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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왕진 가는 길

기사승인 2024.06.18  1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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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보는의료 사진이야기』, 방문의료연구회

▲ 환자의 집 가는 길

방문진료 다니면서 동네 구석구석을 참 많이 다닌다. 초반에는 길을 잘못들기도 하고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가며 가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도로명 주소만 봐도 대강 어디쯤인지, 주차가 수월한 동네인지 아는 정도이다. 이날도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지도를 살피고 있었는데 아드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희 어머니 집을 좀 찾기 어려워하시더라고요. 근처에 오셔서 전화주시면 제가 큰길로 나갈게요.”
‘아휴, 저는 집찾기 선수랍니다.’ 라고 속으로는 생각했지만, 염려 마시라 말씀드리고 길을 나섰다. 

‘길을 묻지 않고 집 앞까지 찾아가면, 조금 놀라시려나’ 생각하면서 웃음지으며 네비게이션을 따라 주소지 근처에 가서 주차를 했다. 지도 앱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가보니 계단이 있었고, 계단을 오르니 계단 끝이 담장으로 막혀있었다. 담장을 따라서 좁은 흙길이 나 있었지만 길을 잘못 들은 것이려니 하고 다시 내려왔다. 머쓱한 마음에 아드님께 길을 잘못들은것 같다고 전화를 걸었는데, 내가 올라갔던 그 계단에서 아드님이 내려온다. 아드님을 따라 계단을 다시 올라가서, 아까는 뒤돌아섰던 좁은 흙길을 따라 걸었다. 시멘트벽돌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은 웅덩이도 건너고 조금 더 걷자 집의 입구가 나왔다. 집 앞에는 항상 포장도로가 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는데, 길을 잘못들었다고 얘기했던게 떠올라 죄송한 마음에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어르신은 집 안에서만 생활하신지 3년이 되셨다고 했다. 그동안 고혈압, 당뇨약을 아드님이 대신 타 왔는데, 최근에 다른 문제가 생겨 다니던 의원에 문의했지만 어르신을 직접 보지 않고는 처방을 못 준다고 했다고. 진료하면서 체크해보니 혈압, 혈당도 조절이 잘 안되고 있어서 기존에 드시던 약도 조절하고 새로운 문제에 대해서도 처방을 해드렸다. 어르신은 집 안에서는 기둥과 가구들을 짚고 천천히 다니셨는데, 집밖에 나오려면 내가 걸어온 흙길과 벽돌 징검다리를 건너 계단을 따라 내려오셔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해보였다. 

집 주변 환경때문에 외출을 못하는 분들도 있지만 고작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지 못해서 집안에서만 지내는 어르신들도 많다. 방문진료 초반에는 병원에 직접 못오는 분들이 이렇게 많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병원에만 못오시는게 아니라 집밖에 아예 나가지 못해 몇 년째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분들이 많다. 현관을 나서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문제는 그냥 참고 지나간다. 우리가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그분들은 의료로부터 소외되어있다. 우리가 그 문을 열때마다 환자가 의료와 연결된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한집 한집 환자의 문을 연다. 

정혜진 의사 우리동네30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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