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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에서의 재생산정의

기사승인 2024.04.01  16: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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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령과 학살의 끝에 내몰린 생존의 조건속에서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

 

"너무나 충격적이다. 가자지구에서 불과 4개월 남짓 동안 살해됐다고 보고된 아동의 수는 4년간 전 세계 전쟁에서 살해된 아동의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이 전쟁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전쟁이다. 아동의 어린 시절과 미래에 대한 전쟁이다. 아동을 위해 즉각 휴전하라."

유엔 근동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UNRWA) 사무총장 필리페 라자리니 Philippe Lazzarini 가 지난 3월 13일 자신의 X (구 트위터) 계정에 남긴 글이다.[1]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전쟁으로 사망한 아동의 수가 12,193명인데 2023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4개월 사이에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아동은 확인할 수 있는 숫자로만도 12,300명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아동이 사망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가자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부터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여성을 포함하여 수많은 가자 주민들이 탈수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2] 이스라엘이 전략적으로 구호물품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리쿠드당의 탈리 고틀리브 Tali Gottlieb 는 아예 의회에서 노골적으로 “가자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정보를 줄 협력자를 모집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3] 가자지구의 주민 전체를 집단 고문의 대상으로 삼아, 사람들을 기아와 탈수에 시달리게 하고, 음식과 음료, 의약품 등을 미끼로 주민들로부터 정보를 받아내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굶주림에 시달리며 구호물품을 실은 트럭을 기다리던 이들에게는 총을 쏘아 학살하고 있다. [4] 심지어 팔레스타인의 어린이와 주민들은 하늘에서 무성의하게 쏟아지는 구호물품에도 맞아서 죽고 있다. [5]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하며 “우리는 인간 동물 human animal과 싸우는 중이므로 그에 맞게 행동할 것”이라고 했던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 Yoav Gallant 의 선언이 그대로 실행되고 있는 중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간 동물’로 선언하는 데에 어떠한 주저함도 없는 태도, 그들을 ‘동물’로 대한다는 것이 곧 어떤 잔인한 학살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이 된다고 믿는 이들의 인식은 홀로코스트의 논리를 그대로 닮았다. 나치가 그러했듯, ‘대이스라엘’을 세우겠다는 이들의 목적도 팔레스타인 민중의 절멸을 의도하고 있다.  

 

전쟁 중단, 팔레스타인에서의 ‘재생산정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

 

한편, 이스라엘이 병원을 표적으로 삼으면서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더욱 극심한 고통과 생사의 갈림길에서 출산과 수유, 육아를 감당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팔레스타인 가족계획보호협회(PFPPA)가 운영하는 유일한 의료 센터는 이미 지난 해 10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자 지역에 산전 및 산후 관리가 필요한 여성의 수가 50,000명에 달한다고 보고했으나 대다수가 전혀 필요한 의료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고, 수백여 명의 여성들이 마취제도 없이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분유를 구할 수 없어 모유 수유를 해야함에도 물과 음식을 구하지 못해 굶주리고 있다. 유엔인구기금(UN Population Fund) 팔레스타인 지역 최고 관리자인 도미닉 앨런 Dominic Allen 은 가자지구의 임산부 중 하루 평균 180명이 출산을 하고 있으나 이 중 15%가 합병증을 갖게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계속된 공습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 유독가스는 유산과 합병증의 위험을 날이갈수록 고조시키고 있다. [6]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성 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이스라엘의 잔혹한 공습 하에서 뿌리 채 공격받고 있는 중이다. 

하나의 공동체 집단을 이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절멸시키고자 하는 잔인한 전쟁범죄의 현장에서 ‘자녀를 낳거나 낳지 않을 권리’라는 말은 속절없이 무력해지고 만다. 함께 저항하고, 공동체를 살피며,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지 않으면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관계와 토대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내릴 현실에서 ‘재생산’은 곧 공동체의 생존의 조건을 의미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랜 전쟁과 폭력, 거듭된 말살 시도의 한복판에서 살아온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는 ‘살아가는 것’이 곧 저항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절멸을 시도하는 학살과 전쟁을 즉각 중단하는 것,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완전히 손을 떼고 팔레스타인 해방이 선언되는 조건을 보장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재생산정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이다. 

 

(출처: https://fightbacknews.org/articles/celebrate-international-womens-day-stand-with-the-women-of-palestine)

 

지난 3월 8일, 전 세계 각국의 언어로 발표된 “가자 없이 페미니스트 투쟁 없다”는 선언문[7]은 이러한 이해에 전혀 기반하지 않은 채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대상화하고, 심지어 이스라엘의 공격을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하고 있는 일각의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깊은 분노와 규탄을 표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거의 매일 목도하고 있다.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출산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뱃속에 품고 살해당한 어머니들, 가족 구성원 전체를 잃은 어린이들, 돌무더기 잔해 아래 어딘가에 있을 사랑하는 이들을 맨손으로 찾는 남성들, 탱크와 저격수로 둘러싸인 집안 테이블 위에서 의료 장비도 없이 자기 자녀의 팔다리를 절단해야만 하는 의사들을. 가자 지구 북부에 있는 수십만 명의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집단 학살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체계적인 기아 정책에 직면하고 있다. 

(중략)

가자의 여성들인 우리는 식민주의적 의제에 봉사하고 집단 학살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페미니즘의 이상을 무기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여성과 남성의 몸에 가해지는 이스라엘의 폭력과 잔인함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팔레스타인 여성이 대상화되는 사회적 폭력을 악용하는 제국주의적 페미니즘의 착취적인 수사를 단호히 거부한다. 우리는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 속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고통을 무기화하여 팔레스타인 남성을 비방하고 비인간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여성 해방 없이 팔레스타인 해방 없고,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여성 해방 없다. 

 

동시에 우리는 여성의 권리, 특히 재생산 권리가 언제나 ’공동체의 미래‘라는 명분과 수사 아래에서 언제나 뒤에 남겨지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재생산 통제가 식민주의와 이스라엘의 심각한 폭력 속에서 더욱 강화되는 동안 이에 맞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더욱 절실하게 생존을 강구해 왔고,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출산이 곧 저항으로 간주되는 상황이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처한 어려움을 가중시켜왔기 때문이다.  

임신중지를 둘러싼 상황들은 이런 어려움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임신중지 처벌은 영국의 식민지 통치와 오스만 제국의 법으로부터 파생된 1960년 요르단 형법 제321~325조에 의해 범죄로 규정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2004년에 통과된 팔레스타인 공중보건법 제20조 8조에 따라 임신한 여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이 경우에도 남편이나 보호자의 서면동의가 요구되고 의사 두 명에 의해 그 사실이 확인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1년에서 많게는 3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2007년 팔레스타인 가족계획보호협회와 유엔 근동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가 연구한 내용에 따르면 서안지구 난민캠프에서 조사에 응한 333명의 여성 중 40%가 임신을 중지했다고 응답했지만 대부분 어떠한 의료기록도 없어 어디서 어떻게 임신중지를 했는지, 실제 정확한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재생산 건강과 출산, 양육의 조건을 심각하게 위협해 왔다.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만도 70여 명의 여성들이 군사검문소에서 아무런 의료적 조치도 없이 출산을 하도록 강요당했으며, 이들 중 절반에 달하는 35명의 유아와 5명의 산모가 적절한 의료조치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8] 2015년 연구에서는 조사 대상 여성의 4분의 1이 임신 중에 검문소를 통과할 때 최루탄 연기를 흡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을 거대한 감금지대로 만들면서 성·재생산 건강에 필요한 의약품과 필수품이 공급되기 어렵게 만들어 왔다. 또한 팔레스타인의 출생률이 이스라엘보다 높아지는 상황을 계속해서 경계하며 거주지를 봉쇄하고, 검문소를 통제하고, 필수품의 공급을 막고, 아동과 어린이를 체포·감금하거나, 수시로 공격과 폭력을 자행함으로서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출산과 양육을 폭력적으로 통제해 왔다. [9]

 

2014년에 예루살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에서 60여명의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한 한 연구 [10] 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거주 지역에 따라 임신중지 상황에서 각기 복잡한 갈등과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으로 인해  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거주 신분과 그에 따른 이동의 제약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의 경우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영주권과 유사한 임시 거주권자 지위를 부여하여 서안과 이스라엘의 왕래가 가능하지만 엄격한 검문 대상이고, 타지에서 7년 이상 거주하면 예루살렘 거주 자격을 박탈당한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의 유대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계속해서 제약하고 거주 자격을 박탈하거나 가족 결합을 막아왔다. 심지어 2003년에는 이스라엘 시민과 결혼한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획득하지 못하게 하는 법까지 제정했다. 한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신분증을 가진 주민들은 지구 내에서 이동할 때도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해당 지구 내에서만 거주할 수 있다. 서안지구 주민이 이스라엘 영토로 진입하려면 특별허가를 받아야 하고, 수많은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가자지구의 주민들은 사실상 가자를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11]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교육이나 보건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지만 서안이나 가자지구 주민들은 접근 자체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으며 검문 외에도 팔레스타인인에게 금지된 도로나 분리장벽 등이 이동 자체를 크게 제약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연구는 이런 복잡한 거주지위와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상황 속에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여성들은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찾기가 극히 어렵고, 동예루살렘에 있는 여성들의 경우 사실상 무국적자 신분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법의 영향을 받지 않아 이스라엘의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불신과 저항감으로 이스라엘의 의료 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피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의 가족 결합 통제를 계속해서 강화하면서, 조직적으로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로 몰아내 온 이스라엘의 폭력은 이러한 저항감을 더욱 증폭시켜 왔다.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지지하며 연대하는 세계 각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해방 없이 팔레스타인 해방 없고,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여성 해방 없다”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에서도 원하는 모든 사람이 자율적이고 안전하게 양질의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함께 싸울 것이다.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은, 이토록 막연하게만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팔레스타인 사회의 가부장적 모순과 폭력에 맞서며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공동체의 생존을 이어나가기 위해 분투하며 싸워온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재생산정의는 그 투쟁에 함께 함으로써만이 성취될 수 있다. 전쟁을 끝내고, 점령과 학살을 끝낼 수 있도록, 그 생존의 조건을 요구하는 외침에 함께 연대할 때, 팔레스타인에서의 재생산정의를 위한 싸움의 길 또한 조금씩 더 열릴 것이다. 

 

(출처 : https://www.newarab.com/features/celebrate-resilience-palestinian-women-and-mothers )

 

[8] General Assembly, 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OHCHR), The Question of Palestine: Issue of Palestinian pregnant women giving birth at Israeli checkpoints, UN Doc. A/60/324(2005).
[9] 이와 관련하여, 아래의 글과 다음 각주의 논문이 팔레스타인에서의 재생산 통제와 부정의를 둘러싼 상황들을 교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Shams Hanieh and Aude Nasr, “The Weaponisation of reproductive injustice in Palestine: Patriarchy, social restrictions and the violence of settler colonialism”, shado(See. Hear. Act. Do.), 2023.8.14. https://shado-mag.com/act/the-weaponisation-of-reproductive-injustice-in-palestine/
[10] Shahawy S. “The Unique Landscape of Abortion Law and Access in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ies”. Health Hum Rights. 2019 Dec;21(2):47-56.
[11] 여기서 서술한 거주지역에 따른 팔레스타인인의 신분과 이동 제약에 관해서는 다음의 자료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아디 인권보고서,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사단법인 아디, 2021.
 
이 글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습니다.(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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