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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생보호법 피해 국가배상 소송 운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기사승인 2020.03.01  18: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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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성(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한국 사회는 지난 2019년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나오면서 ‘재생산’이 ‘여성’만의 문제이거나 생물학 혹은 의료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온갖 사회정치적 문제들이 얽혀진 ‘배틀그라운드’였다는 각성을 하게되었다. 이제 낙태죄 폐지라는 역사 위에 어떤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야 할 것인가는 우리의 손에 달렸다.

2016년 폴란드의 ‘검은 시위’가 한국의 낙태죄 폐지 운동을 촉발했듯이, 최근 몇 년간 재생산을 둘러싸고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배틀그라운드’를 면밀하게 살펴보고 토론하는 작업은 ‘우리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앞으로의 과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바로 이웃나라 일본에서 지금 현재 벌이지고 있는 거대한 움직임을 소개하려고 한다. 한국에서도 짤막하게나마 소개된 바 있는 장애인 강제 불임수술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 운동이 그것이다(<여성신문>, ‘장애 이유로 강제불임수술 한 국가를 고소한다’, 2018.2.7.).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형법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낙태가 범죄인 나라이다. 일본 낙태죄의 역사는 100년도 더 넘는다. 그러나 일본은 1948년부터 특별법으로 인공임신중절을 상당히 폭넓게 허용해왔고, 이는 북유럽이나 북미 국가들이 1960-70년 즈음부터 낙태 제한을 완화하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이례적으로 매우 앞선 것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우생보호법’이라는 일본 역사의 독특한 산물 때문이었다.

우생보호법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우생사상(우생학)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보자. 우생사상은 말 그대로 ‘좋은’ 인종/민족을 양성하자는 내용을 담은 사상이고, 19세기 말 유럽에 등장한 이후 실제 공중보건이나 위생, 인간 환경개선을 뒷받침하는 논리였다. 그러나 ‘좋은’ 인종/민족이라는 모호한 기준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부적절한’ 인종/민족이라는 타자가 필요한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부적절한’ 타자들을 ‘좋은’ 인종을 위해 학살하거나 재생산을 금지한 폭력적 역사(나치즘은 가장 악명을 떨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를 뒷받침 한 논리 역시도 우생학이었다. 우생사상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위적 조작이 무한정 ‘향상’과 ‘발전’을 약속 할 거라는, 근대인의 욕망과 폭력성이 결집된 문화의 한 양식인 것이다.

일본은 ‘우생보호법’ 이전에도 장애나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불임과 낙태시술을 행함으로써 ‘인구의 질’을 관리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 제국주의 전쟁을 벌이는 동안 국가의 전쟁 수행과 제국 경영에 복무할 ‘좋은’ 일본인을 양성한다는 명분으로 1940년 제정된 ‘국민우생법’이 그것이다. 20세기 중반 무렵까지는 미국과 유럽 등 서구 많은 국가들이 유색인, 이민자, 장애인, 가난한 이들에게 단종 정책을 시행하였기 때문에 일본의 사례가 예외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후 상황은 달라졌다. 나치즘의 악몽, 그리고 냉전체제에서 공산주의 국가들에 비해 ‘자유세계’가 가지는 우월함을 증명해야 했던 미국 등 강대국들은 ‘우생학’이라는 이름과 거리를 두어야 했다. 그런데 패전 후 경제위기와 인구 증가에 봉착한 일본은 경제난을 해소할 방법으로 인구의 질과 양 모두를 통제할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우생보호법’은 그렇게 해서 제정됐다. 즉, ①폭넓은 임신중지의 허용, ②장애인‧병자 등 불특정 다수에게 ‘불임수술’(‘우생수술’)이나 임신중지수술을 실시한다는 게 우생보호법의 주요 골자다. 결국, 임신중지 합법화가 1948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일본사회가 여성 삶의 존엄성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국가 경제발전이라는 국익을 위해 인간의 성과 재생산을 인위적 ‘조작’의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국익을 위해 장애인 등 ‘잉여’ 인구의 성과 재생산은 가장 먼저 인위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 캡쳐 이미지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ZHipSCc7zOk

우생보호법(1948-1996)
2항 정의
1절 : 이 법에서 “우생 수술”이라 함은 성기의 제거 없이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수술을 말한다. 우생 수술은 명령에 의해 처방되어야 한다.
2절: 이 법에서 “임신에 대한 인공적 개입”이라 함은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존할 수 없는 시기에 태아와 그 부속물을 인공적으로 배출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3항 의사의 인정에 의한 우생수술
1절: 의사는 아래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개인에게 우생학적 수술을 할 수 있다. 이때 의사는 당사자 그리고 배우자가 있는 경우 배우자의 동의를 받는다. 그러나 정신질환자나 정신박약의 경우 해당되지 않는다.
①본인 또는 배우자가 유전성 정신질환, 유전성 신체질환 또는 유전성 기형을 가진 경우
②본인 또는 배우자의 사촌 이내 혈족 관계자가 유전성 정신질환, 유전성 정신박약, 유전성 사이코패스 질환, 유전성 신체질환, 또는 유전성 기형을 가진 경우
③본인이나 배우자가 나병을 가지고 있어 자손에게 전염될 우려가 있는 경우
④임신이나 출산이 모체의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⑤어머니가 이미 많은 아이를 가지고 있어, 출산이 현저하게 그녀의 건강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  
14항 의사의 인정에 의한 임신중절
1절: 지정의사는 다음의 조건에 하나라도 해당하는 개인에게 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있다. 이때 의사는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①본인 또는 배우자가 정신질환, 정신 장애, 유전성 신체 질환이나 유전성 기형을 가진 경우
②본인 또는 배우자의 사촌 이내 혈족 관계자가 유전성 정신질환, 유전성 정신박약, 유전성 사이코패스 질환, 유전성 신체질환, 또는 유전성 기형을 가진 경우
③본인이나 배우자가 나병을 가진 경우
④신체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임신의 지속이나 출산이 모체 건강을 심각하게 해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⑤강제나 저항 또는 거부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강간으로 임신한 경우
* 본 법에서 ‘유전적 신체 및 정신질환’에는 조현병, 조울병, 정신박약, 심각한 범죄성향, 근위축병, 맹 또는 색맹, 농 또는 난청, 혈우병 등 수십여 가지가 나열되었다.


장애인 등에 대한 ‘우생수술’이라는 문제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이 법이 일본에서 제정되는 과정에서, 당시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자유세계’의 연합군 총사령부는 견제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이 경제적 난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공산화 되거나 다시 과격한 행동(전쟁)을 벌일지 모른다는 ‘냉전적’ 판단이 이 법의 제정을 묵인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1) 그리고 이 문제적 특별법이 1996년 까지 약 50년이라는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유지될 거라고는 당시 ‘자유세계’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2)

▲ 캡쳐 이미지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ZHipSCc7zOk

 

이상 살펴본 일본 우생보호법의 간략한 역사는 ‘배틀그라운드’로서 인간 재생산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생보호법의 오랜 역사 속에서 ‘우생수술’을 강요당하거나 자발적으로 시행해야 했던 일본 사회 장애인들이 자신들이 경험한 폭력을 세상에 고발하고 알리는 데는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1월, 장애인들은 역사상 최초로 우생수술에 대한 집단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2020년 1월 현재 소송 중인 장애인들은 남성 11명, 여성 13명, 총 24명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임에도 이 만큼 피해자들이 자신을 드러냈다는 것은 실제 피해 규모가 얼마나 컸을지를 짐작케한다. 지금도 소송 인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약 1년 뒤인 2019년 5월, 소송을 담당한 한 지방법원에서 마침내 1심 판결이 선고됐는데, 법원은 비록 해당 소송이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시점에 이루어져 입증이나 배상을 하기는 어려우나, “구 우생보호법은 우생학의 관점으로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방지한다는 등의 이유로 불임수술을 강제로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는 자에게 그 행복의 가능성을 일방적으로 빼앗아 개인의 존엄을 짓밟”았다며, 일본 헌법의 행복추구권에 위반한다고 판시했다.

법적 소송의 판결과 항소 등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 소송 운동이 일본 사회에 미친 파장 그 자체일 것이다. 우생보호법 피해 소송에 대해 일본 사회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했고, 일본 국회는 위 판결이 나오기 전인 2019년 4월 우생보호법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을 서둘러 통과시켰다. 구제법은 피해자의 입증 책임은 최소화하면서 일정하게 피해가 인정되면 일시금으로 약 3천2백만 원(320만엔)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3) 일본 사회 장애인들도 자체적으로 전국의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조사하는 등 ‘우생보호법’ 역사 청산 작업을 위해 함께 동분서주 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 CODA. 농인 부모의 자녀들을 일컫는 용어)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소송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우생보호법 상 ‘우생수술’의 대상이 되는 ‘불량한’ 생명에는 ‘농인’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청각장애인인 안도 아스카씨(27)는 법(‘우생보호법’)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았다. 학교 선생님께 혼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공부에 매진하고, 좋은 대학을 가려고 했다. 좋은 일들을 하면 부모님의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2년 전 결혼을 할 때는 상대방의 가족이 부모의 장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깨달았다. … 결국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것은 ‘불량’이라고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사히신문> 특집기사4)

 

우리 부모님은 임신이 된 후 결혼을 한 케이스여서 자식을 낳았다. 부모님과 비슷한 세대(1940-50년대 생) 주변 농인분들 대부분은 자식이 없다. 그분들은 결혼 할 때 조건으로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서약해야만 결혼할 수 있었다. 나는 농인 사회에서 굉장히 희귀한 아이였고 그래서 매우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내 아들(부모세대의 손자)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필자가 직접 인터뷰한 일본 코다. 2020.1.11. 인터뷰


한국에서 반공주의를 내건 군사독재 정부가 1973년 인구 통제를 위해 입법한 ‘모자보건법’은 일본 ‘우생보호법’의 판본이라고 누누이 지적되고 있고, 여전히 존치되고 있다. 한국 여성의 몸은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로 폭력적으로 다루어졌고 동시에 장애인들 역시 시설이나 병원, 집 등에서 재생산과 삶 자체를 송두리째 박탈당한 채 살고 있다. 자, 이제 낙태죄 폐지 역사 위에 우리는 어떤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야 할까, 더 깊이 생각하고 토론할 때이다.


1.Tiana Norgren(2001), Abortion before birth control; Karen Nakamura(2013), A disability of the soul.
2.일본 사회 내부적으로는 1950년대 말부터 일본 경제의 급성장과 동시에 찾아온 인구 감소, 그리고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 권리 운동의 성장 등이 이 법의 폐기/개정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는 했으나 1996년 이전에는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UN 등 국제사회가 강도 높게 비판을 제기한 것이 본 법 폐기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우생학’이나 ‘유전적 결함’ 등의 조문을 삭제한 ‘모성보호법’이 1996년 제정되었다.
3.<朝日新聞>, 優生手術救済法成立 尊厳と共生を問い直す時, 2019.4.25.
4.<朝日新聞>, 聴覚障害者の子、「いい子」の重圧 優生保護法の「影」今も, 2019.4.23.

황지성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여성학/장애학 연구자

이 글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습니다.(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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