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transgender)는 스스로 정체화하고 표현하는 성별정체성(gender identity)이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assigned gender at birth)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포괄적 용어다.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비트랜스젠더를 시스젠더(cisgender) 로 지칭한다.
윤정원(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돌이켜보면 의학 교육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정상’을 배운다. 포도당이 세포내로 들어가서 에너지를 만드는 회로와, 어떠한 기계장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섬세한 뼈와 근육의 구조, 하나의 세포로부터 모든 장기가 분화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경외로운지를 새긴 다음에 ‘이상’을 배운다. 유전자의 결함으로 하나의 효소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인데 면역체계가 발달하지 못해 무균실에 살아야 하는 선천성 이상, 발생 과정에서 분화를 멈춰 자궁이 두개인 기형, 오래 써서 콜레스테롤이 혈관벽에 침착 되고 무릎 연골이 닳는 노화. 자연스럽게 정상과 그렇지 않은 상태 간에는 위계가 생기고, 어떻게든 정상성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 의학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대규모의 의료행위에 불과하다.’라고 말한 루돌프 비르효는 의과학이 단지 인간의 질병에 대한 연구 뿐 아니라 사회를 이해하는 은유(metaphor)라고 보았다. 절대군주나 성직자, 법관이 하던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병리의 판가름을 의과학이 넘겨받게 되면서 의과학은 또 하나의 거대한 권력이 되었고, 기존 질서와 체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선택적인 설명만을 받아들여 왔다. 정신질환에 대한 감형,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골상학, 여성의 열등성을 증명하기 위해 근거로 들어진 호르몬과 뇌 연구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고정관념에 따라 가설이 만들어지고, 그 가설에 부합하는 결과들만 의미 있게 받아들여져 이론을 다시 공고화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과학은 절대적이거나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하지만 신화와 과학을 분리하고 어떤 것이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를 찾아 나가는 과정 역시 의과학의 손에 달려 있다. 알려진 것처럼 정자만 운동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팔관이 만들어낸 물결이 난자를 운반하고 난자에서 화학물질이 나와 정자를 유인한다는 발견, 남성과 여성은 몸무게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약이 작용하는 기전과 효과가 다르다는 증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도 이런 연구들에는 관심을 덜 쏟고 교과서가 바뀌기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정상이 무엇이냐, 생물학적 여자와 남자를 어떻게 나눌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생물학적 성을 섹스(여자female/남자male), 사회적 성을 젠더(여성women/남성men)라고들 한다. 이런 이분법적 표현은 생물학적 성은 절대적이고 불변하며, 사회적 젠더는 화법, 옷차림, 화장, 태도, 성적 지향 등으로 구성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회적 젠더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이분법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며 스펙트럼이라고 인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남성을 사랑하는지 여성을 사랑하는지, 여자는 긴머리 남자는 짧은머리가 아니라 모두가 투블럭부터 장발까지 할 수 있는지, 화장을 할 지/말지/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지, 소극적인 태도가 성격인지 성적 특성인지 그렇게 길러져서 인지. 그런데 사회적 젠더만큼이나 생물학적 성 자체도 절대적이지 않다.
무엇이 여자를 여자로 만드는가. 생물학적 성을 한번 찾아나가보자.
생물학적 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
[염색체]
인간은 46개(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 중 X와 Y 염색체가 성을 결정한다. 대부분의 여자는 46XX를, 대부분의 남자는 46XY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약 400~1000명중에 한 명 꼴로 단일성염색체 (45X0(터너 증후군, 표현형 여자) 또는 45Y0(표현형 남자))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세 개 이상의 성염색체((47XXX(표현형 여자), 47XYY(표현형 남자) 또는 47XXY(표현형 남자))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한다. 한 사람의 몸 중에서도 어떤 세포는 XO이고 어떤 세포는 XY인 모자이시즘을 가진 사람도 있다. 남자는 일평생 1조개 정도의 정자를 만들어내고, 여자는 1000만개 정도의 난세포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 감수분열 과정엔 X와 Y만 완제품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XY도 XX도 O도 생길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XO여자 XXX여자 XXY남자 XXXXY남자 들을 보고 있자니, 과학자들은 Y 염색체가 있으면 남자, Y염색체가 없으면 여자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유전자]
그런데 XX인데도 남자, XY인데도 여자인 경우가 발견되었다!
유전학의 발전으로 염색체는 더 작은 단위인 유전자로 나누어 설명되어지고, 과학자들은 Y염색체 중의 특정 부분이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을 밝혀냈다. Y 염색체의 성 결정 부위(Sex-determining Region of the Y Chromosome), 줄여서 SRY 유전자라고 명명된 이 부분은 도미노의 첫 키처럼, 다른 유전자들을 읽어내는 작업을 한다. SRY가 Sox9라는 유전자를 읽어내면 이 유전자는 배아 초기의 생식융기에서 10주째쯤부터 세정관과 정소를 형성한다. SRY가 없으면 Wnt4라는 유전자가 발현되고 이는 난소와 나팔관을 만들어 나간다. 염색체 전체가 아니더라도, SRY 유전자가 위치한 부분이 일부 결손 되거나 중복이 되거나 한 경우에 XY라도 여자로 발생할 수도, XX라도 Y염색체의 일부를 획득해 남자로 발생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옳거니, SRY가 있으면 남자, 없으면 여자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이후 추가로 Wnt4, Foxl2 등과 같은 성 결정 유전자들이 더 밝혀져, SRY만이 단독인자는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XX로 성체 암컷으로 완전히 발달한 토끼에서 Foxl2를 지워버리자 난소 세포가 정소세포로 변한 실험은, 우리의 성은 SRY에 의해서만 결정된 것도, 수정란이나 배아시절에 결정이 끝나버린 것 만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내성기]
자궁이 있으면 여자, 생리와 임신출산을 하는 사람을 여자라고 하자는 주장이 나온 적 있다. 안타깝지만 이것도 틀린 말이다. Y염색체와 SRY유전자만으로 끝이 아니다. 이후 수많은 유전자와 효소들의 상호작용으로 분화(differentiation)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분화가 되기 전 생식융기는 뚜껑을 따기 전의 플레이도우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조몰락조몰락 과정을 거쳐 5주경부터 원시성선과 중간콩팥관(볼프관), 중간콩팥곁관(뮬러관)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SRY 도미노가 작용하면 정소에서 생성된 항뮬러관호르몬에 의해 볼프관은 세정관으로 발달하고 원시성선은 고환으로 내려오게 된다. SRY가 작용하지 않으면 볼프관은 퇴화하고 뮬러관은 자궁과 나팔관으로 발달하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태아 때 남자와 여자 생식기를 모두 가졌다!
이렇게 분화가 되는 과정에서도 역시 오류나 변형이 생길 여지는 많다. 도미노를 이루고 있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는 모든 경우의 수이니, 굉장히 다양할 수밖에 없으며, 보통 한 해 태어나는 신생아 4500명 중 한 명 꼴로 진단된다고 한다. 자궁이 두개가 되기도, 자궁과 질이 없기도 한 뮬러관 발생 이상이 생기기도 한다.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나 안드로겐 수용체 유전자의 이상으로 볼프관이 발달되지 않아 정관과 자궁이 둘 다 없는 안드로겐불응증후군, 난소와 정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난소고환증과 같은 상태도 있다. 병리적 상태로 자궁절제술을 받은 여성, 내분비적 질환으로 무월경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 난임 여성까지 생각하면, 생식기로 여성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외성기]
우리가 태어날 때 부여받은 성은 그럼 어떻게 정해진 것인가? 모든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 염색체 검사와 유전자 검사를 다 해보지는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와 신생아과 의사가 흘깃 보고 페니스가 있으면 남자, 음순이 있으면 여자라고 ‘판정’한다. 그렇다면 외성기로 구분하면 될까?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역시 아니다.
외성기 역시 태아 초기에는 모두 똑같았다!
생식결절이라고 하는 이 플레이도우는 수정 4주째부터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상술한 SRY 도미노의 결과 발현되는 유전자들과, 이로 인해 점점 성숙해진 성선(난소 또는 정소)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테스토스테론에 의해 생식결절 역시 점점 분화해 나간다.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많이 받을수록 생식결절은 비대해지고 돌출되어 페니스로 분화하고, 요도와 정관이 합쳐져 페니스 끝으로 몰리면서 원래 있던 구멍은 봉합선(바느질한 것처럼 보이는 그 부분말이다. 해부학적 명칭 역시 봉합선(raphe)이다!)으로 메꿔진다.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면 생식결절이 치골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면서 바깥에서는 클리토리스 머리밖에 보이지 않게 되고, 요도와 질은 나뉘게 된다. 이차성징때 다시 한번 성호르몬이 급증하면서 이 차이는 점점 도드라지게 된다.
그렇지만 태어날 때부터 모호한 모양의 외성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선천성부신증식증이라는 질환은 XX여자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지만 부신호르몬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들이 결핍되어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면서 외성기가 남자처럼 보이기도, 남자와 여자의 중간처럼 보이기도, 클리토리스만 비대하게 보이기도 한다. 출생 남아의 300-500명 중 한 명 꼴로 진단되는 요도하열이라는 질환은 태내에서 에스트로겐에 과다 노출된 경우 요도가 여성형화 되어 페니스 중간이나 뒤에 생기게 된다. 출생시에는 여자/남자의 외성기 모양으로 보여 성별지정을 받았지만, 사춘기에 2차성징이 시작되면서 성기의 모양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XX인데 음경과 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성분화 이상, 성발달장애, 모호생식기 와 같은 용어가 혼재되어 있지만, 당사자들은 주로 간성(intersex)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간성은 많게는 전체 인구의 1.7%까지 추정되는데, 현대사회에서 내분비교란물질들에 의해 점점 그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호르몬]
여자의 표현형을 만드는 에스트로겐, 남자의 표현형을 만드는 테스토스테론으로 성별을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젠장, 또 아니다.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은 ‘성’ 특이적이지 않다. 아래 그림처럼 성호르몬은 콜레스테롤에서부터 시작한다. 여러 효소들의 작용을 거쳐 테스토스테론에 이르는 과정은 남자의 고환에서도 일어나지만 여/남 모두 가지고 있는 부신에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에스트로겐 과정은 여자의 난소에서 대량으로 일어나지만, 여/남 모두의 피부와 뼈, 유선조직에서도, 남자의 고환에서도 약간씩 생성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성호르몬/남성호르몬이라는 구별은 잘못되었다. 나는 “프로제스테론과 에스트로겐, 약간의 테스토스테론을 가지고 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프로제스테론과 에스트로겐, 약간의 테스토스테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여자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아니, 남자와 여자의 성호르몬 정상수치는 사실 약간 겹쳐서,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되는 여자나 에스트로겐이 많은 남자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 Häggström M, Richfield D (2014). “Diagram of the pathways of human steroidogenesis”. WikiJournal of Medicine 1 (1) |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이 ‘성’만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다.
에스트로겐은 남자의 정자를 성숙시키며, 여남 모두에서 뼈와 혈관건강, 뇌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테스토스테론은 성장과 뼈 건강, 성욕에 중요하다. 전신호르몬이라 할 수 있는 것.
물론 이차성징과 성기, 월경과 정자생성, 임신과 출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맞다. 에스트로젠이 피부를 부드럽게 해주고 지방을 배와 엉덩이에 모으며, 테스토스테론이 수염과 근육량, 낮은 목소리와 연관 있어 남성적 특징과 여성적 특징이라 생각되는 표현형들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얼핏 여성성/남성성 이분법의 주범인 것 같아 보이지만, 그리고 실제로 1920년대 호르몬 발견 이후 많은 연구들이 그런 목적을 위해 수행되었지만, 반대성의 호르몬 투여로 여성성/남성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왔던 남성성의 기반이 오히려 취약하다는 것을 드러낸다.1
[뇌/정신적 성]
유전자에 이어 최근 의학계의 화두는 단연 뇌과학이다. 많은 강연과 책들이 어떻게 하면 뇌를 ‘전부’ 사용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행동과 감정을 결정하는 뇌’ 라는 환상은 functional MRI나 PET-CT 사진들을 통해 가시화된다. 여자의 뇌, 남자의 뇌가 존재한다는 믿음 역시 증명될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 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느끼게(알 수 있게) 해 주는가?
사실 뇌 연구의 역사는 성차나 인종 차이와 같은 문제에 있어 공정하지 못해왔다. 18세기에는 두개골의 크기나 뇌의 용적으로 여성의 열등성을 주장했던 골상학이 그랬고, 21세기 초에는 좌뇌/우뇌 이론이 부상하자 남성이 우뇌가 더 크므로 예술과 수학에서 더 뛰어나다는 주장까지, 발견되어지는 과학적 사실을 이데올로기에 맞춰 설명해온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성차를 연구하는 뇌과학이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성차는 없다/또는 여남 간의 차이보다 개개인의 차이가 더 크다 와 같은 연구와 이론을 펼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다.2 하지만 최근의 진전된 뇌과학의 연구들 덕분에 성차를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생물학적 결정론만으로 설명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간성인들의 기여로 유전학이 발전해온 것처럼, 많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연구자로서, 피험자로서 연구들에 참여했다. (그렇다. 당사자들 이야말로 자신을 설명하고, 설명 받고 싶어한다.), 현재까지는 태아기 자궁내 환경에서의 호르몬이 뇌 발달에 관여한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런 종류의 연구는 무작위 대조군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연구들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성인 트랜스젠더의 뇌기능영상 또는 사후부검에서 시스젠더와는 다른 백질 미세구조가 관찰되기도 한다.3 성차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시상하부의 시각교차앞구역에 있는 성이형핵(sexually dimorphic nucleus of the preoptic area (sdnPOA)이라는 부위는 시스젠더 남성에서 시스젠더 여성보다 약간 큰데, 동성애자 남성은 이성애자 남성과 크기가 비슷했고, 트랜스여성(MTF)는 시스젠더 여성과 비슷했다.4 어떤 연구는 트랜스여성/남성이 시스젠더 여성/남성과 뇌에서 비슷한 부위 있고, 다른 부위가 있다고 한다.5 뭐라고? ‘남성의 뇌’ ‘여성의 뇌’라는 건 없다는 말이다. (=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가 다르다 같은 유사과학 기사에 속아넘어가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신경 가소성(neural plasticity)이라는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학자들은 뇌 발생이 태아 초기에 완료되고, 뇌세포는 새로이 생성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학습, 경험, 자극 등에 의해 신경세포들 간의 네트워크가 강화, 변화, 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뇌는 경험에 따라 어떤 부위는 발달하고 어떤 부위는 작아진다. 오래 연주를 한 현악기연주자의 뇌에서 왼손을 관장하는 영역이 더 발달한다, 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뇌의 차이가 발견되었다면, 예를 들어 언어능력을 관장하는 부위라면, 이 차이는 대화의 주도권과 발언권이 더 많이 주어져 의견을 표출할 기회가 많아서인지, 더 말을 많이 한 결과 발달한 것인지, 하다 못해 식단에 제한을 받지 않고 잘 먹어서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의 차이가 발견이 되었다면, 이는 선천적인 차이였는지, 차별의 경험으로 인한 위축 때문인지, 스트레스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우리는 구분해 낼 수 없다. 뇌/인지 역시 이분법이 아니며, 절대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의학은 이분법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의학/생물학에 답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여기까지 오면 답은 자명하다.
의학/생물학은 ‘이분법적 구별 짓기’에 답을 줄 수 없다.
동성애 유전자가 뭔 지, 범죄자의 뇌는 뭐가 다른지, 행동유전학, 사회생물학, 후성유전학, 뇌과학 이름만 달라졌지 차이와 ‘비정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왔지만, 연구를 하면 할수록 단일 유전자나 염색체가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만 명확해졌다. (물론 성차를 찾는 노력 자체를 폄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차이가 밝혀진다 하더라도 이를 차별로 연결하거나 고정관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지 말자는 거다.)
젠더도 마찬가지이다. 생물학적만으로도 생길 수 있는 위와 같은 수많은 변수와 이들의 상호작용에, 양육과정의 문화와 환경의 영향까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만 해도 아래와 같은 복잡한 그림이 나온다. 모든 인간 현상은 사회적인 동시에 생물학적이다.6 각각의 요인들은 일정정도 성정체성에 영향을 미치지만, 유전자결정론과 환경결정론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필요는 없을뿐더러 그럴 수도 없다.
섹스도 젠더도 다양하며, 성정체성은 각각의 개인들이 이를 인지하고 고민하고 모색하는 시작점일 수도 과정일 수도 목적지일 수도 있다.
▲ Sexuality Today: The Human Perspective, 6e.의 그림 재구성 및 수정보완 |
모든 젠더 경험은 다 다르고, 개인을 믿을 수밖에 없다.
많은 트랜스젠더 환자들을 만나봤지만, 한 명 한 명 다 다른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유방이나 페니스는 외부에 돌출되어 있어 특히 눈이 많이 가기 때문에 위화감을 많이 가지게 되는 기관이다. 당연히 더 많은 감정이 들 수밖에 없고, 이들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반면 호르몬치료로 발기와 사정이 없어지고 생식기가 위축되면서 그것 만으로도 만족하여 수술에 대해 더 여유를 가지고 고민하는 MTF도 있다. 가르치는 초등학생들이 변화를 눈치챌까 봐 최소한의 용량으로만 호르몬을 받고 싶어하는 FTM교사, 생리에 특히 위화감이 심해 자궁적출을 고민했지만 미레나시술로 무월경이 된 이후 만족했지만 결국 성별정정을 위해 자궁적출을 한 FTM 환자, 2세를 원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난자를 보존해 놓고 자궁적출을 받았지만, 성별정정 이후 주민번호가 바뀌면서 동결 난자를 사용할 수 없어진 FTM 환자.. 100명의 환자는 100개의 이야기와 경험과 여정을 가지고 있다.
사실 시스젠더 환자들도 복잡다단하긴 매한가지이다. 뇌성마비 딸이 생리를 시작하게 되면 더 케어가 어려워질 것이기에 생리중단 시술을 고려하는 부모, 소음순이 너무 크다고 예쁘지 않다고 축소술을 원하는 대학생, 목소리 톤이 높아 진중하지 못해 보인다는 지적을 받아 남성호르몬을 맞아볼까 고민하는 전문직여성, 생리통이 심해서 미레나 시술을 고려하는 딸과 반대하는 엄마, 유방암 가족력이 있고 BRCA 유전자 돌연변이까지 발견되어 예방적 유방절제수술을 선택한 30대, 유방암으로 인해 유방전절제를 받고 완치되었지만 목욕탕과 수영장에서 받는 시선을 못 이겨 보형물을 삽입한 여성주의 활동가.. 자신의 몸을 모색하기도 하고 순응하기도 하며, 욕망하기도 변형하기도 개입하기도 하는 과정은 사실 모든 인간이 겪고 있고, 여기서 사회학과 생물학, 나의 본질인지 사회화된 결과인지 구별해내기란 어렵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결정들을 내리는지는, 얼마만큼의 정보와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그 정보가 누구에 의해 구성되었는지에 따라, 경제적 여건에 따라, 보고 듣고 자라온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긴 성정체성 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의 정체성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고민 끝에 무신론자가 되기도 하고,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기면서 장애가 생긴 몸에 적응을 해 나가기도 한다. 정체성은 그래서 유동적이다. 우리는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개인을 믿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정체성과 몸,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하리수씨의 커밍아웃 이후, 트랜스젠더를 호르몬투여와 외부성기 수술 등 의료적 조치를 원하고(완료했고) 전형적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레퍼런스가 부족해서 그렇지, 성정체성은 과정이며, 유동적이고, 다양하다. (FTM 트랜스남성이) 자신은 트랜스남성이 아니고 남성인데 잘못된 몸에 갇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트랜스로서 자신을 정체화 하는 사람도, 원인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진단명을 받고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획득한 것에 안도하는 사람도, 사회가 질병이라 분류한 진단명에 불쾌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트랜지션 역시 종착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위화감과 개인적 사정에 따라 다양한 단계 중에 있을 수 있다.
이들의 욕망 역시 다양하며 다양한 이유가 있다. 호르몬/수술을 받아야 하나, 얼마나, 어디까지 받아야 하는가, 목소리를 교정하는 성대수술이나 얼굴 윤곽을 좀더 여성/남성적으로 보일 수 있게 성형수술까지 받아야 할까. 나도 그때그때 다른 대답을 한다. 고민 끝에 수술을 받고 온 분께는 “수술 너무 잘 되었네요” 라고 하기도 하고, 유방이 생각만큼 자라지 않아서, 수염이 생각보다 적게 난다고 고민하는 분께는 “여자/남자들도 다 다르게 생겼어요.” 라고 하기도 한다. 트랜스젠더들이 전형적인 여성/남성적 외양이나 목소리에 대해 가지는 욕구는, 기존의 젠더 관습/레퍼런스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선택지밖에 제공하지 않고 그것이 정상이고 이상향이라고 부추기는 대중문화 때문이고, 최대한 여성/남성스럽게 보이지 않고 어색한 모습일 때 받게 되는 위협과 눈초리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변희수 하사 건이나 숙명여대건을 보면서 고무적이었다. 청소년인, 학생인, 군인인, 직장동료인 퀴어들이 더 많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말하기를 바랬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과 젠더 관습을 고민하길 바랬다. 트랜스젠더를 대상화한 포르노그래피나 조회수를 위해 선정적인 부분만 부각된 유튜버들을 보지 말고, 직접 물어보고 교류하고 이야기들을 기회가 많아 지길 기대했다.
▲ 구조생물학자이자 트랜스젠더인 Karissa Cabinmates는 The biology of gender, from DNA to the brain 라는 TED강연에서 무엇이 나를 여성으로 만드는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연구여정을 소개한다. |
반낙태 반동성애 담론과 닮은 혐오 – 개인을 믿지 않는다는 것
의학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나를 깊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낙태죄정국을 거치면서 였다. 낙태죄의 존폐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의학적으로 생명의 시작이 언제인지’ ‘의학적으로 몇 주부터 위험하니까 금지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의 답을 원했다. 영아사망이 흔하던 시절엔 태어나서 100일을 지나야 이름을 주지 않았는가. 사산을 고려하면 출생시, 태아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20주, 초음파가 도입된 이후에는 태낭이 보이는 5주, 발생학적으로는 신경이 생기는 4주? 심장이 생기는 6주? 생명과 죽음을 찾아가나는 과정 역시 성을 찾아가는 여정과 비슷하다. 의과학은 여러 요인들을 설명 할 수 있을 뿐, 개인의 신념과 정체성에 관한 결정에 답을 줄 수 없다. 의학은 환자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심판자가 아니라 그들의 해결책과 방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질문을 바꿔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안전한 임신중지를 할지, 이후의 임신중지를 줄이기 위한 피임교육을 할지, 존엄한 삶의 회복을 위한 상담을 어떻게 제공할지 같은 질문 말이다.
트랜스젠더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담론들을 보다 보면 임신중지를 둘러싼 담론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7 본인의 신념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몸에 내리는 매우 개인적이고 치열한 결정이고, 질병은 아니지만 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 욕구를 드러낼 때 사회의 낙인에 부딪히는 것. 그리고 당사자를 믿지 않는다는 것.
입안자들/의사/법관들은 여성을 믿지 못해 자꾸 확실하게 결정한 게 맞는지 묻고 또 묻는다. 숙려기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고 다시 오라 하기도, 의료인 몇 명이나 위원회나 상담사의 허락을 받아오라고 한다. 태아초음파를 무조건 보게 하면 후회와 죄책감으로 결정을 바꿀 거라고, 여성의 결정능력과 판단력을 의심한다. 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인데 이기적이라고 비난받는다. 일시적인 한때의 치기라고 여겨진다.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정신과의사의 진단서를 요구하고, 수술을 받으려면 1년이상 살아보고 정말로 후회하지 않겠는지 정말로 확신하는지를 또 물어본다. 성별정정을 위해서는 수술의사 외에 추가로 한 명 더에게 확인을 받아야 하며, 성기수술을 실제로 했는지 사진 등을 요구하며 모멸감을 준다. 너의 정체성을 증명하라고 요구받고, 그럴 수가 없다고 부정당한다. 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인데 가족이나 사회는 생각 안 하냐며 이기적이라고 비난받는다.
트랜스젠더 배제/혐오세력의 논리와 전략이 반동성애/반낙태 세력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은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임신중지를 경험한 여성(/리트랜지션을 경험한 트랜스젠더/탈동성애를 했다고 주장하는 동성애자)이 후회하는 간증을 시키고, 임신중지(/트랜지션)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던 의료인들이 이제는 왜 하지 않는지를 증언한다. ‘팩트’와 ‘과학’라는 이름 아래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수술사진과 문구들을 전시한다. 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의학을, 종교를, 표준과 정상성을 들고 와서 이를 따르라고 한다. 이들의 권위는 높아지지만 개인들은 자신의 몸에서 소외된다. 다양한 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생물학적 본질만을 강조하며 환원론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회생물학이라는 이름으로 공고해온 가부장제를 여성주의 과학, 성인지과학으로 겨우 균열내 왔는데, 무너져 내리는 집에 다시 들어가는것과 마찬가지이다.
의학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젠더는 모호한 개념이고 과학자들 이외에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지만, 퀴어의 존재는 실재한다. 그리고 차별 역시 실재한다. 시스젠더에 비해 트랜스젠더의 폭력경험과 괴롭힘 경험, 자살시도경험은 월등히 높다.8 고유한 의료적 필요가 있음에도 낙인과 편견으로 의료이용에 장벽이 있다. 지정성별이 애매모호한 간성 아기가 태어나면 본인이나 가족의 의사에 상관없이 수술하기 용이한 여성의 성기로 성별지정수술을 하는 관례가 20세기 후반까지 있었다.
호르몬 요법을 포함하여 트랜지션 관련 의료적 조치를 받은 트랜스젠더들은 삶의 만족도가 유의하게 높아지고 자살율이 줄어든다.9 의료적 조치의 필수성과 효과성이 입증되면서 의료전문가들은 트랜지션이 의료보장의 범위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권고한다.10 인터섹스 성별지정수술이 당사자 아동의 정체성과 정신건강에 위해를 준다는 연구들로 현재는 소아과학회나 산부인과학회들에서 청소년기 이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이 이후에, 꼭 필요할 시 수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다시, 의학의 역할은 판단이나 이데올로기의 모방이 아니라 고통의 최소화이다.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통합적인 존재로 살아가게 조력하는 것이다.
▲ 생명의 어떤 것도 두려워 할 필요 없다. 이해하면 된다. 지금은 좀 더 이해하고, 좀 덜 두려워해야 할 때다. _마리 퀴리 |
다시, 다양성과 소수자성 연대로
의과대학생일 때는 항생제로 자연을 정복하고 메스로 종양을 제거하고 바늘로 결손을 회복하는 의학의 권능에 도취되어 의학이 내 세계관의 전부이자 만능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에 눈뜨게 해준 것은 성공의 경험보다는 실패의 경험이었고, 교과서적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환자들과의 만남이었다. 약을 처방해 줘도 먹지 않는 환자와 닥터쇼핑을 하다가 항생제 내성이 생긴 환자, 다시는 오지 않아 내가 제대로 진료했는지 알 수 없게 된 환자들, 아픈데 안 아프다고 하는 환자, 안 아픈데 아프다고 하는 환자. 진단명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고 진단명으로 정의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의 많은 순간들은 완벽한 계획과 통제된 결과보다는 우연과 불확실성에 가깝다. 내 몸이 내 것이고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과 달리, 몸은 공부와 경험을 요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생의학적 지식과,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존재들이 내기 시작한 목소리는, 기존의 몸과 정체성을 새로이 인식하게 해주고 상상과 개입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전술했던 것 처럼, 성을 정의하고 성차를 밝히고 싶어 안달했던 의과학의 역사에서, 오히려 전형적이지 않은 존재들 덕분에 몸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넓혀 나갈 수 있었다. 퀴어들의 존재와 그들의 경험, 서사가 의학을 생물학을 사회학을 풍부하게 한다. 이들의 복잡성과 이질성, 다양성 이야말로 우리 인생과 자연의 정수이다.
신경 가소성은 사회화나 학습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트라우마도 설명한다. 우리 몸(뇌)은 극심한 충격이나 슬픔, 폭력을 겪는 경우, 다시 같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DNA의 일부를 꼬아 읽히지 않게 봉인해두기도 하고, 신경회로를 꺼 기억을 지우기도 한다. 성폭력, 학대, 성희롱, 배제, 차별, 고립, 안전의 위협, 불신의 경험들은 우리를 가두고 위축되게 한다. 하지만 신경 가소성으로 생긴 상처의 치유 역시 신경 가소성으로 할 수 있다. PTSD의 치료법 중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섬광을 계속 지켜보며 눈의 운동 회로를 트라우마의 경험에 덧씌우는 EMDR이라는 치료법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연대과 지지, 환대, 애정의 경험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 변희수 하사의 동료 부대원들, 트랜스젠더 입학생 환영 성명을 낸 숙대 졸업생들, 트랜스젠더 진료 공부모임에 나오는 의료인들을 보면서 나는 낙관한다. 우리가 할 일은 공교육에서 더 다양한 성과 젠더들에 대해 배우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와 연결되는 것이다. 의과대학과 의료인 교육에서 최신의 간성/트랜스젠더 의료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자. 대중문화에 왜곡되지 않은 트랜스젠더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모두에게 안전한 개인 화장실(성중립화장실)을 늘여 나가다 보면, 차별과 편견의 상처들도 덧씌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여성과 트랜스젠더들은 많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여자로 만드는가. 나는 이 경험들이 우리를 자매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물론 형제들, 앨라이들도 환영이다!)
덧,
본질적인 생물학적 차이가 그래도 궁금하다면? 생물학적 차이만을 확인하기 위해선 모든 환경변수를 통제할 수 있어야겠다.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 똑같은 교육권을 가지고 직업 선택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 세상, 각각의 다양한 몸들을 성교육시간에 일반적으로 접하는 세상, 성별재지정수술도 건강검진도 생리중단시술도 보험급여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일단 만들어보자. 거기서 발견되는 생물학적 특질이라면, 오케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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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원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산부인과 전문의
이 글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습니다.(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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