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보는의료 사진이야기』, 방문의료연구회
▲ 구순 할머니가 쓴 공책 |
김 할머니는 작년에 넘어져 수술한 다리가 성치도 않은데 가만히 있는 성격이 못돼서 또 비탈진 밭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을 낫으로 베었다. 동네 할머니들의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도맡아 하시는 이장님 댁에서 전화가 왔다. “소장님 손가락을 꼬매야 할까요?” 정신없이 드레싱세트를 챙겨 달려갔다. 다행히 지혈이 잘되어 소독하고 Steri-Strip을 붙여놓았다. “허허허 소장님만 힘들게 했네. 미안혀”하셨다. 그 후로 일주일 동안 출근하면 잠깐 들러 드레싱을 하고 염증이 생기지 않게 일하지 말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 갈 때마다 보면 소용 없다.
자식들은 다 직장 잡아 외지에 살고, 할아버지는 지난해 요양병원에 가시면서 혼자 사신다. 사람이 귀한 산골이라 가면 다시 돌아서 나오기가 쉽지 않다.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가 열렸다. 18살에 시집을 왔는데 남편에 딸린 부모 없는 시동생과 시누이를 넷이나 업어 키우고, 가난해서 이 동네 저 동네 천막을 치고 살았단다. 그런데도 남편은 하모니카나 불고 기집질이나 하니 자식들과 딸린 식구들 입에 풀칠할까 일만 생각하고 낮이나 밤이나 오로지 일만 했단다. 이제 구십 살을 먹고 보니 서럽고 슬프다고 했다. 평생 남편은 나를 억울하게 때리고 호통을 치며 무시했는데 고생하며 키운 자식들도 내 속을 모르고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 속에 화가 끓어오르면 잠도 못자고 가슴이 두근거려서도 못 주무신단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손을 잡아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며 등을 토닥거려주면 할머니는 위로받았다고 했다. 어느 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죽기 전에 뭐를 해보고 싶어요? 소원이 뭐에요?” 할머니는 그런게 뭔지도 모른다 생각 안 해봤다 하더니 갑자기 “글자를 못배운게 한이여” 하시면서 글자를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그날부터 부녀회장님에게 글자를 배운다. 밭에 가서도 땅에 글자를 쓰며 안 잊으려고 노력하신단다. 글자를 배우는 것이 그렇게 큰일일까? 할머니는 공부를 하니까 좋아 옛날 생각도 안 나고 잠 잘 때도 계속 글자 생각하다가 잠이 드신단다. 쓸 수 있는 글자가 늘어나는 것을 정말 아이같이 좋아하신다. 1934년생 할머니의 삶은 내가 학교에서 공부했던 역사를 관통했다. 일제와 부모를 앗아간 6·25와 그 이후의 아픔을 고스란히 묻어둔 채 살려니 얼마나 속이 복작거렸을까? 가슴속 화를 어떻게 풀까 고민했는데 의외로 해결책은 간단했다. 김할머니에게는 지나간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초초초고령화 시골 지역사회에서 겉에 보이는 말할 수 있는 손가락의 상처를 계기로 어른들을 만나지만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없고 눈에 안 보이는 마음속 상처 그것을 낫게 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함께 애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도영 전라북도 임실군보건의료원 보건진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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