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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공경의 레토릭이 감추는 것들

기사승인 2024.01.08  21: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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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정치인이나 정당 공직자들의 노인비하 발언이 등장할 때마다 대한노인회는 “노인 공경 정신”을 환기시키며 존재감을 알린다. 12월 29일 국민의힘 민경우 비상대책위원의 임명부터 30일 사퇴, 1월 3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대한노인회 사과방문까지 일련의 경과는 당면한 어느 사회적 이슈보다 매우 신속했다(관련 기사).

이 엿새간의 장면은 노인폄하발언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노인의 삶을 존중하는 무거운 책임을 드러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는 문제의 발언이 왜 잘못되었는지 따지지도 않고 집단정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무마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이해와 존경보다 얄팍한 기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상징적으로만 작동하는 노인공경의 레토릭은 노인의 구체적 삶에 관한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실제 노인집단의 상황을 철저히 은폐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남성들이 성폭력 무고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여성과의 자리 자체를 피한다는) 펜스룰처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답변도 ‘언행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것에 그친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그 발언자를 비윤리적인 인물로 비난하고, 노인단체 대표를 찾아가 사과를 표하는 개인화된 대응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평소 발언으로는 용인되다가 유력자가 될 때서야 정치적 공방으로 확산되고, 발언자(세력)의 힘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노인이 소비되고 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한국사회가 체제 수준에서 노인세대의 사회문화적 가치와 정치경제적 기회를 봉쇄시키는데 온 힘을 쏟는다는 반증이 아닌가 한다. 한국은 2025년부터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역사상 노인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시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도리어 사회적으로 전면화되어야 할 그들에 대한 탐색과 자원배분 논의는 잘 찾아볼 수 없다.

노인이라는 생애사적 단계와 노인집단의 다양성과 가능성에 대한 이해로 확장하기보다, 뭉뚱그려 타자화시켜 집단적 특성을 부과하고 노인집단 밖의 시선으로 그 삶을 재단하는 것.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가지지 않은 인구를 의존적이고 무가치한 존재로 간주한다는 체제적 압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가지는 노인에 대한 지식은 OECD 국가 최상위인 한국의 노인빈곤율(2020년 40.4%)이라든가 노인일자리 참여율(2021년 36.3%)같은 지표가 대표한다. 나이든 사람이 갖는 삶에 대한 성찰과 지혜, 혜안과 경륜의 미덕같은 문화적 기대를 충족하거나, 자기돌봄의 겨를도 없이 생존을 책임지는 고령자 노동을 정상화한 결과다.

현재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대수명(83.6세)을 기록하며 시대와 지역을 막론했던 장수의 염원을 성취했고, 이제는 인구의 상당한 규모가 그 연장된 삶을 어떻게 가치있게 지속할 것인가라는 큰 도전에 직면해있다. 그러므로 장수를 소원하던 시대와 분명 다른 사회운영의 원리와 규범이 요구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미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것은 연장자의 특권은 없어지고, 지속성과 안정성이 더 불리한 삶의 조건에서 생계와 존엄을 지키려고 애쓰는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연령에 대한 ‘공경’으로 얼버무리며,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새로운 사회운영 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극빈한 노년 노동이 어디서나 관찰된다는 것은 당사자 개인을 넘어선 우리 사회 모두의 존재론적 위기인데, 계속 방치해둘 뿐 인간다운 삶의 표준을 새로 만들자는 주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폐지수집노인에게 조금 더 나은 노인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국가의 책임이 충분하다거나, 그런 방식이 새로운 운영원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하향된 일자리와 저임금 노동을 감수하는 것이 노인을 비롯한 모든 집단에 대한 빈곤 대책의 원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시장과 고용에 의존하는 정도를 줄이고, 가족구조의 변화 및 가구 특성을 고려하는 복지와 소득보장정책으로 노인세대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면적 체제전환을 더는 미룰 수 없다. 국가는 노동시장에서의 단계적 퇴직, 정년과 연금수급까지 소득공백기 단축을 포함하여, 초고령사회를 위한 재정, 보건의료, 교육, 주거, 사회보장 시스템의 개혁을 더 급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노인세대 당사자가 그 지식과 관점을 반영하도록 지역과 연령, 분야와 역할에서 형평성과 대표성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비하 발언이 성과는 없지만 정치적으로나마 신속하게 해결되는 것과 달리, 다른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발언들은 오래도록 방치되고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존재론적 불안정성은 소득 감소뿐만이 아니라, 시민권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제도적 권리 보장이 이루어 지지 않음으로써 확대된다. 누구라도 피할 수 없이 노인이 되는 것처럼, 이제는 어떤 개인이라도 삶의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소수자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시대이다. 그렇다면 곤궁한 개인을 연민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타자화를 경계하고 모든 사람의 삶의 불안정성을 줄이는 일에 더 많은 사회적 힘을 모아야 한다.

 

* 이 글은 프레시안, 라포르시안과 공동 게재됩니다.

* 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학술운동 시민단체입니다. (http://health.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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