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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건강논평] 의료와 시설 중심의 장애인 건강체계를 넘어

기사승인 2024.09.30  2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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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건강연구소


작년 국가건강검진을 받은 장애인의 비율은 비장애인에 비해 약10%p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장애인의 건강검진 수검 비율이 비장애인보다 낮다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다만 10년 전에 비해 그 격차가 증가했고, 2018년부터 시행된 장애친화건강검진사업의 효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깝다.

장애인의 건강관련 지표가 비장애인에 비해 안 좋게 나타나는 것은 건강검진 뿐이 아니다. 건강행동과 만성질환 관리, 급성기 질환 관리, 치료 가능한 원인으로 인한 사망과 예방 가능한 원인으로 인한 사망 등의 지표에서도 장애인이 상황이 더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난다(관련연구 바로가기).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건강불평등은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서 더욱 명징하게 드러났다. 예컨대, 코로나19로 인한 첫 사망자는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에서 20년 이상 입원했던 정신장애인이었고, 코로나19 전체 확진자 중 장애인 비율은 4%가 채 안 되지만, 사망자 중 장애인 비율은 거의 3명 중 1명꼴(31.3%)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현실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낄테지만, 좀처럼 눈에 띄는 장애인들의 건강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인식(전제) 역시 현실 개선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장애인은 원래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다’, ‘장애 치료(손상 최소화), 재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근배는 <돌봄이 돌보는 세계>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증상이 장애 탓으로 돌아가며, 진단할 수 있는 많은 증상도 결국은 장애 탓으로 결론 내려진다. 건강하지 않으니 장애인이고, 장애인이니 건강하지 않다는 끝없는 순환논법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장애인은 건강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몸이 되어 있다”

본래 장애인은 아픈 사람이라는 전제는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손쉽게 장애 탓으로 돌리는 데 일조한다. 이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늦추게 하여 (일차적 장애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다른 건강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진단할 수 있는 많은 증상도 장애 탓으로 수렴하면서 장애와 관련된 치료와 재활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반면에 건강의 다른 영역과 예방, 급성기 이후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는 소홀해진다. 또한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건강상태가 안 좋은 것은 당연한(어쩔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장애인의 건강 상태 역시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지기도 하고, 악화하기도 한다. 장애인의 불건강은 결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인식 또는 전제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연히 발생하여 단독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둘러싼 ‘의료(장애치료와 재활) 중심’, ‘시설중심’ 체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임상적 개선을 목표로 하는 의료는 치료가 불가능한 몸에 대해서는 그 영향이 제한적일 뿐 아니라 때때로 배제적이다. 장애인에게는 그들이 24시간 장애를 가진 몸으로 생활을 하는 지역사회 내에서의 지원체계가 의료기관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럼에도 현재의 체계는 장애(인)를 의료와 시설에 구속시킴으로써 정작 장애인의 삶에서 필수적인 지원과 서비스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지금까지 장애인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의료와 시설 중심 체계를 벗어나지 못한 형국이다. 진통끝에 2015년 ‘장애인의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 건강권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2017년부터 시행되었다. 이를 통해 장애인 주치의제 시범사업을 포함해 각종 사업들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재활 위주의 사업에는 변함이 없다. 장애인 건강권 법에 따라 나왔어야 할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은 2017년 법률 제정 이후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올해 발표하겠다는 국무총리의 발표에서는 ‘검진부터 재활치료까지 장애인 의료서비스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계획이라 언급하여, 또 다시 지역사회는 쏙 빼놓으며 의료와 시설 중심성을 확인시켜 줬다(관련발언 바로가기).

시설을 중심으로 한 장애의 치료와 재활이라는 틀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다양한 영역의 지원(건강증진, 의료, 간호, 돌봄)까지 포괄하는 장애인 건강 개선 대책을 위해 필요한 것은 현재의 체계를 정치화 하는 것이다. 즉, 권력관계의 틀 속에서 장애인 건강 체계를 파악하고, 의료와 시설 중심체계를 지탱하는 전제들을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게 만들며, 논쟁적인 사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체계를 유지하고 재생산 하려는 국가권력, 의료권력과의 투쟁이며, 더 나아가서는 생산성을 최우선으로 하며 몸을 차별하는 자본주의체제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권리의 언어로 끊임없이 목소리 내며, 정치화 하는 작업은 중요하지만 당연히 쉽지 않고, 지난한 길이다. 지금까지 건강권을 주창하는 단체는 장애인 건강 문제를 상시적으로 이끌어나가지 못했고, 장애인단체에서는 수많은 사안들 중 건강권 의제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오는 10월 3일 ‘손상보다 차별’, ‘관리보다 권리’, ‘재활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사회 중심 장애인보건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활동하게 될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가 출범한다(바로가기).

시민건강연구소는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가 한국 사회의 장애인 건강권 운동의 획기적인 진전을 통하여 장애인들의 건강권을 포함한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건강권을 더욱 강화하는 의미 있는 투쟁의 주체가 될 것을 확신하고  그 실천의 과정에 함께 할 것이다. 배제된 사람들이 있는 한 모든 사람들의 건강권이 보장되는 세상은 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프레시안, 라포르시안과 공동 게재됩니다.

* 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학술운동 시민단체입니다. (http://health.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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