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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죽음을 집으로 초대하기

기사승인 2023.11.24  13: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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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보는의료 사진이야기』, 방문의료연구회

▲ 그날 아침! 고마웠다면서 아들이 들고 온 음료수

그날은 새벽 안개가 자욱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SNS를 확인했다. "안개가 짙으니 안전운전하세요"라는 게시물들이 무수히 올라왔다.

창 밖 짙은 안개를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거기 보건진료소죠?”
낯선 젊은 남성 목소리가 수화기로 들렸다.
“네”
“여기는 청하면 00마을인데, 저희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중이다가 지금 임종 직전이세요. 소변줄을 빼주고 싶은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동안 입원했던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하니 주사기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 새벽 5시에 주사기 사러 군산 대야까지 갔다왔어요. 이른 새벽이라 문 연 약국이 없어서 그냥 왔습니다.”

매우 짧은 순간에 세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1. 오전 9시까지 기다렸다가 청하면 보건지소 가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다.
2. 보건진료소 관할구역은 아니지만 그냥 가서 도와준다.
3. 관할구역 아니니까 출장을 거절한다.

결론은 “주소 알려주세요. 지금 갈께요”라는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한치 앞이 안보일 정도로 안개가 매우 짙었다.
임종 직전에 계신 아버지에게 소변줄을 제거해 주고 싶은 아들은 새벽 5시에 1시간을 넘게 군산 지역을 헤매고 다녔겠구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주사기 챙기고, 가운 걸치고 출장 준비를 마쳤다.
네비게이션과 비상 깜빡이를 켜고 출발했다.
도착했을 때, 아들은 길에 나와 있었다.
아침 7시여서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나를 위한 배려였다.

방안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르신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배우자, 아들, 딸이 그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는 평소 집에서 죽고 싶어했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집으로 모시고 왔단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고 여겨져 불편한 소변줄을 빼고 싶은데, 방법도 모르고 도움을 요청할 곳을 찾지 못했단다. 이웃에게 물으니 만경 사는 ’보건진료소장‘이면 도와줄 것 같다고 전화라도 해보라고 했다는 거다.
준비한 주사기를 주며 소변줄 제거를 위한 절차를 설명하고 직접 시행하도록 하였다.

집에서 죽고 싶어도 행정절차 없이 바로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시골 지역에서는 제공되지 않는다. 관할구역 주민이 아니다보니 보건진료소에 근무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것저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고 하는데,  '저는 관할구역에서만 진료 및 의료행위가 가능합니다' 관할구역이 아니라서 출장을 못 간다는 이런저런 얘기를 해야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 두고 법을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았다.

가정형 호스피스사업도 있지만, 시골 지역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살던 곳에서 눈 감고 싶어요” 
우리 사회는 언제나 자신의 집에서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집으로 초대할 수 있을 시스템을 갖출수 있을까?

조정희 김제시보건소(보건진료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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