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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와 여성 건강권(2) - 한국의 낙태 실태

기사승인 2018.09.10  14: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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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 젠더를 말하다](2)

낙태와 여성 건강권(2) - 한국의 낙태 실태


                                             고경심(산부인과 전문의)

III. 한국의 낙태 실태

1. 한국의 낙태 관련 법

한국은 형법 낙태죄 조항으로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모자보건법에서 위법성 조각사유로 예외적으로 낙태(인공임신중절수술)를 할 수 있는 허용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③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 전 3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1)
② 제1항의 경우에 배우자의 사망·실종·행방불명,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할 수 있다.
③ 제1항의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를 갈음할 수 있다.
제15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
② 법 제14조제1항제1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은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으로 한다.(2)
③ 법 제14조제1항제2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전염성 질환은 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및 그 밖에 의학적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으로 한다.
 
2. 낙태 건수의 추정치

김해중 외(2005)가 발표한 연구(3)에서 한국의 연간 낙태는 35만 590건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미혼여성의 낙태 규모는 전체 낙태의 42%이며 기혼여성은 58%로 연간 추정건수는 14만 7460건으로 보고하였다. 미혼여성의 경우 법적 배우자가 있지 않음을 감안할 때, 상당히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이 조사는 실제 산부인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하여, 형법 상 불법으로 규정된 낙태에 대해 비밀 유지 및 연구목적에 국한할 것임을 밝히고 응답을 요청하였으나, 의사들이 정확하게 응답하기보다는 그 수를 줄이거나 무응답으로 대응하였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손명세 외(2011)가 보건복지부 및 연세대학교와 공동연구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낙태건수는 168,738 건이라고 하고, 인공임신중절률은 15.8로 김해중 외(2005)의 인공임신중절률 29.8에 비하면 감소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4) 이 자료는 2012년도 보건복지부의 공청회 보도자료(5)에 인용되어 연간 약 17만 건의 낙태수술이 발생하고 있다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산부인과학회 공청회에서 제시된 산부인과 개원의들에게서 나온 비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매일 3천 건의 낙태 시술이 행해지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낙태 범죄화로 인하여 낙태를 시술하는 의사들도 전수를 정확히 보고하지 않으며 신고해야할 의무사항도 아니어서 전수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2007년 10월부터 2016년 10월까지의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적인 정확한 낙태 건수의 증가 또는 감소 추세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6)

한국에서 상당히 많이 시행되고 있는 낙태의 대다수가 비밀리에 시행되어 그 전수조차 파악하기 어렵고 제도적 차원의 모니터링 체계가 없어 적절한 보건의료적 대응이나 제도 마련도 어려운 현실임을 알 수 있다.

3. 낙태 사유 

형법에서 낙태를 금지하고 있지만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서는 낙태를 할 수 있는 허용한계를 정하여서, 이에 해당할 경우 낙태를 할 수 있다. 모자보건법의 허용한계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에만 낙태를 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 사유’, ‘태아 기형’이나 ‘여성의 요청’에 의해서 낙태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200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15-44세 유배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낙태 사유에 대한 조사에서, 낙태 사유가 자녀불원 35.9%, 터울 조절 20.5%, 임부의 건강상 문제 9.4%, 태아 이상 4.8%, 혼전 임신 19.5%, 가정문제 1.5%, 경제적 곤란 6.6%, 태아가 딸이므로 1.8%, 기타 9.9%라고 응답하였다. 이들 대다수가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한 허용한계를 벗어나는 ‘사회경제적 사유’임을 알 수 있다.
  2005년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시행한 김해중 외(2005)의 보고(7)에 의하면, 기혼여성의 경우 더 이상 자녀를 원치 않아서 낙태하는 경우가 70.7%로 대다수를 차지하며, 미혼여성의 경우는 미성년자 혹은 혼인상의 문제가 93.7%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하는 부모의 유전적 질환 등의 건강문제나 의학적 사유보다는 자녀 수 조절 및 혼인 여부에 따르는 사회경제적 사유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손명세 외(2011) 보고(8)에도 낙태 사유가 ‘원치 않는 임신’이 50.7%, ‘미혼이어서’가 26.4%, ‘임신 중 약물복용 등 태아의 건강문제’가 19.9%. ‘경제상 양육이 힘듦(고용불안정, 소득이 적어서 등)’이 19.9%, ‘가족계획(터울 조절 등)’이 12.9%, ‘사회활동 지장’이 8.3%로, 대부분이 사회경제적 사유임을 알 수 있다.

최근 김동식 외(2018) 보고(9)에 의하면, 낙태 사유로 ‘경제적 준비가 되지 않아서’가 29.7%, 그 다음으로 ‘계속 학업과 일을 해야 해서’가 20.2%로, 모자보건법의 허용한계에 속하지 않은 불법적 사유가 97.1%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낙태 사유가 중복응답을 포함하더라도 모자보건법의 허용한계에 속하는 경우는 2.9%만 해당된다.

이처럼 대부분의 낙태는 모자보건법의 허용한계를 넘어서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행해짐을 알 수 있고, 낙태를 하는 여성과 ‘낙태하게 한’ 의사가 범법자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정황에 대한 검토와 성찰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여성들의 낙태 결심이 사적으로 쉽게 내려지는 것이 아니며, 가족과 배우자, 파트너 등과의 관계 속에서 조정을 거치며, 여성이 처한 사회경제적 요인들을 감안해서 고민과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공감할 필요가 있다.

4. 낙태죄에 대한 인식

1953년 형법의 낙태죄 조항이 있지만, 1973년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을 위한 가족계획사업 추진을 위해 모자보건법을 제정하여 인공임신중절 허용 조항을 만들었다. 그 후 인구 통제를 위하여 산아제한 목적으로 임신 초기에 ‘월경조절술’(10)이라는 이름의 낙태가 정부의 지원 하에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지역 보건소에 가면 무료로 낙태를 해주고 피임장치 인 자궁내장치 삽입이나 영구불임술인 난관결찰술도 낙태 후 바로 무료로 시술해주곤 했다. 당시만 해도 피임의 수단으로 낙태가 광범위하게 시행되어서 당시 여성은 물론 배우자나 가족들도 낙태죄의 존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형법의 낙태죄 조항을 인지하지도 않았으며 낙태죄 찬반 논란도 사회적인 관심사 표면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후 산아제한을 위한 가족계획 정부사업이 종결되었지만 암암리에 낙태 시술이 행해지고 있었다.

2010년 <프로라이프의사회>에서 낙태시술 의사를 고발하는 사건 이후, 여성계에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사회적 인지도의 지평이 넓어졌다고 여겨진다.

한국갤럽은 2016년에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18 명을 대상으로 낙태수술 금지법 찬반 여부를 조사하였는데,(11) ‘낙태수술을 보다 엄격하게 금지해야한다’가 21%, ‘필요한 경우 허용해야 한다’가 74%로 나타났다. 이는 1994년 조사에서 금지 26%, 허용 72%에 비해 허용의견이 소폭 증가하였다.

2017년 리얼미터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516 명을 대상으로 낙태죄 유지 및 폐지에 관한 의견조사를 하였는데,(12) 응답자의 51%가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였고, 36.2%가 반대하였다. 이도 2010년 조사에서 낙태죄 폐지가 33.6%, 유지가 53.1%에 비해 현저하게 낙태죄 폐지 찬성 비율이 높아졌다.

최근 김동식 외(2018) 보고에 의하면, 10명 중 7.7명은 현행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하였고, 나머지 2.3명은 현행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또한 도덕적 사유로 낙태죄가 유지되는 것에 대한 동의나 지지는 상대적으로 낮다고 하였다.(13)

이렇듯 최근 들어 낙태죄 문제가 사회적 논란의 주제로 떠오르게 되었고 여론 및 사회적 분위기를 볼 때도 낙태죄 폐지에 대한 공감대가 과거보다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피임 실천과 원치 않는 임신

일반적으로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전제를 두고 형법 처벌의 근거로 삼고 있다. 즉, “계획된 임신과 출산은 언제나 가능하며 모든 임신은 출산으로 이어져야 하며, 원하지 않는 임신은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의 책임이다”라는 전제이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전제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편견에 근거하고 있다.

보통 여성이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조심하지 않아서 원치 않는 임신이 생긴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성숙한 부부가 임신을 조절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피임법을 실천하더라도 100% 성공하기 어렵다. 피임법 중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배란주기법, 살정제 사용, 체외사정법 등은 일반적으로 사용할 때 피임실패율이 20%가 넘는다. 그나마 콘돔을 사용하는 경우도 피임실패율이 18%라서 완벽한 피임법이라 하기 어렵다. 산부인과 의사에 의해 자궁에 삽입하는 자궁내장치가 그나마 0.2%의 피임실패율을 보이고, 피임약의 경우도 며칠 빠뜨리거나 시기를 잘못 맞추어 복용을 하는 등 복용방법이 잘못될 경우가 있어 9%의 피임실패율을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0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에서 15-44세 유배우 여성을 대상으로 낙태 경험을 조사하였는데, 전체 유배우 여성 중 각각 49.2%(1994년), 45.2%(1997년), 39.2%(2000년)가 낙태 경험이 있다고 하였다.(14) 따라서 한국 여성들에게 낙태란 하나의 ‘최종적 피임 수단’이자 ‘보편적 경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손명세 외(2011) 조사(15)에서도, 낙태 경험자 중 피임을 하지 않은(또는 못한) 이유로, ‘이번에 임신이 될 줄 몰라서’가 52.8%, ‘피임방법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해서’가 19.7%, ‘예기지 않은 관계 또는 원치 않은 관계’에 10.2%, ‘파트너가 피임을 원치 않거나 임신을 원해서’가 5.5%로 나타났다. 피임 방법 중 월경주기법, 질외사정법으로 낙태하게 된 경우가 각각 43.8%. 42.2%로 피임효과가 적은 방법을 실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2018년 조사에서도 피임 실천율이 매우 낮아, 성관계 시 피임을 특별히 하지 않은 경우가 10 명 중 약 7.7 명이었고 이는 혼인상태와 연령별 차이가 없었다. 피임을 하지 않은 주된 이유로 질외사정이나 월경주기법만으로 피임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경우가 10 명 중 6.4 명이 응답하였다.(16)

이렇듯 한국 여성들(남성 포함)이 피임 실천율이 낮고 피임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실천이 부족하며, 성관계에서 여성의 피임주도권이 미약한데다가, 피임을 열심히 실천해도 완벽한 피임법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원치 않는 임신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6.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

원치 않는 임신에 직면하였을 때 여성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낙태 아니면 임신 유지와 출산이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은 결코 안전하고도 편안한 과정이 아니다.

실제 낙태를 중지하고 임신을 유지하여 출산한 여성들에게 낙태 중지 이유를 질문했을 때, 낙태에 대한 두려움과 부작용이 과반 정도가 되었으며, 특히 죄책감이 10 명 중 2.2 명으로 응답하였다. 낙태 중지 이후의 삶에 대한 질문에서, 과반수이상은 일/학업을 포기해야 했거나 꿈을 포기해야 했다는 응답하였고, 경제적 부담이 커졌고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경험하였다고 응답하였다.(17)

현재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살펴보자. 기혼여성 중 10% 정도는 자녀가 없어도 무관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미혼 남성에게서 18%로 더 높아지고, 미혼여성에게서는 30%로 더욱 높다. 기혼여성에서 자녀를 전혀 두지 않겠다는 이유는 주로 난임이며, 1 자녀만 두겠다는 이유는 주로 자녀교육비 부담, 일-가정 양립곤란, 고연령 등이다. 특히 미혼여성은 성분업적 역할로 인한 자녀양육 및 교육 부담, 일-가정 양립곤란, 자아 성취, 육아 인프라 부족 등으로 자녀를 1명을 두거나 전혀 두지 않을 의향이 존재한다.(18)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노동력의 경력 단절이 특히 첫 아이 출산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기혼 여성의 첫째 아이 출산전후 경력단절 경험비율은 45% 수준이다. 여성의 경력단절과 출산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경력단절을 피하기 위해서도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법으로 낙태를 금지한다고 해도 원치 않는 자녀라도 출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84.6%의 여성 응답자들은 출산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고, 15.4%의 여성응답자들은 출산을 선택하겠다고 하였다. 반면에, ‘낙태를 법으로 허용하면 더 쉽게 낙태를 선택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78.6%의 여성응답자들은 쉽게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으며, 24.1%의 여성응답자들은 좀 더 쉬워질 것이라고 대답하였다.(19)

자신이 원하는 시기와 상황에 맞지 않게 임신이 되었을 때 낙태를 선택하게 되는 여성의 결정이 쉽게 내려지는 것이 아니며, 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사회적 돌봄 자원의 부족, 성분업적 역할과 일과 가정의 양립 곤란 등(20)의 사회적 지지구조의 불충분함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의 낙태 결정이 단순히 ‘사익’을 추구하는 차원이 아니며, 가족 상황과 사회경제적 상황 등 복합적인 고려 속에서 이루어지는 어려운 결정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7. 산부인과에서의 낙태 실태

산부인과는 산모와 태아의 건강과 질병을 다루는 전문 의료과목이다. 그리고 태아의 안녕상태는 산모의 건강과 질병,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와 태아 양쪽 생명과 안녕상태를 돌봐야 하는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낙태는 모체에 종속된 태아의 생명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으로 비난 받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도 여성들의 목소리로 쉽게 호응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낙태와 관련하여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비밀유지를 위한 대가로 고가의 수술비를 요구하는 등)으로 낙태수술을 해주고 있다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낙태죄를 폐지 의견을 내면 마치 돈벌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으로 오해받을까봐 소극적이었다.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이 주도하는 <프로라이프의사회>의 낙태 의사에 대한 고발이 있던 2010년에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의견충돌이 개진된 바 있다. 이에 대응하여 <대한산부인과의사회(산부인과 개원의 단체임)>는 산부인과 개원의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하였다. 당시 설문 결과는 첫째, 97.9%에서 현행 모자보건법의 현실적 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둘째, 90.6%에서 인공임신중절의 사회경제적 허용사유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셋째, 94.6%에서 개정 모자보건법에는 심한 태아 기형이나 태아 질환으로 인한 허용 사유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21)

산부인과 의사를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서도 낙태 요인으로 ‘혼전 성교 및 미혼 임신의 증가’ 73.9%, ‘경제적 상황의 악화’에 27.7%, ‘여성의 사회참여 증가’에 27.7%, ‘양육비 및 교육비 증가’에 12.9%가 응답하였다.(22) 이러한 산부인과 의사의 응답은 기존 여성이 처한 상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행 낙태 관련법을 둘러싼 일선 산부인과 의사들의 대응은 어떠한가? 낙태를 시술하는 의사들은 형법 제270조 제1항에 따라 ‘벌금형도 없는’ 징역형에 처할 위험을 인지하고 있다. (금고 이상의 형은 의사면허의 취소 사유가 된다.) 또한 <프로라이프 의사회>에서 낙태 시술 의사를 고발하겠다는 행동이 나오자, 일선 의사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자신의 신앙이나 신념에 따라 낙태시술을 하지 않는 의사들은 물론, 법적 처벌을 두려워서 위축이 된 의사들은, ‘울면서 낙태를 호소하는’ 여성 또는 가족의 일원, 또는 남성들(때로는 낙태를 해달라고 의사에게 협박하는 남성도 있다)을 돌려보낸다. 이렇게 되면 여성들은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다니는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한다. 보통 전화로 낙태가 가능하냐고 문의할 경우, 그렇다고 대답하는 병원은 거의 없으며, 실제 찾아가서 상담을 해봐야 가능한지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여성이 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다니다가 임신이 계속 지속되고 적절하고 안전하게 시술할 수 있는 임신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또 의사가 비밀유지를 전제로 시술을 한다 하더라도 배우자 또는 임신을 하게 한 파트너를 동반하여 오도록 하고 ‘법적 효력이 없어도’ 쌍방의 시술동의서를 받는다. 왜냐하면 모자보건법 상 배우자 또는 미성년자의 경우 보호자 동의 조항이 있으며, 형사고발이 배우자에 의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아 동반하지 못하는 경우, 이혼 소송 중이거나 별거 중이어서 배우자를 동반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수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시술 자체가 불법이므로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고 시술비용은 의사가 요구하는 대로 고가여서 경제적 취약 계층 여성이나 청소년들은 시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불가피하게 출산 후 영아 유기를 하여 모체의 훼손은 물론 영아의 생명도 위태롭게 하는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23) 또 낙태로 인한 의료과실, 합병증과 후유증, 불임에 대한 연구는 그 자체가 불법이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 여성에게 의료과실이나 합병증이 발생하여도 비밀리에 불법으로 시행하였으므로 정당하게 고발을 하거나 문제 삼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산부인과 전공의 수련병원에서도 낙태 시술 교육과 임상실습이 없어서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낙태 시술법을 훈련받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어도 낙태 시술 경험과 지식이 없어, 미숙한 낙태 시술 시 의료과실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현실과 괴리가 큰 낙태죄 조항으로 산부인과 의사들은 여성들의 요구(배우자와 가족의 요구인 경우도 많다)에도 낙태 시술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낙태를 하는 산부인과 의사들도 비밀리에 시행하면서도 심리적 위축감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또한 산부인과 의사 내부의 비난이 존재하며 사회적 시선도 곱지 않아 적절한 직업수행의 제한을 느끼고 있다. 이렇듯 직업수행의 자유가 심각히 훼손되었다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 또한 위반하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산부인과 의사들의 이러한 혼란스러운 대응방식과 제도적 미비, 적절한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막는 형법의 낙태죄 존재가 고스란히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의 훼손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석

(1)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게 되어 모체의 생명과 건강만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말한다(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3도2780 판결)고 하여 좁게 인정하고 있다.
(2) 다운증후군은 동 조항 소정의 인공임신중절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운증후군은 유전성 질환이 아니라는 이유다(대법원 1999. 6. 11. 선고 98다22857 판결).
(3) 김해중 외 12인(2005). 인공임신중절실태조사 및 종합대책수립, 고려대학교 보건복지부.
(4) 손명세 외(2011).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실태조사. 보건복지부, 연세대학교.
(5) 보건복지부(2012). 2012. 9. 23.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발표 공청회 개최 보도자료.
(6) 박명배 외(2017). 소셜 빅데이터를 이용한 낙태의 경향성과 정책적 예방전략, 한국보건행
정학회지 v.27. no3, 2017sus, pp.241-246.
(7) 위의 김해중 외(2005).
(8) 위의 손명세 외(2011).
(9) 김동식, 황정임, 동제연(2018). 임신 중단(낙태)에 관한 여성의 인식과 경험조사. 서울: 한국여성정책연구원(미발표초안)
(10) 월경조절술은 영어로 menstrual regulation이라 하는데, 임신 초기 엄연한 낙태인데, 명칭 상 단순히 월경을 나오게 조절해주는 간단한 시술처럼 오인하게 한다.
(11) 한국갤럽(2016). 한국 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232호(2016년 10월 3주(18-20일)).
(12) 리얼미터(2017). [tbs 현안조사] 낙태죄에 대한 국민여론.
(13) 위의 김동식 외(2018).
(14) 김승권 외(2000). 2000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15) 위의 손명세 외(2011).
(16) 위의 김동식(2018).
(17) 위의 김동식(2018).
(18) 이삼식(2015).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P.4-5.
(19) 양현아(2012). 낙태죄 헌법소원과 여성의 ‘목소리’[1]. 법학논총 제30권 제1호, 5-40.
(20) 위의 이삼식(2015). P.6
(21) 손영수(2010) 형법상 낙태와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에 관한 의료법리학적 이해. 대한산부회지 53(6):469.
(22) 위의 손명세 외(2011).
(23) http://hankookilbo.com/v/8b7781b2c7cb4b8c8de5f379b903e362 현행법 위반 논란이 여전한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영아 수는 2011년 37 명에서 2012년 79 명, 2013년 252 명으로 급격히 늘어난 뒤 매년 200 명 이상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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