가 다양해지고 글과 그림을 함께하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권정생 님 글 등 고유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드는 경우도 눈에 많이 띈다. 볼로냐나 브라티슬라바 등 국제 도서전에서 특별한 그림책 작가로 선정되는 일도 많아졌다.

2010년대 들어 그림책도 매우 다양해졌다. 환상 그림책도 많아진다. 5월 광주나 세월호, 4.3항쟁 등 사회 사건을 주제로 삼는 그림책도 많이 잡힌다.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문제들이 잘 숨어 있으므로 별일 없는 듯 조용하다. 문화 예술계도 잠잠하고 그림책들도 많지 않다가 2010년대 이후는 아주 바쁘고 시끄럽게 많은 사안들이 그림책으로 들어오는 듯 느꼈다.

감사와 염려

어린이 책 관련 글 쓰기는 조심스럽다. 어린이 책 본문은 물론이고 서평이나 감상문 쓰기도 다른 책 관련 글보다 더 어렵다. 내용 전달이 정확해야 하고 과장이 없어야 한다. 잘 모르는 이야기는 절대 쓰지 말아야 한다. 오래 책 만들면서 좋은 글과 좋은 책 골라내기는 꽤 해왔는데 여기 진행한 작업도 좋은 글 좋은 책을 담고 있는가. 정확한 사실과 필요한 내용을 잘 담고 있나.

그림책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이야기 책을 읽고 이해하기보다 어려운 듯하다. 눈에 보이는 그림 뒤편 깊숙한 곳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장면마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글과 조화롭게 어울리는지 파악해야 하는 점도 어렵다. 하지만 그림은 보는 사람 마음대로 이해해도 되는 특별한 장점이 있다.

본문에 음악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들어갔다. 그 책에서는 음악 한 곡의 내용, 한 곡이 전하는 감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300번 들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럼 그림책은 몇 번을 다시 봐야 제대로 아는 걸까. 그림책도 볼 때마다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이 있다. 여기 담긴 165권 그림책들을 나는 충분히 보았을까.

그림책을 그저 나 혼자 좋아서 골랐다. 보통 여러 해 걸려서 책을 한 권 만든다. 그림책이든 이야기책이든 아무리 짧아도 2-3년, 길면 십 년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책의 준비 기간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고른 셈이다. 출간된 사회 상황에 맞춰 보기 적당한 그림책을 골랐다. 그림책과 사회, 두 영역을 내 판단으로만 연결했다.

예를 들면 《나는 지하철입니다》를 보며 구의역 지하철 김 군을 생각했고, 《선아》를 보며 김용균 군을 연결했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과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같이 본다니까 동료들이 그런 해석은 처음 접한다며 놀라던 모습이 생생하다.

혹시 우리 예술 그림책들을 너무 사회 읽기용 매체이자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아닌가, 그림책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 아닌가 자문했다. 걱정할 때 그림책 작가 벗은 “그림도 그림책도 보는 사람 마음대로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해 주었다. 또 어떤 이는 “사회 얘기보다 그림책 표지와 제목이 쏙쏙 눈에 들어옵니다”고 한다.

작업을 진행하며 1980년부터 2019년까지 사회 사건들 곧 사회사를 정리했다. 우선 시기별로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확인 과정을 거치면서 가져올 내용들을 골랐다. 이 고르는 행위가 타당한지, 역사의 거룩함이나 정통성 또는 정당한 가치를 혹시라도 훼손하는지 여러 번 생각했다.

역사를 《표준국어대사전》은 어떻게 규정하는지 찾아보았다. 전문가 견해도 들어보았다. 역사 읽기와 쓰기에서 필요한 사실들을 골라 가져오는 취사선택은 자연스런 행위임을 이제 알겠다. 역사를 읽고 쓸 때는 자의성이 작용한다.

그렇게 해서 꾸려진 1980년부터 2019년까지의 ‘그림책 사회사’가 자연스러운지 아닌지 판단은 이제 읽는 분들께 맡긴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신 한성옥 작가께서 조언하신 말이 ‘그림책 백두산’이다. 한국 그림책 165권을 잘 어울리게 담아 백두산 더불어 숲 같은 책을 만들라는 이야기가 오래도록 감사하다.

 

제목 : 그림책에 담긴 세상

부제 : 한국 그림책 30년사

쪽수 : 296

가격 : 16,000원

판형 : 신국판 150 x 220 mm

지은이 : 조원경

발행사 : 건강미디어협동조합

초판 1쇄 발행일 : 2020년 2월 18일

반양장본 296쪽 150*220mm

ISBN 9791187387145

 

건강미디어 mediahealth2015@gmail.com

<저작권자 © 건강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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