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권의학연구소는 지난 10여 년간 국내외 고문피해자 트라우마 치유지원 활동을 해온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최근에는 법의학 전문의를 포함하여 약 20여 명의 의료전문가의 참여로 '고문트라우마 연구회'를 구성하여 고문 외상의 증거를 의학적으로 기록하고, 고문 외상의 영향에 대한 의학적 연구 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행 법적 절차 중에 있는 난민 신청자 및 국가폭력 피해자의 고문 사실을 진찰하고 의학적 소견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 (사)인권의학연구소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단체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강제수용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이들의 트라우마 지원책을 모색하였습니다. 조사 결과에서 아동기에 강제수용 트라우마를 경험한 피해자들은 성인기의 트라우마 사건 피해자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심각한 특성이 있어 세심한 관심과 접근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최근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강제수용 피해자들의 민사배상소송 결과를 지켜보면서 고문트라우마 연구회 의료인들은 법원의 피해 보상이 대부분 강제수용 기간에 따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크게 우려하게 되었습니다. 선감학원 강제수용 피해자들은 아동기에 경험한 극심한 트라우마 사건의 피해자임을 법원은 물론 우리 사회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하에 다음과 같이 의료인들의 의견을 제출하고자 합니다.
1. 아동기 강제수용 피해자의 특성
가. 아동기 강제수용 트라우마 경험은 성인기에 심각한 정신·심리적 문제를 발생하게 함.
아동의 발달 과정 초기에는 주 양육자와의 안정된 애착 관계가 필수적인데, 강제수용 피해자들처럼 아동기에 극심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경우, 성인기에 상당한 정신·심리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1]
사람의 생애 주기에서 아동기에는 생존에 필요한 기능을 습득하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생물학적 요인(개인 요인)과 경험적 요인(환경 요인)의 상호 작용으로 발달이 이루어집니다. 생물학적 요인은 유전, 신체적 요인, 뇌-중추신경계 발달과 같은 개인 요인이고, 경험적 요인은 육아의 경험, 부모와의 관계, 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여건, 학교 경험과 같은 환경 요인을 말합니다. 발달 과정을 보면, 단계마다 이뤄져야 할 발달 과제가 있고, 각 단계에서 적절한 부모와 환경의 자극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만약 발달 과정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발달 과제를 이루지 못하면 병리적 현상이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발달 과정에는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가 있어서 그 시기에 적절한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 발달 과제에 대한 지속적 결손을 초래하여 적절히 개입하지 않으면 추후 성인이 되어서도 여러 어려움으로 고통을 경험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2]
2020년 조사에 참여한 서산개척단, 선감학원, 형제복지원의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은 모두 초기 아동기(만 6~7세)에서 후기 아동기(15세~17세)까지 가혹한 수용 환경에서 집단생활을 하였습니다. 더구나 어린 나이에 여러 시설을 전원하면서 강제 수용된 경우, 적절한 양육 환경의 박탈을 경험한 것에 더하여 가혹하고 가학적인 강제 수용소 생활까지 경험한 것입니다. 강제수용 과정에서 수년 동안 경험한 아동기의 부정적 학습효과는 성격과 가치관, 타인과 사회에 대한 인지 방식 등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강제수용 경험이 피해생존자에게 미친 영향을 보면, 15세 미만의 아동기에 강제수용 시설을 경험한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의 경우는 대부분 15세 이상에 강제수용을 경험한 서산개척단에 비해 차이가 있었습니다.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의 정신심리적 후유증 (알코올 중독, 자살 시도, PTSD, 우울)이나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서산개척단 피해생존자보다 높게 나타나, 아동기에 겪은 강제수용 트라우마 경험이 매우 심각하게 정신·심리적 문제를 남기고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이렇게 심대한 정신·심리적 트라우마는 단기간에 단일한 방법으로 치료되기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나. 강제수용 피해자들의 그 피해 정도가 매우 광범위함
아동기와 같은 생애 초기에 트라우마를 경험한 경우, 장기적으로 신체적, 정신적인 부정적 영향을 줍니다. 이는 재 희생자화(re-victimization), 정신 질환, 인지 기능의 저하, 스트레스에 대한 비적응적 반응, 신체적 장해, 심지어 조기 사망까지도 포함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두려움과 공포 반응으로만 나올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증상은 변형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만성적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우울 장애, 불안장애, 불면증 등을 초래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병적 증상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심장 질환, 당뇨 등과 같은 만성 질환, 일상생활에서의 활력 감퇴, 활동 감소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3]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현재 대부분 노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같은 노년기라고 해도 생애의 이른 시기에 트라우마를 경험하였는지에 따라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이하 PTSD) 유병율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른 시기의 트라우마 경험이 노년기의 PTSD에 더 밀접한 영향이 있는 것을 생각되고 있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고통스러운 증상은 호전이 되어 가고 유병율이 낮아지지만, 과거의 기억이 재경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PTSD 관련 증상을 다시 경험하거나 악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선감학원 등 아동기 강제수용 피해자들의 심층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피해자들이 과거 어릴 적 강제수용 사건에 대한 기억의 재현과 관련한 구술, 취재, 언론 인터뷰의 노출 과정에서 안전한 상황에서 이루어지지 않거나 뒷수습을 고려한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2차적으로 쉽게 재 외상화(re-traumatization)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동기 학대 (childhood abuse) 경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에서 시행해 온 아동기 부정적 경험에 관한 연구 에서 보듯이 매우 광범위합니다.[4] 아동기 학대 경험은 심리적 정서적 상처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상적 생활 습관, 건강관리 습관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게 음주, 흡연, 약물에 의존하게 할 뿐 아니라 성적, 신체적 폭력 행위에도 더 많이 노출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생활양식들은 각종 신체적 정신적 질환을 다양하게 야기합니다. 따라서 아동기 강제수용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정신적 신체적 질환들 그리고 힘든 생활 여건 역시 과거 강제 수용과 수년간 일상적으로 지속된 수용소 내 폭력 행위가 그 상당 부분 원인이라고 봐야 합니다.
2020년 조사에 참여한 서산개척단,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일반인에 비해서 매우 높은 비율의 PTSD와 우울 및 불안 증상뿐 아니라 불면증, 자살생각, 자살시도 및 알코올중독과 같은 광범위한 정신심리적 후유증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15세 미만에 강제수용 시설을 경험한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의 경우를 보면 주로 15세 이상에 수용되었던 서산개척단 피해생존자에 비해 정신·심리적 후유증의 정도가 훨씬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 아동기 강제수용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유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의 피해 상황은 깊고 광범위하고,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이 지속되면서 그 고통은 계속 2차 피해를 조성하면서 만성화되어 왔습니다. 15세 미만의 아동기에 강제 수용되었던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과 같은 동일 피해자 집단에서도 개인적 피해의 양상과 그 정도는 상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피해생존자들은 과거 강제수용 시설에서 수년간 겪은 학대와 폭력 및 교육의 부재 등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곤란까지 겪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처해있는 사회·경제적 현실과 사회적 위축 및 침묵과 같은 요인으로 일상적 삶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임상적 경험이 매우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트라우마 피해자의 치료 방식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기계적 적용은 매우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강제수용 피해생존자 집단의 개인적 치유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치료자는 다양한 개인의 사회문화적 배경, 개인적인 성장 배경, 트라우마적 사건에 대한 인식, 이후의 삶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현재 중년이나 노년기의 생애를 보내고 있는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치료적 접근에 있어 특별히 고려 해야할 점은 개개인의 인지 능력 정도, 증상의 정도, 신체적 질환의 종류와 정도입니다. 치료적 접근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치유와 지원의 방법과 내용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피해생존자 개개인의 요구(needs)에 맞추어서 개별화되어야 하며, 결코 치유 지원의 제공 기관이나 치료자에 의해 일괄적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 사회·정치·경제적 맥락 속에서 피해생존자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치유 방안을 모색함.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은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우리 사회의 잘못된 사회복지정책과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국가가 저질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입니다. 따라서 강제수용 피해생존자의 트라우마 치유와 재활은 개인의 증상과 병인에 국한하는 의학적 개인적 치료모델이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노년기에 들어선 피해생존자들에게 효과있는 치료적 개입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만 이와 같은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치료자가 트라우마 사건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알고, 사건과 관련된 피해생존자 집단의 역사를 안다면 피해생존자 개인을 이해하고 치료적으로 접근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구술이나 기술(narrative or writing)적 접근과 삶에 대한 반추(life review)가 개개인의 증상 호전(불안, 우울, PTSD 증상의 감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5]
이에 더해서 강제수용 인권침해 사건이 사회·경제·정치적 배경에서 자행된 국가폭력인 만큼 개인적 치유와 함께 국가의 사과를 포함해서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피해자의 안정된 삶의 조건 마련과 같은 사회적 치유 방안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나. 트라우마 치유와 재활 지원은 지속적이며 광범위해야 함.
강제수용 피해생존자의 트라우마 치유와 재활 지원은 일회성이 아닌 상시적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지원의 내용은 정신적 심리적 트라우마에 국한하지 않고 현재 노년기에 접어들은 피해자의 청력, 치아 문제를 포함한 신체적 질병 치료 등 광범위하게 제공되어야 합니다. 2020년 8월부터 경기도가 선감학원 피해생존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 개인이 년 500만 원 한도로 경기도 공공의료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어서 피해생존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지원이 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피해생존자가 호전된 상태의 유지를 위해서 건강한 생활 습관과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생활 지원을 포함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피해생존자가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안정된 주거 시설 제공과 일자리 등과 같은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엄과 행복을 누려갈 수 있도록 당사자 요구에 맞춘 지속적 지원이 필요합니다.[6] 트라우마 치유의 목적은 피해생존자들이 일상적 삶을 찾고 누리도록 재활을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적절한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할 안정적 주거지, 신체적 영양공급에 필요한 치아 건강, 수면의 질을 높이고 이웃 친구와의 관계를 지속하게 할 정신 심리적 건강, 여행 등 여가를 즐기게 할 신체적 건강은 피해자들의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하게 할 기본적 조건이 될 것입니다.
지원 체계는 강제수용 피해자들의 일상적 삶의 회복을 위해 모든 생활상의 당사자 요구에 대한 행정적 지원을 다 해야 합니다. 현행 경기도와 같은 지자체 내 공공의료기관에서 사용할 의료비 지원은 매우 좋은 사례여서 매년 예산에 반영해 상시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주거지와 일자리에 대한 피해자의 요구가 있다면 지자체 내 사회 복지의 체계에 피해자들을 포함하도록 합니다. 지원 체계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중요한 것은 피해자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 전문가 네트워크의 유효성, 그리고 제공한 제반 지원 내용에 대한 피해자에 의한 평가와 자체 점검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3. 피해자 원상회복을 위한 사회적 치유
다행히 선감학원 등 강제수용 피해자들이 과거의 극심한 트라우마 경험에 굴하지 않고, 아무런 사회적 지지가 없는 기반에서도 당사자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자조 모임을 결성해 왔습니다. 이 당사자 운동은 선감학원(선감학원아동국가폭력피해진상규명위원회), 형제복지원(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유가족모임, 형제복지원피해자협의회)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이들은 자조 모임을 통한 진상규명 활동에서 국가의 인권침해 범죄에 대한 철저한 진실규명과 배상 등 국가의 기본적 책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당사자 권리 운동의 형태는 피해자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겪어내고 극복하여 현재 상태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만, 향후 이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완성하게 하는 것은 국가에 의한 진실규명 조사와 적절한 국가 배상을 통해 우리 사회에 정의가 아직도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가.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조사와 법적 절차에 대한 제언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은 강제수용 사건 특별법을 통한 일괄적 배상의 방법을 우선적으로 요구했었기에,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조사 이후 국가배상소송을 통한 배상이라는 형식에 저항감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가기관에 의한 진실규명 결정이 강제수용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에 중요할 것이라는 의미를 두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피해자들의 면접 조사과정이나 재판 과정에서 관련자가 아동기에 극심한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피해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하다면 피해자에게 재 외상화(re-traumatization)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후라 할지라도 사소한 자극에 트라우마의 재경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트라우마의 재경험은 때로 원래의 트라우마보다도 더 큰 고통을 피해자에게 결과하기도 합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현재의 트라우마가 더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는 트라우마의 영향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재 외상화로 인한 이차 피해의 고통은 원 고통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어서 어떤 형식으로든 진실규명 조사과정이나 법적 절차에서 피해자의 재 외상화를 방지하는 것은 피해자의 치유와 재활을 위해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처럼 극심한 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한 피해자들을 조사하는 조사관과 법적 절차에서의 변호사 및 판사는 피해자의 재 외상화 예방을 위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나. 아동기 강제수용 피해자에 대한 손해 배상의 내용
강제수용 인권침해 사건의 경우에는 국가의 위법한 행위가 입증된다면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생깁니다. 진실규명 조사 결과, 신청한 사건에 대해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을 받고 나면, 그 결정일을 기준으로 피해생존자와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강제수용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손해 배상의 필요성은 누차 강조되어 왔습니다. 더구나 피해생존자들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강제수용 시설에서 발생한 광범위한 인권침해로 인한 피해에 대해 무엇보다도 국가로부터 손해 배상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확인된 것처럼 아동기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의 신체적, 정신심리적, 사회경제적 피해는 깊고 광범위하였으며, 30~4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어서, 그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국가 배상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됩니다. 특히 선감학원의 경우, 국가가 수용시설을 직접 운영하였으므로 그 시설에서 자행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국가의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형제복지원의 경우에도, 국가의 지원과 감독을 받는 사회복지법인인 형제복지원 내 인권침해에 대해서 국가는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공무원의 관리 감독 소홀로 시설에서 위법 행위가 자행되었기 때문에 역시 손해 배상의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은 아동 청년기에 수용되었으나 현재 노·장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피해생존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매우 높은 알코올 중독, 자살 시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우울, 불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기초수급자 비율, 월 100만 원 이하 소득의 높은 비율로 나타나는 피해자들의 사회경제적 고통은 피해자의 원상회복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진실규명 결정 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이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국가에 의한 손해 배상이 이들 피해생존자의 트라우마 치유와 재활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재판부와 우리 사회는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최근 크게 우려되는 것은 아동기 강제수용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이 단순히 강제수용 기간에 따른 배상만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감학원 강제수용 인권침해 사건은 아동에게 가한 지대한 국가폭력 사건으로서 한 인간의 인생을 변형시키고 손상시킨 것인 만큼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광범위한 피해 내용을 함께 배상에 포함해야 합니다. 또한 이들이 아동기 강제수용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면 이에 대한 배상도 반드시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다. 국가의 사과와 피해자 추모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은 국가의 인권침해 범죄에 대해 철저한 진실규명과 배상 등 국가의 기본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해자로서 국가의 피해 회복과 신뢰 회복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 대책으로 피해자들은 신속한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일괄적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 더하여 국가의 공식적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강제수용 인권침해 사건에서 선감학원과 같은 강제수용 시설의 설립과 운영은 당시 내무부 (현재 행정안전부)와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공무원과 경찰을 통한 무차별적 수용자 징집과 수용시설 운영이라는 점에서 국가 기관에 의한 전형적인 인권침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제수용 피해자들에게 가한 직접적 인권침해와 부실한 행정 능력으로 인한 관리·감독의 소홀, 검찰의 부실한 수사, 법원의 소극적 판결 모두 공식적으로 사과할 부분입니다.
이러한 국가의 사과는 사회적 정의를 회복하는 첫 단추가 되어서 무엇보다도 사회적 정의를 통해 얻어지는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 효과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 것입니다. 강제수용 인권침해 사건은 아동기에 가한 지대한 인권침해로서 한 인간의 인생을 변형시키고 손상시킨 것인 만큼 국가가 사과를 함에 있어서 ‘무엇으로도 그 피해를 보상하기가 어렵다’는 태도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와 같은 국가의 사과는 강제수용 피해자들의 고통이 개개인의 잘못이나 부랑아여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아픈 역사의 피해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국가적 인정입니다. 피해생존자들에게는 ‘부랑아’라는 낙인을 제고하는 사회적 치유 과정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은 진상규명 이후에 국가와 사회가 위령제와 위령비 건립 등 추모사업을 통해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강제수용 인권침해를 기억하고 기념하며 인권침해 재발 방지를 다짐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경기도 선감도 내 선감학원 현장 조사에서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희생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경기창작센터 내에 설치되어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선감학원 아동들의 유해가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현장에는 작은 묘들의 흔적이 있을 뿐 위령비나 표지석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현장 조사에 동행한 피해자들은 선감도에 남아있는 원생들의 숙소를 보존하고, 유해발굴을 통한 위령비 설립 등을 통해 희생자들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경기도는 현존하는 선감학원의 원생들의 숙소와 유해가 매장된 곳을 보존하고, 피해생존자 자조 단체와 함께 그 활용을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감학원 원생들과 같은 희생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선감도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함께 인권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4. 마치며
강제수용 시설에서의 피해와 영향을 요약하면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은 강제수용, 강제노동, 폭력, 열악한 환경, 교육의 부재 등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 심리적, 사회경제적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고 노 장년에 들어서면서 그 고통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선감학원 피해생존자의 경우처럼 아동기 강제수용과 지속적 폭력의 체험은 전 생애에 걸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아동기는 성인기와 달리 신체적 정신적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여서 그 발달 과정에 결손을 초래한다면 추후 성인이 되어서도 상당한 수준의 신체적 정신심리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아동기에 수용시설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한 가혹한 폭력, 교육의 부재, 퇴소 이후 ‘부랑아’라는 낙인, 가족의 부재 등은 이들을 경제적 취약계층으로 남게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강제수용 시설과 같은 폭력적 환경에서의 생존의 방식은 퇴소 후 성년기에 사람에 대한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하는데 있어서 부정적 영향을 미쳐, 가족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들에서 어려움을 결과하고 단절과 고립 속에 일상이 파괴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피해자들의 고통은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또 다른 폭력의 행사로 가해자가 되기도 하였으며 자기 비난을 거듭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강제수용 기간에 심각한 학대와 폭력을 경험하였지만, 생존에 성공하였으며, 수용시설에서 탈출하거나 퇴소한 이후 계속된 사회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에 굴하지 않고 아무런 사회적 지지가 없는 기반에서도 피해당사자 스스로가 자조 모임을 결성하고 자조모임을 통해 당사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국가의 책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때로 피해자들은 진실규명이나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과거의 잊어버리고 싶은 고통과 트라우마를 재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트라우마의 재경험은 때로 원래의 트라우마보다도 더 큰 고통을 피해자에게 가져다줄 수도 있어서 피해자를 취재하는 언론이나 진실규명 조사기관, 또는 이들을 법적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고통과 트라우마가 재발하지 않도록 피해생존자를 세심히 접근하고 배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강제수용 시설과 같은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은 피해 당사자들이 이미 고령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국가차원의 지속적이고 성의 있는 조치와 함께 사회 일반의 인권의식을 함양하고 사회정의를 확립하고자 하는 사회공동체의 노력도 매우 긴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인권피해는 피해 당사자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침습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강제수용 인권피해를 극복하는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과 국가로부터 손해 배상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우리 사회로부터 강제수용 피해자로서 이해받지 못하고 피해 당시와 같은 편견과 낙인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은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법원의 배상 판결에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진실규명과 국가배상이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국가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배상의 범위가 피해자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거나, 국가나 지자체가 신속하게 공적인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강제수용 피해생존자들을 다시 좌절하게 할 수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선감학원 강제수용 인권침해 사건은 아동에게 가한 국가폭력 사건으로서 한 인간의 전체 삶을 변형시키고 손상시킨 것인 만큼 광범위한 피해 내용을 참작하여 아동기 강제수용 피해자 배상의 경우 특별히 고려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들이 아동기 강제수용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면 이에 대한 배상도 반드시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와 사회공동체는 침묵 방관했다는 점에서 가해자일 수 있으나, 동시에 피해 극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치유자이기도 합니다. 아동기 강제수용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완성하게 하는 것은 국가에 의한 진실규명과 합당한 국가배상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우리 사회에 정의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2024년 6월 30일
[1] Hall, M., & Hall, J. (2011). The long-term effects of childhood sexual abuse:Counseling implications. Retrieved from http://counselingoutfitters.com/vistas/vistas11/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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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형윤, “아동기 외상이 성인기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경과와 개입” 대힌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2020년 추계학술대회 심포지엄1 (2020.11)에서 발표자는 피해생존자의 화복을 위해 생존자 죄책감의 해결 및 생존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물질적으로 안정적인 환경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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