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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은 장애인만의 문제인가

기사승인 2024.03.22  09: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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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의 강제 진압과 퇴거, 그리고 무리한 연행 역시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어깨를 다친 전장연 활동가의 진료 요구를 묵살한 채 체포 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기각한 일도 있었다(무리한 구속영장 신청과 기각은 처음이 아니다). 취재 방해, 막무가내식 집회 해산 등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대한 반민주적 억압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지금 드러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단지 장애인이나 그 주변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단지 교통수단에 대한 접근권에 관한 문제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 또는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이동'(mobility)이라는 렌즈를 통해 사회 정의를 논의하는 흐름이 지난 몇 년간 활발해졌는데, 그런 이동의 관점에서 보면 장애인의 이동권 제약은 우리가 모두 공유하는 구조에서 발현되는 하나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이동 정의(mobility justice)를 분석하고 주장한 쉘러(Sheller)가 던진 질문들, ‘사회적으로 어떤 이동이 허용되고 어떤 이동이 거부되는지’. ‘누가 이동을 결정하는지’, ‘누구의 이동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지’ 등에 대해 답하는 과정에서 드러낼 수 있다.

학술적 차원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는 인간에 한정되지 않고 재화, 정보, 자본 등의 이동을 모두 포함하며, 그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과 과정에서부터 이동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영향까지 뻗쳐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교통과 관련한 몇 가지 사안들만 살펴봐도 충분할 것 같다. 먼저 철도 부문을 들여다보면, 그간 KTX 열차의 운행은 늘어나는데 일반열차의 운행은 감소하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빠르고 깔끔한 열차가 늘어났다고 반기는 사람이 많겠지만, 한편에서는 값비싼 열차의 증가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KTX는 주로 대도시에만 정차하기에, 인구가 적은 지역의 주민들은 이동의 제약이 더 커졌다. 빠른 열차가 여가 시간을 늘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의 리듬을 더 빠르게 재구성하면서 노동 부담을 늘리기도 했다.

보건의료 영역에서는 KTX를 논할 때, 의료 이용의 수도권 쏠림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갈만한 병원이 없는 지역의 노인들이 버스와 무궁화호의 감소 때문에 의료 이용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주목받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지역의 노인들은 현 상황을 당연시하거나 ‘요즘 다들 차를 가지고 있는데, 자기는 차가 없어서 그런다’며 자책한다. 실재하는 고통과 그 고통에 대한 개인의 반응은 어떤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총선 국면을 맞아 거대 양당은 지역을 방문하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가덕도 신공항을 비롯해 온갖 개발 사업을 약속하고 있다. 유력 정치인들은 지역균형발전과 같은 추상적인 담론과 가치, 혜택으로 이를 정당화한다. 그렇지만 과연 개발의 성과는 보편적으로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그래왔듯 누군가의 이해가 관철되는 동안, 누군가의 가치와 욕구, 고통은 배제되는 또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고, 그만큼 수요가 있으니 개발하는 것이라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그만한 수요가 있기는 한 것인가.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는 국가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제성 측면에서도 타당성이 떨어져 ‘총선용 사업’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 개발이 현실화되는 경우 이익을 얻는 것은 토건 자본이요, 피해를 보는 것은 환경 파괴 등 부정적 외부효과를 공유하는 사회구성원들이다.

우리는 그 수요와 경제성, 공리주의적 관점의 평균적 용이성만 중시하는 인식에 명확히 반대한다. 대신 공공의료기관과 같이 설령 경제성 측면에서는 타당하지 않더라도 지역 주민들, 특히 소외된 사람들의 건강과 삶을 위해 필요성이 크다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지역에서 무산된 공공병원 설립과 총선 국면에서 추진되는 개발 약속 간 차이는 국가권력-경제권력 연합의 권력 강화에 미치는 영향이다. 몇 가지 사안을 ‘이동’의 좁은 의미로 살펴봐도 현재의 교통과 이동의 불평등은 자본주의 체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본의 축적운동이 사회의 중심 원리가 되는 구조, 자본의 입장에서 정의한 생산성을 중심으로, 노동하는 사람의 이동을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이동보다 우위에 두는 구조, 수도권 중심의 자본축적전략을 강화하는 구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위계화된 구조와 질서는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시민사회 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되어 구조화된 인식과 실천으로 이어진다. 장애인들이 스스로 몸을 내던지면서까지 필사적으로 투쟁하는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에 사람들이 냉소를 보내는 것도, 의료취약지역 노인들이 불평등을 당연시하고 스스로를 탓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이동과 이를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힘은 자본주의적 사회 원리와 권력관계에 저항하는 주체들의 인식과 실천에 달려 있다. 그럴듯한 담론으로 포장된 특정 실천, 그리고 우리의 이동을 제약하거나 강요하는 개입이 누구의 이해와 결부되어 있는지, 누구의 고통을 수반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추상적인 단일 주체의 욕구가 아니라 구체적인 다양한 주체들의 생생한 경험과 지식, 욕구,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느리더라도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정책이라도 모든 집단이 같은 영향을 받을 수는 없으므로, 다시 의사결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이들의 권리, 욕구, 가치, 이해 등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 방향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장연의 활동은 우리 사회의 이동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의 출발선이자 최전선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 잘 들려지지 않던 목소리를 들리게 만들고, 이동을 둘러싼 억압적 구조와 인식,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투명하게 보여주며, 또 저항한다. 그러므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는 정의로운 이동과 이를 보장하는 사회를 구현하는 중요한 경로이다.

 

* 이 글은 프레시안, 라포르시안과 공동 게재됩니다.

* 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학술운동 시민단체입니다. (http://health.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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