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보는의료 사진이야기』, 방문의료연구회
▲ 재소자 친구에게 주었던 그림책과 주고 받은 편지 |
의과대학 졸업 후, 아직 면허의 잉크가 마르지 않았던(?!) 나의 첫 근무지는 교도소 부속의원이었다. 진료 경험이 전무하였음에도 약 2000명의 재소자들을 진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시기에 의무관으로 근무하셨던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해연 원장님께서 개인 과외 수준으로 환자를 대하는 태도 부터 약물 사용 방법까지 상세히 지도해주셨다. 선생님과 함께 각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진단과 치료 뿐만 아니라 교도소라는 특수한 환경이 환자들에게 미치는 요인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논의하는 것은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나누었던 여러 환자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청소년 재소자를 진료했던 경험이다.
추운 겨울 아버지를 살해하여 입소하게 된 청소년 재소자 민수(가명)를 진료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민수가 진료실에서 이야기했던 어려움은 사실 신체 및 정신적인 증상이 아니었다. 다른 재소자들보다 어린 나이였기에 상대적으로 어렸던 민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방에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한 불편감으로 불안하고 잠을 잘 못이루어 독방으로 ケ璲 싶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민수의 사동 교도관님들도 민수가 계속해서 불편감을 호소하니 뭐라도 해줘야겠다 싶어 진료실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사실 민수의 진료실에서 마주했을 때 느껴졌던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신체 혹은 정신의 불편감이 질병으로 기인한 것은 아니었기에 의사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진료실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 김해연 원장님과 함께 논의하며 방안을 모색해보았다.
우선은 민수가 충분히 본인의 불편감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정리해 볼 수 있도록 매주 정기적인 진료 때마다 본인의 생각을 편지지에 적어올 것을 이야기해보기로 계획하였다. 감사하게도 민수는 본인의 어려움을 편지지 1~2장에 계속해서 적어왔다. 물론 매주 적어오는 내용에 큰 깨달음이나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음으로, 민수가 적어온 편지를 원장님과 함께 살펴보면서 민수의 현 상태에 대해서 논의해보았다. 원장님은 민수가 편지 내용의 문장을 조리있게 쓰고 글씨도 바르게 쓰는 것을 살펴보시면서, 민수가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하며 자기의 생각을 조리있게 이야기할 수 있음을 발견해내셨다.
우리는 민수가 게속해서 이야기하는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다시 생각해보고 정리해보도록 ‘그림책’을 처방하는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 민수가 어떠한 수준의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할지를 모르기에, 줄 글 형태의 소설 보다는 직관적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책이 좋겠다는 생각이들었다. 또한, 민수가 경험하는 외로움과 불안을 스스로 인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림책을 독서 상담사 분의 도움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사비로 ‘얼굴 빨개지는 아이’ 그림책과 ‘파이이야기’ 소설을 사셨고, 나는 민수 사동으로 찾아가 그림책을 전달하는 이유를 적은 편지를 준비한 책과 함께 전달하였다.
그림책 전달 이후, 진료실에서 민수는 편지를 건네주었다. 편지 내용에는 민수가 책을 느꼈던 감정과 진료 과정에서 느껴졌던 공감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다. 당시 진료실에서 느꼈던 뭉클함과 따뜻함 아직도 여운으로 남아있다. 환자가 호소하는 불편감이 무엇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싶어서 교도관 선생님 및 의사 선생님들과 이야기하였던 경험. 그러한 불편감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약이 아닌 ‘그림책’이라는 엉뚱한 처방을 해본 경험. 그리고, 환자와 편지로 진심어린 마음을 주고 받았던 경험. 이러한 경험은 향후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여러 사람과 함께 고민하는 태도를 가지도록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최근 정부와의 의사 간의 갈등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의사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쏟아지는 요즘, 환자와 의사 간의 따뜻함이 오가는 경험들이 우리 사회 안에는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더 공유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가장 인간적인 의료를 꿈꾸며 서로를 돌보고 위하는 우리 사회가 되어가기를 바란다.
김성인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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