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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임신중지

기사승인 2020.04.02  22: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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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림(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폭력과 질병은 사회의 구조를 타고 아래로 흐른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역시도 모두에게 다른 얼굴로 엄습하며, 한국 사회의 빈곤과 삶의 불안정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지속될 수밖에 없는 노동들과 그 노동의 열악한 환경들, ‘하루의 밥벌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바이러스 보다 더욱 가혹한 불안정한 삶의 면면을 확인하고 있다.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친밀한 파트너나 가족과 한정된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친밀한 파트너에 대한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이나 가족으로부터의 물리적, 정신적 폭력의 상황에 놓인 당사자들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3월 28일 프랑스의 내무부 장관은 바이러스로 인한 제제가 시작된 3월 17일부터 가정 폭력(domestic violence)에 대한 신고가 3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떠한 종류의 폭력을 행사하는 상대와 더욱 많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게 되면서 생존을 위해서 폭력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모든 폭력은 섹슈얼리티를 경유하는 바, 전염병에 대한 공중 보건적 제재는 폭력의 가중이나 사회적 고립, 나아가 협상할 수 없는 관계에서의 원치 않는 성관계나 임신을 가져올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봉쇄로 인해 세계최대의 콘돔 생산 공장이 중단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콘돔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안전한 섹스,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논의가 시급하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사태 속에서 원치 않는 임신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이를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의 상황을 되짚어 보자. 2019년 4월 11일 한국의 헌법 재판소는 형법 낙태죄에 대해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20대 국회 안에서 임신 중지를 건강 서비스로서 보장하고 성과 재생산권을 활성화하는 법안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따라서 여성들이 임신 중지에 대해 갖는 접근성(accessibility)은 헌법 재판소의 결정이 있기 전이나 후나 크게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헌법 재판소의 결정 이후 형법 ‘낙태의 죄’에 대한 수사·기소 모라토리움(moratorium)을 선언 했어야 하는 검찰은 겨우 임신 12주 이내의 임신 중지에 대한 기소 유예 방침을 내세웠으나, 사실 이를 모르는 사람도 허다하다. 헌법 재판소의 결정이 있었으니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만 같은 느낌은 들지만, 실질적으로 원치 않는 임신의 상황에서는 병원을 찾을 수도,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도 없으니 여전히 임신중지는 ‘불법적인’ 채로 방치되어 있다. 한 사회의 헌법은 그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를 담지한다. 이러한 헌법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모두의 무책임이 모인 결과이다. 

임신 중지에 대한 비용은 여전히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다. 낙태죄 폐지 운동이 많은 언론의 주목과 반대 세력의 주목을 받았을 때, 위축된 의료진들이 임신 중지 비용을 많이 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위법적 상황이 부각되면서 임신중지 시술을 중지하는 병원이 줄어들고,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가격을 그대로 두면 환자들이 몰릴 수 있을 테니, 비용을 올려서 전체 케이스를 줄이지만 돈은 더 많이 벌 수 있는 방편이다. 이렇게 한번 올라간 비용은 아직도 ‘부르는 것이 값’인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지역으로 갈수록 임신 주 수가 늘어날수록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것은 상식적인 예측이며, 몇몇 지역에서는 아주 초기의 임신 주 수에 대해서도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원가족으로부터 경제적 자원이나 적절한 지원을 활용할 수 없는 10대 여성이 현 팬데믹 사태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도 해고 아닌 해고를 당했다면, 이러한 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이러한 여성을 지원할 수 있는 적절한 사회 제도나 지원 체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임신중지는 시민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건강 서비스임이 헌법 재판소와 공중 보건의 영역에서 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인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여 높은 비용과 전염병으로 인한 이동 및 병원 방문의 제한을 돌파해야 한다. 

임신중지와 관련해서 이러한 여성들을 지원해온 국제단체들이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임신중지의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은 전 세계의 수십 개국을 지원하며, 임신 주수에 따라 상담을 제공하고, 각 단체에 소속된 의료인의 처방과 가이드를 바탕으로 임신중지 유도 약물을 국제 우편으로 전달하는 것이다.1 일정한 기부를 받고, 약물을 제공한 이후에는 이를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온라인을 기반으로한 지원을 제공한다. 단체에 기부한 금액은 다시 다른 여성을 돕는다. 다큐멘터리 <파도 위의 여성들>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위민온웹(Women on Web)과 위민헬프위민(Women Help Women) 두 곳이다. 이 두 곳 모두 아시아 지역의 경우 제약 산업으로 선두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인도로부터의 배송을 기본적으로 한다. 인도는 안전하고 효과가 높은 약물을 생산하며, 국제 배송에 따른 여러 가지 변수들에도 불구하고 가장 빠르게 배송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거점이었으나 현 팬데믹의 상황에서 인도로부터의 약물 공급은 전면적으로 차단된 상황이며,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상태이다. 

한국은 헌법 재판소의 판결 이후에도 임신 중지의 접근성이 경제적, 물리적, 사회문화적으로 계속적으로 제약되어 있으며, 어떠한 합리적인 정책도 정보도 주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국제 구호 단체에 의존하는 비중이 있어왔다. 돈이 없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으며, 또는 거주 지역에서 임신 중지를 지원하는 적절한 병원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있는 여성들이 그나마 원치 않는 임신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자구책으로 존재해온 방법은 코로나19로 인해 차단되었다. 이 틈을 타고 온라인에서는 블랙 마켓이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블랙 마켓의 약은 비싸고, 적절한 상담과 지원을 제공하지도 않으며, 해당 약물의 효과성과 안정성을 믿을 수도 없다. 임신이란 시간적인 사건이고, 주 수가 흘러갈수록 여성이 감당해야하는 신체적·정신적 위험은 커져만 가기 때문에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이다. 

약물적 임신중지는 한 알의 미페프리스톤과 여러 알의 미소프로스톨을 사용할 경우 가장 효과적인데, 현재 시점에서 미페프리스톤은 국내에 수입되지 않아 여전히 존재하지 않으며, 미소프로스톨(상품명: 싸이토텍)은 위장약으로 사용되는 적응증만으로 허가되어 있다. 적응증이란 의약품이나 수술에 의해 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병이나 증상으로, 해당 약물을 사용할 수 있는 병증을 지칭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른 국가에서는 임신 중지를 적응증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형법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해오며 현장에서 임신중지와 관련된 많은 상황들을 접해왔다. 이 과정에서 블랙 마켓에서 제공되는 약물은 국내에 허용되지 않은 미페프리스톤은 위약(가짜약)으로 제공하고, 값이 싸고 구할 수 있는 경로가 확보된 싸이토텍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가지고 있다. 미소프로스톨만으로도 임신의 중지가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이는 해당 약물을 사용하는 의료진의 숙련도가 요구된다고 보여진다. 안전하고, 건강하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self-managed) 방식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다른 각도로 보자면 보건복지와 의료진들의 결단이 있다면 이미 국내에 시판되어있는 미소프로스톨을 임신 중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적응증을 추가하고, 의료진 상담과 가이드를 기반으로 약물적 임신중지 시술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방식은 전염병의 상황에서 여성의 재생산 건강이 위협에 놓이지 않도록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는 쉽고, 효과적이며, 공중보건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로이며, 궁극적으로 원치 않는 임신으로 발생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을 낮춘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중보건적 제재는 병원 방문을 통한 질병의 전파를 줄이고, 전염병 대응을 할 수 있는 의료진과 인프라를 공급하는 것을 포함한다. 보건복지부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고도 전화 상담을 기반으로 한 처방과 대리 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여성의 재생산 건강은 이러한 정책적 전환에 고려되지 않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지역에서 이동과 병원 방문이 쉽지 않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지역 내에 산부인과가 충분하지 않다면 접근성은 더욱 낮아진다. 만약 원치 않는 임신을 하였는데, 두 아이를 기르고 있다면, 그래서 물리적인 이동이 어려우며, 해당 지역 안에서 병원을 찾기도 어렵다면, 그나마 알고 있던 산부인과는 현재 내원하고 있는 산모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환자들의 방문을 권장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재난 상황에서 경제적인 타격 역시 경험하고 있다면, 그래서 국제 구호 단체로부터 약물을 신청했는데, 그조차 불가능하다면. 이것이 21세기에 여성이 경험해야 하는 절망감인가? 

나와 내 가족에게 바이러스가 전염될 것인지만 걱정하면 되는 삶은 얼마나 안전하며, 또한 특권적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임신의 유지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의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하여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 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에 해당되며 그에 따라 당연히 헌법적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야 함을 확인 했다. 또한 ”임신한 여성이 결정 가능 기간 중에 갈등 상황에 처했을 때 전문가로부터 정신적 지지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으면서 충분히 숙고한 후 임신 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했다. 지금의 팬데믹 대응이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와 사망자 추계 등에 집중되어 있지만, 젠더 폭력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성들이 재생산 건강 보장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 부재 속에서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은 또 다르게 비가시화 되어 있는 재난의 얼굴이다. 

3월 31일 영국의 보건사회복지부는 여성들이 집에서 임신 중지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전환적인 결정을 내렸다. 임신 10주 이내의 경우 병원 방문 없이 전화나 온라인 상담 후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집에서 복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병원들의 폐쇄와 감염의 위험을 고려할 때,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전염병에 대한 공중보건의 원칙(거리 두리)과 일치하며, 또한 임신 중지의 접근성을 제약할 경우 임신을 중지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 여행이 증가할 수밖에 없어지는 점 등을 고려한 합리적인 건강 정책이다. 엉국 왕립 산부인과 전문 대학 (Royal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aecologists), 영국 왕립 조산사 학회 (Royal College of Midwives), 영국임신자문서비스 (British Pregnancy Advisory Service) 등의 전문가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해당 조치를 요구해왔으며, 영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Care and Excellence)과 세계보건기구(WHO)는 초기 임신에 있어 여성들이 정보에 접근하고 의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집에서의 임신중지(at-home management of early abortion)를 지원한다. 형법 낙태죄의 헌법 불합치 이후 재생산 건강권과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의 새로운 입법과 사회적 전환을 앞두고 있는 한국 정부와 전문가 집단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주.......

1. 임신중지유도약물을 사용하는 약물적 임신 중지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프로제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필요한데, ‘미페프리스톤’이라는 약물을 사용하게 되면 프로제스테론 생성이 억제되어 더이상 임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임신중지 유도약은 ‘RU486′, ‘미프진’, ‘미페프렉스’ 등으로도 불리며,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의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임신중지 유도약을 사용하면 수술로 인한 임신중지보다 더 많은 장점이 있다. 먼저 수술이나 마취가 필요 없고, 성공률도 90~98%로 높은 편이며, 경제적으로 저렴하고, 자신의 집에서도 시술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장점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8주 이내의 이른 주수에 사용할 경우, 그 어떤 시술보다도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고 있다.

이유림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여성학, 인류학 연구활동가

이 글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습니다.(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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