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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피임약의 접근성 확보를 위하여

기사승인 2020.02.28  14: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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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훈(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응급피임(emergency contraceptives)은 피임을 준비하거나 실행하지 못한 채 섹스를 하였거나, 피임을 하였으나 실패했을 때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후피임(postcoital contraceptives)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더해서 영미권에서는 PlanB(상품명, 첫 번째 방법이 실패했을 때 쓰는 두 번째 방법이라는 뜻)라는 이름이나 성관계 후 아침에 먹는다는 뜻에서 ‘morning after pill’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불리기도 한다. 이 방법은 우리가 섹스라는 행위를 하며 살아가는 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안전하고 필수적인 의료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응급 피임약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낙인에 매여 있다. 한 측에서는 응급피임을 무책임한 성관계의 상징으로 여기는가 하면, 다른 한 측에서는 응급피임약은 ‘호르몬 폭탄’으로 여성의 몸에 매우 나쁘니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종교계는 응급 피임약을 마치 ‘임신중지 약물’인 것처럼 오인하도록 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2000년 초반 응급피임약 도입 당시부터 불거져온 과장되고 왜곡된 주장들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사실 응급피임에 대한 이런 인식이 한국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많은 국가에서 응급피임약을 사용하고 있지만 접근성에 대한 초기 장벽이 높아서 기대한 만큼의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레보노르게스트렐이라는 합성 프로게스테론 성분으로 이루어진 응급피임약은 이미 30년 이상 널리 사용되면서 약물에 대한 안전성이 입증되어 이제 어떤 새로운 연구도 더는 수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정보일수록 공포와 두려움을 미끼 삼아 빠르게 전파되면서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산부인과학회(FIGO), 국제가족계획연맹(IPPF), 응급피임국제컨소시엄(International Consortium for EC), 유엔인구기금(UNFPA), 세계약사연맹(FIP) 등과 같은 국제적인 보건 전문가 협회 및 기구들은 응급피임약의 안전성에 대한 정보들을 제공하면서 함께 대응하고 있다.1)  

이들은 응급피임약의 안전성과 효과뿐만 아니라 응급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념에 있어서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일찌감치 응급피임약을 필수 의약품 공급망 내에 포함하여 다양한 피임 용품과 함께 그 공급과 장비를 통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2) 세계산부인과학회는 “응급피임 접근이 쉬워야 피임 성공률을 향상시키고 그 결과 건강에 가해지는 위험이 감소한다. 따라서 의료 전문가들은 공공 정책의 차원에서 응급피임이 모든 여성들에게 항상 쉽게 사용 가능하고 접근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의료인들은 응급피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응급피임 필요를 낮추기 위한 추후 전략에 대해 대화할 의무가 있다”, “사회에서 특별한 취약성을 가진 청소년은 응급피임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3)

이런 국제적인 기구들에 따르면 응급피임약은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여성에게 안전하다.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알러지 유발 인자가 아니며, 며칠 이내에 인체 내에서 소실되면서 중독이나 독성 반응도 없다고 알려져 있다. 용량 과다로 인한 위험성, 다른 약물과의 중요한 상호작용, 절대 금기증도 없다. 경구 피임약이 특히 35세 이상의 과다흡연자에서 뇌졸중이나 정맥혈전증과 같은 위험을 약간 증가시킨다고 알려져 있는 반면에, 응급피임약은 그런 증가 위험도 없다. 응급피임약의 활성화된 호르몬 양은 경구피임약 한 사이클 양의 절반 미만이다. 따라서 응급피임약에 의한 부작용은 심각하지 않고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일반 의약품으로 처방하였을 때에도 위험성이 더 증가하거나 피임 없는 섹스와 같은 성적 행위를 증가시키지 않는다.4) 따라서 응급피임약이 몸에 나쁘다, 호르몬 폭탄이라는 주장에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어떠한 약물도 복용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면, 응급피임약은 상당히 안전한 약물이며, 피임 실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많은 건강상의 위험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국제규약에서는 건강권을 다른 인권 보장을 위한 가장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인권으로 다루면서,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충분한 재화와 서비스 공급을 정보, 비용, 거리 등의 접근성에서 차별을 두지 않고 국가가 제공해야 할 의무를 건강권 실현을 위한 핵심요소로 본다.5) 이에 따라서 현재 응급피임약에 대한 접근을 막는 장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정보 접근성의 장벽 

한국에서의 잘못된 정보 유포의 책임은 미디어 뿐 아니라 성교육을 하는 강사와 의료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응급피임약의 일반 의약품 전환 반대를 위하여 다소 의도적으로 위험성이 과장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의도가 없더라도 이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섹스 후 72시간 이내에 사용해야 하며, 일반 피임약보다 고용량의 호르몬에 노출되므로 생리 주기 중 단 한 번만 사용가능하다’와 같은 주장들은 실제 교육 현장이나 진료실에서 많이 제공되는 정보이지만 알려진 사실과 다르다. 심지어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제공하는 응급피임약 정보도 마찬가지이다.6) 잘못되거나 부족한 정보로 인해 응급피임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불필요한 두려움과 혼란을 가질 수 있다. 

더 심각한 상황은 이런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제대로 얻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2014년의 조사 결과, 의사로부터 응급피임약을 처방받는 과정에서 복용 방법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경우가 각각 15.2%, 24.2%에 달했다.7) 응급피임약을 처방하는 의사는 복용 방법이나 효과, 부작용, 실패했을 경우의 대처 등에 대해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응급피임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진료를 통해 이후 안전하고 지속적인 피임 방법에 대해 상담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는커녕 약에 대한 간단한 정보조차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응급피임약을 전문피임약으로 지정하는 것은 의료 접근성의 장벽을 높일 뿐이다.

비용 접근성의 장벽 

응급피임약를 구입할 때에는 진료비와 약제비가 모두 비보험이기 때문에 총 비용이 3~5만원 정도가 든다. 2019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바탕으로 응급피임약 처방 현황 발표를 다룬 기사들은 모두 십대에서의 처방률이 높다는 점과 남자 파트너의 대리 처방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약물 오남용 문제와 대리 처방을 단속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한다.8) 하지만 현재 여러 가지 이유로 산부인과 이용 자체도 망설이는 상황에서9) 응급피임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 중 1/4은 의료인의 처방 없이 응급피임약을 구매하고 있다.10) 청소년처럼 병원 이용 문턱이 높은 사람들은 다른 루트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브로커를 통해 구입하기도 한다.11) 또한 이런 상황을 병원이 악용하는 사례들도 있는데, 다른 병원들이 문을 닫는 주말에 응급피임약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받고 응급피임약을 팔기도 한다.12) 응급피임약의 처방전 요구와 비급여 비용의 부담이 오히려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상황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이 응급피임약을 구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필요한 경우 제때에 약을 구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 사회에서 응급피임약 접근성 이슈는 몸에 대한 자율권, 의료 접근성과 정보 접근성, 성에 대한 낙인과 통제, 보건의료교육 등의 사안들이 모두 응축된 사안이라 하겠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응급피임약 제공에 관한 가이드라인 (<Family Planning : Global handbook for providers(2018)>) 링크 -->  http://srhr.kr/2020/724

1. https://www.cecinfo.org/about/endorsements/
2. Ensuring human rights in the provision of contraceptive information and services: Guidance and Recommendations, WHO, 2014
3. Recommendations On Ethical Issues In Obstetrics And Gynecology By The FIGO Committee For The Ethical Aspects Of Human Reproduction And Women’s Health, November 2003
4. Fact sheet on the safety of levonorgestrel-alone emergency contraceptive pills, WHO, FIGO, IPPF, International Consortium for EC, 2010
5. 유엔사회권위원회는 건강에 관련한 권리와 관련하여 AAAQ – 이용가능성(Availability), 접근가능성(Accessibility), 수용가능성(Acceptability), 질(Quality) -을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2019년 12월 이슈페이퍼 [정의] “당신의 권리”_성 재생산 건강과 권리(SRHR), 그리고 국가의 의무를 참조
6.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응급피임약 정보 사이트, http://www.wisewoman.co.kr/piim365/sub_030308.html (검색일 2020.1.28.)
7. 김동식, 김영택, 이수연(2014). 피임과 낙태 정책에 대한 쟁점과 과제 : 여성의 재생산권과 건강권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8. 2019.10.22. 메디게이트 뉴스 <최근 5년간 사후피임약 98만여 건 처방…10건 중 1건 10대, 분명 피임약인데…’남자’가 처방받은 사례 8500여 건>, 2019.10.22. 메디칼옵저버 <5년간 사후피임약 98만여 건 처방…10건 중 1건은 10대>, 2019.10.22. 헬스포커스 <5년간 사후피임약 98만건 처방10건 중 1건은 십대, 남자가 처방받은 사례 8,500건>
9. 이상림 외(2014). 미혼여성 임신 전 출산건강 관리 지원 방안 연구 : 산부인과 이용 및 인터넷 이용환경 개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산부인과 이용을 망설이는 이유 :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 70.4%, 의료진 및 다른 환자들의 시선 65.8%이 부담스러워서. 병원비 부담 38.5%
10. 응급피임약 복용한 여성 중 25%는 산부인과, 비산부인과, 응급실 등 의료인에 의한 처방 없이 구매하였다고 응답. (김동식 외(2014), 위의 자료)
11. ’처방전無’ 몰래 파는 사후피임약…”급한데”, MBC 뉴스, 2013.11.18(https://imnews.imbc.com/replay/2013/nwdesk/article/3370156_30357.html)
12. 박지영,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 : 그의 허락을 기다리는 동안, 여성신문, 2017.12.18.(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8589), Lee Kyung-min, Korea has emergency contraception in name only, The KoreaTimes, 2018.1.21. (https://www.koreatimes.co.kr/www/nation/2018/01/119_242809.html)

 

최예훈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산부인과 전문의

이 글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습니다.(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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