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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적 욕망 줄세우기

기사승인 2020.03.25  1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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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훈(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저는 그때 37세였고,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 임신이 되기 힘들었고 트랜지션을 계획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고 임신이 가능하리라곤 생각하지도 않았죠…예정일을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를 했는데 아이의 작은 손발이 보였어요. 내 안에 살아있는 인간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 때가 바로 나의 젠더 위화감과 트랜지션 계획을 제쳐두고 아이에게만 집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트랜스남성처럼 트리거가 내게도 있었지만, 난 이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 생각이 떨쳐지고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을 내린 제 자신이 대견해요.

<Trans and Gender diverse Parents guide>, Rainbow Families

▲ https://m.insight.co.kr/news/114869

정자은행을 이용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우리는 희비를 경험했다. 시장의 장점이랄까, 우리에게 나름대로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인종이나 외모(사진이 있을 경우), 또는 비판적 사고력이나 성격 등(기증자 인터뷰나 에세이가 있을 경우), 그리고 가족과 본인의 건강기록들이 정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왜 같은 동양계를 선호하는지, 왜 외모도 고려하는지 등의 문제에 대한 성찰은 실리에 타협하는 우리 자신들에 대해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경험이기도 했다…다른 인종에 대한 입양의 경우 아이에게 입힐 혼선과 상처들을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라고 보면 되겠다. 인종적 분열을 넘어서자는 나의 이상주의적 결심의 대가를 내 아이가 치르게 되면 안 될 것 같은 심정 말이다. 

김산의 <두 엄마의 육아일기>, 2011.8.16. 일다

옛날에 나 아기 안 생겨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애 안 생기나…약 많이 먹었어요…임신하려고…옛날에요, 나 임신 기다리는데, 나 임신 안하면 나 도망가… 나 생각 이렇게…우리나라, 애기 없으면 못 살아요…그래서 나 도망가 이랬어요…지금요? 왜 도망가? 안 해요. 못 도망가요. 안 가요. I don’t want a broken family. 도망갈 생각 안 해요. 

강미연, 장인자, <필리핀 결혼 이주 여성의 ‘엄마 되기’: 경험을 중심으로 본 정체성의 문화정치>, 2009

[애기 낳고 나서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없는 거니까. 내가 장애인이니까, 그것도 중증장애인이니까 내가 아무리 어떻게 해도 그게 솔직히 어머니가 딱 보면 내가 엄청 위축되고, 내가 엄청 막 뭔가 죄를 진거 같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엄청 불편하게 만들어. 
        황지성, <‘선택’과 ‘권리’를 넘어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 확보를 위한 시론
                         – 신체장애여성의 경험에 나타난 재생산 정치>, 2011

그러니까 그건[낙태] 당연한거에요. 안하는게 이상한거지, 안하는 니가, 생각이 짧고, 대체 대책이 없는 애고, 생각이, 모자란 애라고 생각을 하는거죠…차라리 중절 수술을 할거였으면 (사람들한테) 얘기를 했을거에요…그런데 (수술)하려고 갔는데, 못했으니까, 그 다음에 출산을 하니까, 출산한 상태부터는 나는, 벌써 찍힌거에요. 쟤는 벌써…뭐야, 아이 저렇게 클 때까지 뭐했어, 이렇게 되는거에요. 바보, 멍청이, 대책을 마련했어야지. 그렇게 아이를 못 지울 정도까지 뱃속에서 아이를 키운 건 니 잘못이야, 이렇게 되는거죠.

정소라, <‘가부장’ 없는 가부장제 – 한국 미혼모의 입양과 양육 실천>, 2016

 

아이를 가지고 싶거나 기르고 싶은 마음. 나와는 세대가 다른 누군가를 내가 속한 친밀한 관계망에 연결시키고자 하는 욕망. 그 과정에서 내 신체의 일부가 사용될 수도 아닐 수도, 권리나 법적 관계가 생길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재생산적 욕망은 성적 욕망과는 별개이며, 욕망이 발생하는 양상도 개인에 따라 특수하며 다양하다. 어떤 시점에서 의도치 않게 생기기도 있고,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며,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발생되기도 한다. 아이를 통해 파트너나 가족 내 관계가 돈독해 질수도 있지만, 새로운 관계 설정이 오히려 삶의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재생산적 욕망은 다른 욕망처럼 그에 따르는 감정들이 환희, 행복만이 아닌 두려움, 후회 등 복합적이다. 또한 다른 모든 욕망처럼 이미 사회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권력이 개입되고 재생산 정치가 형성된다.

재생산적 욕망은 삶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고, 욕망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자원은 불평등한 분배 구조를 띠고 있다. 사회적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욕망은 조정되어야 하고 삶은 다른 경로를 따른다. 역으로 욕망은 ‘자연스러움’이라는 척도에 따라 불평등한 구조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욕망은 ‘자연스러움’에 가까워지려 하고, 이에 위배되는 욕망은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지지받기 어렵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오랫동안 의구심을 가지고 밝혀왔듯 ‘자연’과 ‘문화’가 대립되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자연스러움’에 대한 욕망에는 항상 한계가 있다. ‘모’와 ‘부’의 법적 결합인 혼인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가족은 이성애적 재생산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아이를 가지려는 욕망은 ‘자연스럽다’고 간주된다. 재생산기술을 이용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사람은 그 과정에 필요했던 별도의 시간이나 노동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다’. 재생산적 욕망의 사회적 허용 조건에는 아이가 양육되어도 될 만한 환경이라는 조건이 더 붙는데, 이 조건은 다소 유동적이다. 예를 들면 저출산을 위기로 규정하는 국가 정책은 ‘결혼이주여성’에 이어 ‘장애여성’ 그리고 ‘사실혼 난임부부’의 재생산적 욕망까지 허용했고,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입양가족’ 등의 가족 형태를 수용한다. 물론 허용가능한 조건을 항상 증명해야 하고 여전히 ‘자연스러움’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엔 부족하기만 하지만. 아이를 가지거나 양육하고자 하는 욕망은 사회에서 ‘자연스럽다’고 간주되는 규범, 규칙, 믿음에 따라야 하는데, 그것은 장애,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등 생물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이 혼합된 어떤 것이다.

한편 재생산기술은 재생산 정치의 구조를 국제적인 규모로 확장시키며, 이 구조 속에서 욕망을 더욱 구체화시키기도 하고 어떤 욕망은 미리 좌절되거나 삭제되기도 한다. 생식세포를 제공하는 몸과 출산가능한 몸이 분리 가능하고, 장애, 인종, 성별 등 특정한 신체를 착상 전에 미리 선택할 수도 있다. 비이성애 커플의 재생산 같은 실천은 특정한 인종 선택과 같은 ‘자연스러움’을 욕망하면서도 젠더 규범을 무너뜨리면서 ‘자연스러움’을 위배한다. 자신의 생식세포를 이용하지 않는 ‘대리모/출산모’의 노동은 ‘자연스럽지’ 않지만, 국가 경계를 넘어 불균형한 관계에 놓인 젠더 규범을 답습한다. 친권, 양육권과 같은 법적 문제는 혼인 관계와는 별개로 더욱 복잡해지면서 ‘아이’, ‘부모됨’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던진다. 생명공학기술, 재생산기술 산업에 대한 느슨한 규제는 ‘자연스러움’을 향한 욕망과 위배하는 욕망으로 뒤얽힌 모든 가능한 가족의 형태들을 빠르게 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국가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조금 더 인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생산적 욕망이 꿈틀대는 삶은 국가가 미처 다 포괄할 수 없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영역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동안 국가가 외면해왔던 재생산적 욕망이 삶에서 가능하도록 더 많은 가족 형태를 제도 안에 넣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놓치지 않아야 할 질문은, 왜 어떤 욕망은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지지받으면서, 어떤 욕망은 동정이나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이다. 나아가 ‘자연스러움’이라는 특권이 부과된 욕망이 아니라 미리 삭제되어 드러나지도 않는 욕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 정책은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언제나 일관되지만도 않다. ‘결혼이주여성’, ‘미혼모’, ‘한부모’ 정책 등이 마치 정말로 ‘아이’를 위하거나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등록 체류자나 난민의 무국적 아동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다.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장려하지만,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지고자 하는 욕망은 외면한다. ‘사실혼’ 관계의 난임부부까지는 재생산기술을 사용할 권리가 있지만 싱글, 논모노가미, 동성커플 등 비이성애적 재생산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다. 과연 저출산이 위기인가, 정상성이 위기인가. 이런 재생산적 욕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은 사회적 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정형화되지 않은 가족을 상상할 수 있게 하여 ‘자연스러움’을 욕망하지 않고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할 일일 것이다.

최예훈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산부인과 전문의

이 글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습니다.(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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