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 연수기
“민의련? 대체 무엇을 하는 곳이지.” 보건의료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연수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서 떠오른 생각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검색하여 나오는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이곳이 이상한(?) 단체가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나의 무관심과 무지에서 비롯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깊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단순히 일본의 진료소와 병원을 돌아보며 그 운영 방식에 대해서 보고 배우는 연수라고 가볍게 여겼던 오만한 나에게,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 연수’는 3박 4일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의료 발전 방향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점’을 제공해 준 소중한 연수였다.
첫째 날 방문한 ‘하나조노 생협 진료소’의 헬퍼 선생님과 방문 진료 대상이셨던 할머니와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진심이 느껴질 정도로 따뜻한 대화가 오고갔다. 방문 진료의 목적은 물론 의료적인 부분도 있지만, 무더운 여름에는 특히 온열질환의 징후는 없으신지, 생활하시는 자택에는 문제가 없으신지 등 보호가 필요한 고령의 주민들이 그들의 일상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차원적인 의료행위를 벗어나 주민들이 건강한 일상을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더 넓은 범위에서의 의료복지를 제공해주고 계신 모습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경제적 상황과 관계없이 모두가 이런 복지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에는 오래 전부터 민의련이 쟁취해 온 값진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요양원’ 이라는 시설에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 해서, 돌보아 줄 보호자가 없다고 해서 보호시설에 보내는 것이 아닌, 그들이 계속 살아왔던 자택에서 최선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시는 것이 가능하도록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 중이신 하나조노 생협 진료소 선생님들의 연대정신이 대단하시다고 느꼈다. 의료인들이 협동하여 움직이는 것은 단순한 의료서비스를 넘어서,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모두가 존중받는 의료 환경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를 지속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정한 의미의 연대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하는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 하나조노 생협 진료소 앞에서. |
오사카 ‘니시나리 구’의 ‘가마가사키’는 일용직 노동자들, 저소득층 그리고 홈리스의 거리이다. 이 사실을 알고 밖에 나가보니 어딘가 모르게 퇴색한 동네 분위기에 깊은 무게감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깊게 들여다본 가마가사키는 복지의 체계를 넘어서 모두에게 평등한 권리와 공생을 지향하는 곳이었다. 가마가사키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복지시설들이 존재한다. 잠시 쉴 수 있는 휴식처는 기본이며 공공임대아파트, 병원, 서포티브 하우스, 일자리센터 그리고 주민증이 없는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까지 있다. 여러 시설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메종드뷰-코스모’ 서포티브 하우스이다. 방 하나의 크기가 우리나라의 고시원과 비슷한 임대숙박시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숙박시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메종드뷰-코스모’ 서포티브 하우스 만난 선생님들께서는 진심으로 이들의 경제적 독립과 발전을 기원하고 존중하시는 분들이었다. 서포티브 하우스에서는 이곳에 지내는 모든 이에게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한다. 뒤로 이어지는 대화에서 서포티브 하우스에 지내시는 분들의 컨디션을 유추할 수 있고, 이들에게 필요한 상담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직원과 입주자 사이에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모든 입주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다 생각한다고 하셨다. 내 일도 아닌 남의 일에 이토록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이곳에 계시는 분들은 혼자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조금만 옆에서 지원을 해주면 본래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주고 공적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결국 그들도 언젠가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서포티브 하우스를 운영하시는 선생님의 가치관이자 신념으로 느껴졌다. 단순한 지원을 넘어서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각 개인이 존엄성을 가지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선생님은 지원의 손길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이 다시금 자신의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시는 것이었다.
▲ '메종드뷰-코스모'의 간판. |
연수를 통해 바라본 민의련의 의료적 가치관은 사람과 사람간의 교류와 연대정신 그리고 누구도 낙오하지 않는 모두가 같은 선상에 평등하게 서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다. 오늘날 발생하는 여러 갈등은 우리가 너무 자기중심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준이 아직 ‘나’에게 머물러 있어 자기생존과 이익에만 집착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나’의 자리에 ‘우리 주변의 공동체’를 대입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 먼저 움직여 주길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이 우리나라에도 민의련의 9가지 강령을 실천하는 첫 발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가마가사키 필드워크를 마치고 서포티브 하우스를 지원하는 단체의 건물 앞에서. |
치위생과 학생이기 때문에 치위생학의 범위에서만 생각하면 된다는 편협한 사고 안에 갇혀있는 나를 더 넓은 의료의 세계로 안내해준 연수였다. 엄청난 최첨단 의료기술이 아닌, 같은 뜻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큰 원동력을 만들어내고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일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우리나라도 언젠가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마음 한 켠에 품어보기도 하였다. 서포티브 하우스를 소개하시는 선생님의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빛나던 그 눈빛을 기억하며, 앞으로 더 많은 선후배들과 뜨거운 오사카 태양만큼이나 강렬했던 민의련의 연대정신을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박은정(신구대학교 치위생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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